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교육환경

네덜란드 교육현장을 가보니

봄이나라 2009. 10. 12. 10:34
입시경쟁 없이맘껏 골라 다녀도 대학 경쟁력은 으뜸
절대평가 졸업시험만 통과하면 직업준비·대학준비 학교 등
적성따라 3개 유형 학교 진학
» 우리나라의 교육은 우수한 학생이 곧 학교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교육은 경쟁력 있는 학교가 우수한 학생을 길러낸다. 사진은 헤이그 대학 전경.

지난 9월21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교정에서 만난 라라 리컨스(19)한테 “이 학교를 왜 선택했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황당하리만치 단순했다. “평판도 좋지만 집에서 가까워서요.” 위트레흐트 대학교는 중국의 상하이교통대학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지난해 47위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이 대학의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교수와 마르티뉘스 펠트만 명예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명문 중의 명문인 셈이다. 따라서 라라의 말은 곧 “서울시 관악구에 살아서 서울대에 왔다”는 말과 같다.

그는 “졸업시험을 보는데 10.0 만점에 6.0점만 넘으면 졸업장(Diploma)을 받을 수 있다”며 “전국의 모든 학생이 치르는 졸업시험에서 꼭 좋은 점수를 받을 필요는 없고 졸업장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졸업시험의 평가도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다. 네덜란드 학생들은 대학 입시 준비 과정을 통틀어 남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네덜란드에는 학생들의 입시 경쟁과 더불어 대학의 ‘학생 선발권’ 또한 없다. 네덜란드 대학은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우리나라 평준화 지역의 고교들처럼 대학 입시 사정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학생정보관리위원회·IB-Group)에 의해 학생을 배정받는다. 위트레흐트 대학의 국제 교류 담당자인 카스파르 더복은 “네덜란드 대학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의대 등 지원자가 많은 몇몇 학과 역시 담당 기관에서 학생을 선발하고 배정할 뿐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가 대학 입시에 개입할 수 있는 이유는 네덜란드 대학이 모두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되며 우리나라의 국립 대학과 같은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최고의 점수를 받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의 선발 의지와 상관없이 입학하지만 네덜란드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상하이교통대학의 ‘2008년 세계 대학 순위’를 보면 200위권 안에 11개 대학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수재들이 선발되는 서울대는 151~200위권에 올랐고 학생 선발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서울의 몇몇 사립대들은 한 곳도 들지 못했다. 미국의 주간지 <뉴스위크>가 2006년에 발표한 세계 100대 대학 순위에도 네덜란드는 5개 대학이 올랐다. 우리나라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네덜란드에는 연구중심대학(Research University) 14곳과 고급 직업 인력을 양성하는 응용과학대학(University of Applied Science) 41곳이 있다.

» 교수와 함께 토론하고 있는 헤이그 대학의 학생들.

학생의 지원 자격이나 학업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네덜란드 대학이 우리나라 대학보다 더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수월성’을 제대로 살린 중등교육 시스템이 대학 대신 학생의 자격과 능력을 보증하는 데 있다.

네덜란드는 중·고등학교를 통합해 운영하는데 학생들은 능력과 적성에 따라 직업준비중등학교(VMBO, 4년 과정), 일반중등학교(HAVO, 5년 과정), 대학준비학교(VWO, 6년 과정) 등 세 가지 유형의 학교에 진학한다. 직업준비중등학교에서는 직업 교육을 받고 졸업한 뒤 바로 취업을 한다. 일반중등학교 졸업자는 응용과학대학에 진학할 자격이 주어지며 연구중심대학에는 대학준비학교 졸업자만 진학할 수 있다. 각 학교의 진학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국가가 치르는 학업적성검사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VWO에 진학하려고 입시 경쟁이 있을 법도 하지만 학업적성검사를 준비하는 사교육도, 경쟁도 없다. 네덜란드에 10년 동안 살면서 자녀들을 초등학교, 중등학교, 대학까지 보낸 정현숙(46)씨는 “시험은 성취도 평가가 아니라 능력 평가이기 때문에 대비할 수도 없을뿐더러 네덜란드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HAVO나 VMBO에 간다고 해서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곧 네덜란드 학생들의 중등학교 진학이 성적순으로 우열을 가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탁월한 능력과 적성을 고려해 적합을 따지는 일이다. 따라서 꼴등에 대한 차별 대신 공부가 아닌 다른 능력을 지닌 학생에 대한 ‘차별화’한 교육이 있다. 헤이그 대학(The Hague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국제교류처의 요세프 핀탄 모린은 “몇몇 나라에서 일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는 가장 성공적인 길은 조기에 학생의 적성을 발견해 자기한테 맞춤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에 있다”며 “네덜란드 대학 경쟁력의 핵심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중등교육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는 교육의 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HAVO를 졸업하고 응용과학대학을 나온 이들이 초·중등학교의 교사로 진출할 정도로 실무 교육의 수준이 높다. 또 우리나라에 세계 축구 4강이라는 기적을 선사한 휘스 히딩크는 직업학교인 VMBO를 나왔다고 한다. VWO에는 연구자로서 탁월한 점이 있는 이들이 진학하므로 VWO 졸업자를 신입생으로 받는 연구중심대학은 굳이 대학에 적합한 학생을 뽑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탁월한 점을 북돋워 주는 게 수월성 교육의 옳은 개념이라면 네덜란드의 교육이 바로 그렇다.

