저 또한 여행이라면 누구보다 좋아하는 터라 이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 전에 만나기 위해 숙소로 달려갔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스케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가 오라는 것도 아니니 급할 것도 없다며 느긋합니다. 부산에 있다가 찾는 사람이 있으면 며칠 더 머물고, 없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된다고 합니다. 시간을 초월한 그들의 여유로움이 참 부럽습니다.
아무튼 이들 부부와 꼬맹이 넷을 어렵사리 통역까지 불러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외국에서도 제법 유명세를 탔더군요. 이미 아메리카 대륙을 다 돌았고, 알래스카까지 갔다가 왔고, 이번에는 부산을 기점으로 동남아시아를 약 2년의 기간으로 돌아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지난 10일 부산에서 만나봤습니다.
10년 동안 세계일주...그동안 낳은 아이만 넷
|
남편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헤르만 샤프(42), 부인은 칸델라리아 샤프(40)로, 이들 부부가 세계일주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당시 평범한 회사원이던 샤프씨가 부인에게 결혼 초부터 생각만 하던 여행을 제안했고, 부인은 6개월 정도 미국 대륙을 종단해서 알래스카까지만 다녀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을 계획했던 여행은 무려 4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 알래스카에 도착은 했지만 '목표 달성'의 기쁨보다는, 여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하염없이 슬펐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때부터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또 출발은 둘이었지만, 10년의 여정 동안 동행이 늘었습니다.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상황에서 아이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것도 네 명이나 말이죠. 첫째 팜파(9), 둘째 테위(6), 셋째 팔로마(3) 그리고 막내 왈라비(2). 이 아이들은 국적이 모두 다릅니다. 첫째는 미국에서, 둘째는 아르헨티나, 셋째는 캐나다, 막내는 호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묻습니다.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불편하지 않으세요?"라고요. 그러면 그는 오히려 "아이들은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고, 보물들이다"라고 답합니다. 물론 불편한 건 말할 수도 없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고 여행 동안 수많은 질병과도 싸워야 했고, 기본적인 위생 상태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여행 동반자, 클래식카
이들이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관심을 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가족 전체가 타고 다니는 82년이나 된 '그레이엄 페이지' 자동차입니다. 지난 1928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생산된 후 현재 단종된 '클래식카'입니다.
타이어 휠이 나무로 제작됐고, 계기판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순수 아날로그 방식으로 움직이며, 에어컨이나 파워 핸들은 꿈도 못 꾸며,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로 오래 된 자동차입니다. 그러나 이들 6명의 가족들은 숙소가 없을 때는 이 안에서 잠도 자고, 식사도 합니다.
이 애마와 함께 아마존을 건넜고, 에콰도르 숲에서 지냈고, 알래스카에서는 개 썰매를 이용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 오래된 자동차와 함께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싱가포르 등을 둘러볼 계획이라고 합니다.
기자가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러자 부인 칸델라리아가 답합니다. "아이들에게 세계 다른 나라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교육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인터넷이 되니까 사이버 교육을 통해서 기초 과정을 가르치고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사람을 사귀는 것과,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교에 앉아서 배우는 것보다는 직접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라고 합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러시아입니다. 그 후에 큰 아이가 12세가 되면 본인의 의사를 물어서 당분간은 교육을 위해 잠시 휴식을 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여행 조건, 가족만 있으면 OK
한편 이들의 여행기가 알려지면서 부산의 방송사에서 동행 취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눈에 띄는 클래식카를 보는 길거리 운전자들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가장 한국적인 환경을 접해 보고 싶다는 이들은 부산을 출발해 전라도 지역과 경기도를 거쳐, 서울과 강원도,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대장정인데, 비좁은 자동차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는 모습은 불편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랑스럽고, 부럽기만 합니다.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를 약 2년 정도의 일정으로 돌아볼 계획입니다.
이들의 여행 경비는 주로 여행 사진으로 만든 달력과, 'Spark Your Dream'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판매한 수익으로 충당합니다. 이 책자는 자신들의 여행 경험과 함께 각 나라의 여행 정보들이 상세히 담겨 있는데,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경비가 될 리가 없습니다. 부인 칸델라리아는 임신했을 때 초음파를 할 돈이 없어서 남편이 그림을 그려서 팔았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먹는 것 또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길거리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열악한 환경이 일상이 돼 버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들은 어쩌면 '가족'이라는 힘으로 뭉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날마다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산보다 '꿈'을 물려주고 싶은 샤프 부부
조금은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이 가족의 여행은 많은 도전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지나 왔던 발자취만큼 후회보다는 기쁨과 감격이 남았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 부부는 네 명의 자녀들에게 집이나 재산보다는 직접 여행을 하는 경험을 물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도 자신들의 생애를 살아갈 때 세계를 품는 꿈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지난 10년의 세월은 이들에게 '가족'의 위대함을 보여 준 시간이었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그 '가족'은 함께할 것입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들 부부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 가족은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사진에 등장하는 차를 보시거든 인사라도 건네주시기 바랍니다.
(헤르만 샤프 가족 연락처)
홈페이지 : www.argentinaalaska.com
E-Mail : three_americas@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