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정보

지구촌 누비며 삶을 바꾼다

봄이나라 2008. 3. 5. 14:27
꿈을 현실로 만드는 세계일주 여행에 나선 사람들… 지금 당신은 남루한 일상을 탈출하고 싶지 않은가

세계일주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남루한 일상을 탈출해 삶의 여유를 찾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왜 인생의 하프타임에 떠나는 것일까. 더 이상 세계일주 여행자를 부러워 말고 당신도 떠날 준비를 서둘러보자.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 표지디자인/ 장광석


“세계일주 여행은 사우샘프턴 항구에서 끝이 났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세계일주 항해를 마쳤다는 데 대해 나는 은근히 뿌듯해졌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잠깐에 불과했다. 천문관측소에서 나온 발표에 따르면, 먼 우주 별빛이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속도와 거리로 계산하면, 내 여행 코스는 불과 1분30초에 지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므로 내 허영심은 깨끗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자만심이란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 조금만 귀를 열어두어도 이처럼 금세 코가 납작해진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1895년 1년 동안 증기선을 타고 세계일주를 다녀와 남긴 글이다. 100여년 전 마크 트웨인뿐만 아니라 세계일주는 누구나 한두번쯤 품는 꿈이다.

무책임한 충동과 용기 있는 결단 사이

중소기업의 부장인 김상준(39·서울 중랑구 면목동)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김씨는 1970년대 중반 10대 잡지 <새소년>의 연재 만화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을 본 뒤 세계일주를 꿈꾸기 시작했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그린 이 만화를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는 공산주의자를 꼬리가 달리고 머리에 뿔이 난 짐승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에서 공산주의자가 국회의원에도 당선된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외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씨는 아직도 세계일주를 떠나지 못했다. “지금은 가족들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할 때”란 책임감 때문이다.

최근 적지 않는 사람들이 세계일주를 했거나 하고 있다. 돈과 시간이 많은 ‘팔자 좋은’ 사람들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대부분 대학생·회사원같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한창 일할 30·40대가 세계일주를 준비할 경우 주위의 반응은 엇갈린다. 20대는 ‘부럽다. 잘 다녀와라’라는 덕담을 듣지만, 30대와 40대는 ‘갔다와서 뭐 먹고 살 건데’란 질문에 시달린다.

세계일주를 가겠다는 직장인에게 휴직을 허락해주는 마음 좋은 일터는 드물다. 4인 가족이 1년 동안 세계일주를 떠난다면 대략 1억원이 든다. 게다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휴학을 해야 한다.

여행정보 사이트 ‘아쿠아’ 운영자인 왕영호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셋돈이라도 빼서 가겠다는 세계일주에는 부정적이다. “사람들이 너무 낭만적으로 세계일주를 생각한다. 기분 내키는 대로 떠나는 세계여행은 무모하다. 차라리 1주일이든 보름이든 한달이든 시간 나는 대로 동남아·미국·유럽 등을 지역별로 갔다오는 게 낫다.” 실제 지난해 12월 세계일주를 마친 이아무개(29)씨는 1년 동안의 공백을 쉽게 메우지 못해 고민이다. “취업 경쟁자들에 비해 뒤처진 느낌이 든다. 이력서를 넣는 곳마다 떨어지자 대책 없이 시간과 돈만 낭비한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한국 사회에서 30·40대의 세계일주는 무책임한 충동과 용기 있는 결정이라는 극단적 평가를 받는다. 왜 이들은 편안하지만 남루한 일상을 벗어나려는 것일까. 최근 세계일주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20·30·40대들을 만나봤다.

가족 여행을 다녀와서- 이성씨 가족

시야 넓히고 배짱 키웠다

먼저 우리 사회에 일가족 세계일주 바람을 불러일으킨 이성(48) 서울 구로구 부구청장 가족을 만났다. 2000년 7월 서울시 시정개혁단장이던 그는 전셋돈 9천만원을 털어 가족 4명과 함께 1년 동안 40여개 나라 200여 도시를 돌아보고 왔다.

이성 부구청장은 “자신은 운 좋게 돌아온 뒤 서울시에 복직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40대 직장인은 직장을 포기하지 않으면 세계일주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가 무급 휴직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사직을 해서라도 세계일주를 떠날 생각이었다고 했다.


△ 일가족 세계일주 바람을 불러일으킨 이성 서울 구로구 부구청장 가족. 이씨는 세계일주 여행을 통해 고정관념과 편견, 욕망을 버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박승화 기자)

그가 별난 사람일까. 그는 아니라고 했다. “세계일주가 유별난 생각은 아니다. 내 나이 또래의 성인 남자 열명 중 다섯명쯤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몇번씩은 세계일주의 꿈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다섯명 중의 한명일 뿐이고, 그 꿈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실현했을 뿐이다.”

그래도 ‘올인’식 세계일주 결정은 무모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 이 부구청장은 “직장 문제만 없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떠나라고 발벗고 나서서 권하고 싶다. 앞으로 세계일주를 한 가족들이 늘어나면 세계일주 가족 계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번에 못 가본 티베트, 네팔, 중국 서부지방 등을 꼭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부인 홍현숙(47)씨도 “가족 세계일주 여행이 힘들지만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 7월 세계일주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를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얻으려고 간 것이 아니다. 비우려고 간 것이었다. 내 머리를 꽉 채우던 온갖 생각들, 고정관념들, 편견들, 그리고 욕망 등을 버리려 한 것이었다.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하다. 그것만으로 나는 족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그는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가겠다’는 배짱이 생겼다.