네덜란드교육진흥원(NESO KOREA)에서 주최한 네덜란드 대학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위트레흐트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을 둘러본 김상률 숙명여대 대외협력처 처장(영문학과 교수)은 “학부 과정을 교양 정도로 생각하고 진짜 연구는 석사 과정에나 가서야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대학은 연구에만 초점을 둔 네덜란드의 연구중심대학에 견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하지 않고도, 학생과 학교의 경쟁을 부추기지 않고도 훌륭한 교육적인 성과를 낸다. 한 여당 의원은 수능 성적 원자료를 공개해 전국의 학교를 줄세우겠다고 부르댄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교육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좋으련만,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면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다.

위트레흐트 헤이그 로테르담/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공부 꼴찌’도 다른 능력 인정하고 키워줘
대학전까지 무상교육…대학생엔 국가가 용돈
소득격차 작아 직업학교 나와도 스트레스 없어

» 네덜란드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의 악기 교육을 시청이 세운 음악 교육 기관에서 제공한다. 소득에 따라 수강료가 차등 책정되므로 소득이 낮은 가정의 자녀도 적은 돈으로 악기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사진은 정현숙씨의 딸 박시은(8)양이 네덜란드의 학교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 정현숙씨 제공

“네덜란드는 정말 아이들한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에요.”

네덜란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정현숙(46)씨의 목소리는 금세 높아졌다. “2007년에 유니세프가 전세계 부유한 나라 21개국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행복감을 조사했더니 네덜란드가 1등을 했대요. 학생들 사이에 경쟁이 심한 미국이나 영국은 꼴찌였죠.”

네덜란드 교육에 대한 그의 찬사는 경험에서 비롯됐다. 1998년에 남편의 공부를 위해 다섯 식구 모두 네덜란드로 떠났다. 세 아이는 네덜란드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녔고 큰아들은 대학에도 갔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곧 네덜란드의 교육 제도와 네덜란드 사회를 익히는 일이었다. 초등학교에 두 아들을 입학시키자 곧 학생의 교육을 학부모한테 떠넘기지 않고 학교가 책임지는 모습이 보였다. “네덜란드 초등학생들은 가방이 없어요. 그냥 빈손으로 학교에 가요. 교과서는 학교에 두고 다니게 되어 있고 준비물은 학교에서 모두 지급해 주니까요.” 네덜란드의 교육은 중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무상교육에 가깝다. 대학은 300만원 정도의 등록금이 있지만 국가가 한 달에 학생 개인한테 40만~50만원씩 용돈을 준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파격적인 지원이 가능한 것은 네덜란드의 경제력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는 덕이다. 네덜란드는 인구가 우리나라의 3분의 1 규모(1600만명)이면서도 경제 규모는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08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9470억달러, 네덜란드는 8689억달러로 큰 차이가 없다. 일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우리나라의 두 배에 이른다.

정씨는 네덜란드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뭣보다 자기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직업을 갖든 편견에 위축될 일이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 중에 직업준비중등학교(VMBO)로 가서 벽돌공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벽돌공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일하는 모습을 본 거죠.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높아요. 대학교수나 벽돌을 까는 일 모두 아무나 잘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 거죠.” 네덜란드 한국 교민들은 그래도 제일 높은 레벨인 대학준비학교(VWO)에 보내려는 욕심이 있지만 정작 네덜란드 학부모들은 자녀가 어느 레벨의 중등학교에 진학해도 수용한다고 한다.

