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와이너리 투어가 가능하다. 현재 와인을 빚는 곳은 10여 곳. 그중에는 와인 기차를 운행하고, 와인을 직접 빚는 곳도 있다. 개성 만점 와인과 볼거리가 풍부한 와이너리를 소개한다. | ||||||||||||||||||||||||
시계추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늘어지게 쉬고 싶은가. 달콤새콤한 ‘신의 물방울’과 푸근한 자연이 있는 와이너리는 어떨까.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고집 센 ‘와인 마스터’들 덕에 가볼 만한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가 적지 않다. 지도를 펼쳐놓고 와이너리를 연결해보니 선이 제법 여러 가닥이다. 그 중 몇 군데를 둘러보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과연, 1박2일간의 ‘맛보기 여행’에서 와이너리의 멋과 맛과 개성을 만끽할 수 있을까. 첫 행선지는 가장 북쪽에 자리한 미지의 와이너리 디오니캐슬와인이었다. 강원 횡성-디오니캐슬와인 다래 향 물씬한 ‘언덕’ 디오니캐슬와인(www.dionycastle.com)은 높은 산자락의 ‘북서벽’에 자리 잡아 그늘이 짙었다. 가동을 멈춘 생산 라인 내부도 어둑했다. 그러나 이내 동공이 부풀어올랐다. 로켓 연료통을 닮은 어마어마한 스테인리스 발효조 때문이었다. 자그마한 연못의 물이 다 들어갈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 그 속에서 다래와 복분자를 분쇄·압축해 짜낸 원료가 농익고 있었다. 그곳을 벗어나 계단을 내려서자 천연 토굴처럼 만든 카브(지하의 와인 저장고)가 나타났다. 알싸한 알코올 냄새와 단내가 진동한다. 크고 작은 숙성조에서 잠자고 있는 ‘예비 와인’의 체취였다. “이곳에서 6개월 정도 숙성한 뒤, 병에 들어가 다시 긴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맛깔스러운 와인이 된다”라고 김홍철 기획실장(디오니캐슬와인)은 설명했다. 양조 과정을 보고 들으니, 과일로 술을 빚는 일이 의외로 간단해 보였다. 원료를 발효·숙성한 뒤 병에 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훌륭한 와인을 만들려면 그 이상의 예술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라고 김 실장은 말했다. 과일 밭과 와이너리가 어느 비탈 어느 벌판에 서 있느냐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바람과 햇빛의 양, 효모와 당의 분량에 따라 마술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디오니캐슬와인의 양조법은 순수 프랑스 식. “그 덕에 다른 지역의 와인보다 맛과 생명력이 더 뛰어나다”라고 김 실장은 자랑했다. 시음장에서 2005년산 다래 와인과 배 와인, 2001년산 복분자 와인을 시음해보니 과연 그랬다. 다래 와인은 산도와 단맛이 잘 어우러져 입에 착 감겼다. 스월링(소용돌이가 생길 만큼 와인 잔을 몇 번 돌리는 것)을 하며 두어 번 더 음미하자, 냄새가 더 상쾌하게 다가왔다. 뒷맛도 비교적 세련되고 깔끔했다. 홍성표 디오니캐슬와인 대표가 토종 다래·앵두·자두·머루 등을 10여 년간 연구한 뒤 “국내 와인 재료 중 최고는 다래다”라고 추어올렸다더니, 수긍이 갔다. 배 와인도 신선하고 상큼했다. 뒷맛도 다래 와인에 그리 뒤지지 않았다. 삼키고 나서 약간 쓴맛이 남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복분자 와인은 매혹적인 색에 비해 그 풍미가 여느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의 입맛. ‘진맛’은 직접 맛보시기를…. 디오니캐슬와인의 투어 요금은 3000원. 이 금액으로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시음장에서 와인까지 마셔볼 수 있다. 시간이 있으면 100년 전에 지었다는 인근의 풍수원성당을 들러볼 참이었지만, 벌써 어둠의 장막이 온 대지를 덮었다. 디오니캐슬와인은 어둠속에서 외로워 보였지만, 이제 곧 온 산에 푸른 물이 들면 꽃향기· 풀향기 덕에 화사해지리라. 다음 목적지는 경북 의성. 급히 대구-원주를 잇는 중앙고속도로로 올라선다. 경북 의성-한국애플리즈 항아리 속 사과 와인 한국애플리즈(www.applewine.co.kr) 와이너리의 카브에 들어서는 순간 “어?”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른 와이너리와 달리, 예비 와인이 커다란 황토 항아리 50여 개 속에서 무르익고 있었던 것. 놀랍게도 단지 안에는 2007년에 담근 사과 와인이 400ℓ나 들어 있었다. 이 귀한 액체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3년 이상 항아리에서 잠잔 뒤, 사과 와인이나 석류 와인으로 ‘우화등선’한다. 이색적인 것은 단지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애플리즈에서는 사과 따기와 즉석 생과일 주스 만들기, 사과 파이 굽기 같은 색다른 체험도 가능하다. 와인 만들기와 시음은 기본(1인당 1만2000원). 현재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사과 와인 ‘주지몽’과 석류 와인 ‘류몽’. 