이는 곧 벽돌공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도 큰 이유다. 즉, 네덜란드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임금 격차가 그리 크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양극화가 심한 사회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09년 통계연보를 보면 네덜란드 최하위층의 평균소득은 30개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데 견줘 우리나라는 23번째였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버는 빈곤층의 비율 역시 네덜란드는 7.6%(20위)로 적었으나, 우리나라는 14.6%로 두배에 이르렀다.

문화방송(MBC) 기자 출신인 정씨는 네덜란드에서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았다. “98년에 아이들을 처음 네덜란드 현지 학교에 보냈더니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네덜란드어 강습반을 만들어서 지도해 줬어요. 이런 게 네덜란드식 관용의 문화인 것 같아요. 공부 못하는 아이들한테도 다른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동등하게 대접해 주는 것도 관용이고요.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 학생들 왜 자꾸 ‘정답’만 묻나
‘21세기 하멜’이 본 한국


우리나라 땅에 발을 디딘 최초의 외국인은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이었다. 극동의 작은 반도를 세계에 최초로 알린 사람이 하멜이다. 예로머 더빗(29·사진)은 21세기의 하멜이다. 유럽 안에서 한국학 연구의 허브 구실을 하는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의 한국학과에 다닌다. 2002년에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우리나라 말을 배웠으며 2006년부터는 한국외대에서 강의하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서 공부했다. 그의 거울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대학에서 강의할 때 시험에서 네덜란드 시인의 시를 해석하라는 문제를 낸 적이 있어요. 각자의 느낌과 경험을 반영해 풍부한 해석을 한 학생들한테 모두 좋은 점수를 줬죠. 그랬더니 학생들이 저한테 ‘정답’을 자꾸 물어봤어요. 하나의 정답만을 가르치는 게 한국의 교육 방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 대학인 만큼 더빗은 주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특히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로 대학에 왔는데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을 꼽았다. “한국 학생들은 좋은 점수를 받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과제로 낸 리포트의 수준이 네덜란드 고등학생들의 그것보다도 못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으니까요.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학위를 준비할 때만 공부할 뿐 학문의 총체적인 지식이나 이론을 정립하고 있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중등교육 단계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방법을 고민해야 대학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더빗은 우리나라에 ‘협상의 문화’가 없다는 것을 네덜란드와 가장 큰 차이로 꼽았다. 네덜란드는 사회 문제를 다양한 이해 집단이 양보하고 협력해 풀어낸다. 경제 위기에 맞서 노조, 정부, 기업이 타협한 ‘폴더모델’(poldermodel)이 그 사례다. 더빗은 대학에서도 이해 당사자인 학생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의사 결정 과정을 지적했다. “네덜란드에서는 학교의 변화에 학생의 발언권이 상당히 중요해요. 그런데 한국의 대학은 등록금을 올리는 중요한 사안에도 참여할 수가 없더라고요.” 진명선 기자


“강의 80% 토론·발표영어로 진행 강의 많아”
유학생에게 들어보니


지난 9월22일에 방문한 네덜란드 헤이그 대학(The Hague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강의실 어디를 둘러봐도 30명을 넘는 강의는 없었다. 모든 강의실은 토론수업을 하는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의자와 책상이 배치돼 있었다.

교정 곳곳에는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고 어떤 모임에는 교수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이곳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이유정(22·연세대 행정학과)씨는 “전체 강의의 80%는 토론하고 발표하는 수업으로 이뤄진다”며 “교환학생이지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좋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대학은 한 강의를 15명 안팎의 소규모로 꾸려 문제 기반 학습(Problem Based Learning)으로 진행된다. 이런 교수 학습 방법은 네덜란드 대학 경쟁력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김영철(20·가명)씨가 네덜란드 유학을 선택한 계기도 이런 학풍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대학 진학한 선배들을 보니까 음주가무에, 학문을 연구하기보다 취업 준비에만 매달리는 생활을 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여러 나라 대학을 알아봤는데 네덜란드 대학이 학풍, 제도, 문화 등이 제일 맘에 들었어요.”

네덜란드 대학은 영어로 진행되는 과정을 많이 운영하므로 비영어권 국가 가운데서도 외국 유학생들이 선호한다. 대학이나 학과마다 지원 자격이나 준비할 서류가 조금씩 다르지만 공인 영어 성적, 고등학교 성적, 수능 성적, 수상 실적, 자기소개서, 추천서, 학업계획서 등이 요구된다. 지난해 서울에 문을 연 네덜란드교육진흥원(www.nesokorea.org)은 네덜란드 유학에 대한 상담을 제공하며 네덜란드어 강습도 열고 있다.

진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