주지몽은 높은 당도와 단단한 과육이 특징인 의성 사과가 주원료인데, 포도와 달리 자기 효모가 없어 특수 효모를 첨가해 와인 맛을 낸다. 이재학 이사에 따르면, 주지몽은 소화와 미백 효과가 뛰어난 사과를 원료로 만들어 그 맛이 부드럽고 깨끗하다. 류몽도 사과와 석류를 8 대 2 비율로 섞어 그 맛과 향이 뛰어나다. 특히 사과의 감칠맛이 석류 고유의 떫은맛을 압도해 그 풍미가 달콤하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여성에게 더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라고 이재학 이사는 말했다. 그 덕에 두 제품은 와인 선진국이라 할 미국·오스트레일리아·아르헨티나 등 6개국에 수출까지 한다. 2층 시음장에서 두 와인을 직접 코와 입에 대어봤다. 주지몽은 사과로 만들어서인지 투명한 오렌지 빛이었다. 스월링을 한 뒤 햇빛에 비춰보니, 그 색이 엷은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향은 신맛 강한 사과 냄새와 비슷했다. 살짝 머금어보니 단맛과 산도가 강했다. 드라이하고 묵직한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은 살짝 미간을 찌푸릴 수도….
경북 청도-청도와인 어두워 더 빛나는 금빛 와인 이번 목적지는 소싸움과 감으로 유명한 청도와인(www.gamwine.com). 감 와인이 어둠과 시간을 흡인하고 있다는 와인터널 길목에서 감의 고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름한 기와집, 반듯한 양옥집 할 것 없이 집집마다 감나무가 서 있었던 것. 그곳을 지나 캄캄한 와인 터널 안으로 들어서자, 달콤한 향이 오감을 자극한다. 마치 밀교의 비밀스런 성지에 들어선 듯한 기분. 오른쪽에 카페 같은 시음장이 있고, 터널 양쪽으로 우윳빛 전등이 매달려 있다. 100년이 넘었다는 터널 안으로 무작정 걸어 들어간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사박사박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터널의 너비와 길이는 6m와 1km 남짓. 그런데 300여m쯤 안으로 들어가자 철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카브였다. 창고 안에는 온몸으로 감 와인을 애무하고 있는 병들이 수없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생산 라인은 어디에 있는 거지? “터널이 좁아 이곳에 있지 않고, 좀 떨어진 곳에 있다”라고 가이드 임병래씨는 말했다. 돌아나오는 길에 시음 잔을 들고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감 와인을 맛본다. 금빛 ‘감그린 레귤러’는 여느 화이트 와인처럼 달콤했다. 부산에서 온 허경해양(대학생)은 “포도 와인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감미로워서 끝없이 들어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 타닌이 비교적 많이 함유된 ‘감그린 스페셜’은 뒷맛이 꽤 떫었다. 그렇지만 허씨와 동행한 김소영양은 “감 와인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거부감 없이 잘 넘어간다”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웃음 띤 얼굴로 입맛을 다시고 나오는 곳이지만, 와인 터널에는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하나는 멀리 떨어진 생산 라인이다. 와이너리 투어의 가치를 높이려면 반시(납작 감)가 어떻게 와인으로 변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섭섭함은 대충 진행하는 시음 행사에서 느꼈다. 매일 방문하는 수백, 수천 여행객에게 일일이 상당량의 와인을 따라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시음을 위해서는 그에 알맞은 환경과 와인 양이 준비되어야 한다. 튤립만 한 잔 밑에 깔린 와인과, 어둑어둑한 조명 아래에서는 아무리 맛과 향이 뛰어난 와인도 제대로 시음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충북 영동-와인코리아 와인 열차 타고 ‘랄라라’ 세 군데를 둘러보니 와이너리 투어는 모험이고 탐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각 와이너리에는 특별한 개성과 묘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생산 라인이 잠자는 겨울인 탓에 볼거리가
네 칸짜리 와인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덜컹거리면 이색 행사가 시작된다. 와인 강의, 와인 시음, 상견례, 레크리에이션…. 놀다 취하고, 취하며 놀다보면 두 시간 반이 별똥별처럼 휙 지나간다. 영동에 도착하면 또 다른 재미가 기다린다. 국악 체험, 생산 라인과 오크통이 있는 카브 견학, 색소폰 공연…. 그중 여행객들이 가장 반기는 행사는 와인 족욕이다. “와인 스물네 병을 부은 45℃ 물에 발을 담그면 누구나 행복해한다”라고 윤호중 부장은 말했다(현재 와인 열차는 리모델링 탓에 2월 말까지 정차 중이다).
한 시인은 “와인을 마시는 것은 (그 와인이 생산된 지역의) 태양과 땅을 맛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주로 가는 길에 마주친 황금빛 햇살을 보니, 컬트드라이 레드 와인의 달콤함과 고운 빛깔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전북 무주-샤또무주 해발 900m 머루의 ‘마술’ 우리가 시중에서 사먹는 유럽이나 남미 와인들은 이른바 비티스(Vitis) 속, 비니페라 종 포도로 만든다. 이 포도는 그 맛과 향이 우리가 한여름에 사먹는 캠벨 포도와 무척 다르다. 알갱이가 작고, 껍질이 두꺼우며, 단맛이 더 진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토양과 추위 탓에 이 품종을 재배하기가 어렵다. 샤또무주(www.winekr.com) 조동희 대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00년부터 머루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그 때문이다. “식용 포도(캠벨)로는 와인을 만들어도 승산이 없다고 여겼다.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머루였다”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현재 그는 해발 900m에 있는 약 1만㎡(9000여 평)의 땅에서 산머루 농사를 짓는다. 가을이면 낭창낭창한 산머루나무에 흑진주 같은 산머루가 알알이 열리지만, 한겨울에 그의 땅과 산머루나무는 흰 눈에 덮여 있었다. 게다가 여행자가 도착한 시각은 어스름한 저녁. 동남향에 날개를 편 그의 와이너리에서 바라보니, 굽이굽이 꿈틀거리는 백두대간이 늠름했다. ‘이제 서너 달 뒤면 저 능선과 머루 밭에 신록이 돋고, 높바람 대신 샛바람이 불겠지’ 생각하니, 문득 봄이 그리웠다. 시음장에서 샤또무주 ‘머루 와인 스위트’와 ‘머루 와인 드라이’의 마개를 열었다. 스위트 와인의 달콤한 향이 침을 불렀다. 그러나 타닌 함량이 적어서인지 달고 가벼운 느낌이 강했다. 반면, 드라이 와인은 보디감(입안에서 느끼는 질감 또는 무게감)과 타닌이 비교적 적당했다. 보랏빛을 띤 색깔도 매혹적이었다. 함께 시음한 사진기자는 “이제껏 맛본 국산 와인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라고 치켜세웠다. 늦은 밤, 귀갓길에 무주리조트에 있는 국내 유일의 와인 갤러리에 들렀다. 무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국내 와인 정보가 맛깔스럽게 전시되어 있는 곳. 입맛 다시며 일별하고 나니, 이제 겨우 국내 와이너리의 맛과 멋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짧은 일정은 물론이고 와이너리에 볼거리·먹을거리·놀 거리가 적어 서운했다. 그러나 이제 봄이면 달라지리라. 풍경도, 맛도, 즐거움도…. 그 외 가볼 만한 와이너리 거봉포도와 산딸기의 변신 돌아오는 길에 충남 천안의 거봉포도 와이너리(두레앙)도 들르고 싶었는데, 결국 늦어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대신 두레앙(www.duraean. co.kr)의 권혁준 대표에게서 거봉포도 와인을 받아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처음 맛본 거봉 와인은 과실 향이 짙었지만, 타닌 함량은 낮고 보디감은 가벼웠다. 2% 부족하다고나 할까. 권혁준 대표는 “시음장과 휴게 시설을 건설 중이다”라며, 오는 6월쯤 여행객들의 투어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시의 ‘산딸기닷컴’ 농장(www.산딸기.com)에서도 와이너리 투어가 가능할 전망이다. 조만간 산딸기를 따고, 산딸기 와인 ‘산愛딸기’를 시음하는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간신히 맛본 산愛딸기 와인의 맛은 독특한 신맛 탓에 다른 와인들보다 훨씬 더 새콤했다. 이 외에도 경기 화성의 샌드리버와 대부도에서도 와이너리 투어가 가능하다. 특히 화성 송산면의 샌드리버에 가면 ‘포리버’라는 캠벨 포도 와인의 달콤새콤한 흥취에 젖을 수 있다. |
출 처 : 시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