1, 2년 늦게 학교 마쳐도 문제 없어

세계일주를 꿈꾸는 40대를 가로막는 것은 직장 문제와 자녀교육 문제다. 부인 홍씨는 남편의 세계여행 제안을 듣고 ‘3초 만에’ 바로 찬성했지만, 뜻밖에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다. 사춘기인 아들 홍일(19)·영일(18)군과 처조카 홍익환(14)군은 1년 휴학하면 친구들이 선배가 된다는 데 큰 부담을 느꼈다. 그는 ‘입시에서 재수한 사람도 많고 나이 들면 1~2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아이들을 설득했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복학한 아이들은 잘 적응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이 부구청장은 올해 고3 올라가는 큰아들 홍일군은 지난해 6월 직선으로 뽑는 학생회장에 당선됐다고 자랑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친화력과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니 학생회장에 당선된 것 아니겠느냐. 비록 큰아이가 한해 ‘꿀었지만’ 학교에 적응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 어려움을 직접 헤쳐나간 아이들의 경험은 몸속 깊은 곳에 남아 인생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세계일주 경험이 업무 수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지난해 구로구 관내에서 육교 하나를 없애고 횡단보도를 만들었다.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를 다녀보니 우리처럼 지하도와 육교가 많은 도시가 없더라. 에스켈레이터도 없이 사람을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

2월 중순 전국 최초로 장난감 도서관이 구로구에서 문을 연다. 연회비 1만원만 내면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도서관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빌려갈 수 있다. 그는 세계일주할 때 파리에서 본 장난감 도서관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장난감 도서관 개관을 추진했다.

“세계일주는 남아도는 시간과 돈을 주체할 수 없어 멀리 오래 놀러가는 게 아니다. 세계일주 뒤 인생을 보는 폭과 깊이가 넓어지므로 몸담고 있는 직장의 업무수행에도 도움이 된다. 직장 때문에 세계일주를 망설이는 사람이 많은데, 직장에서 세계일주를 직원 자비 연수 개념으로 받아들여 무급 휴직이라도 허용했으면 좋겠다.” 이 부구청장 가족의 세계여행기는 책으로 출판됐고, 인터넷(webtour.com)에서도 볼 수 있다.

가족 여행을 준비하며- 사물놀이단 공새미

인생 하프타임에 삶의 패러다임 전환

가족사물놀이단 ‘공새미’(gongsaemi.com)가 2월23일 333일 동안의 세계일주 공연을 떠난다. 김영기(44)씨의 명함에는 ‘공새미 아빠’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지난해 8월까지 대기업 부장이었다. 그는 세계일주를 위해 18년 동안 몸담은 직장을 그만뒀다. 요즘 그는 부인 강성미(42)씨와 딸(16), 아들(13), 막내딸(6)과 함께 여행 준비에 정신이 없다.

그는 2000년 여름 일본 출장을 갔다가 탄 지하철에서 세계일주를 결심했다. “우연히 전동차 선반 위에 놓인 한국 신문에서 전셋돈을 빼서 세계여행을 가는 공무원 가족 이야기를 읽었다. 그 공무원이 이성 구로구 부구청장이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세계일주를 하고 싶었지만 꿈을 못 이루고 있는데, 그 꿈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선하고 자극이 됐다.”


△ 세계일주 공연 여행을 앞두고 있는 가족사물놀이단 공새미. ‘공새미 아빠’ 김영기씨는 대기업 부장 자리를 박차고 여행 준비에 나섰다.(류우종 기자)

1억원가량 드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모아둔 돈을 모두 털어야 했다. 여행 경비 후원자를 얻기 위해 대기업과 관공서 등에 여행 제안서를 내기도 했지만 ‘다음에 보자’는 말뿐 뒷소식이 없었다.

그에게 ‘앞날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의외로 담담했다. 다녀와도 뽀족한 수는 없다고 했다. “나도 불안하지만 또래 직장인들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주위에서 40대 중반은 아직 돈을 벌어야 할 때라고 충고한다. 인정한다. 여행을 갔다와서 안정적인 생활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반면에 가족들이 어울려 세계를 돌아다니며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아마 1년 동안의 여행을 통해 나눌 가족간의 대화가 나머지 인생에서 전체를 합한 것보다 많을 것이다. 돈이 중요하다면 가족도 중요하다. 현실에서 돈이나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한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에 선택이 다를 것이다. 나는 가족을 선택했다.”

부인 강성미씨도 ‘뭐 먹고 살 거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전처럼 남은 인생을 승진과 돈 모으기에 매여 살기 싫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살면 마음이 편해진다. 역설적으로 그동안 벌어놓은 재산이 많지 않기에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더 집착하고 집착하면 떠날 수 없다.”

회사형 인간의 가족형 인간 선언

김씨는 세계일주를 통해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지만, 40대 중반에 접어든 부부가 가장 큰 수혜자라고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하프타임을 맞았다. 인생의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하프타임은 내년 여행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돌이켜보고 정년이 없는 직업을 찾아보고 싶다. 하프타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래의 나를 찾고, 다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공새미 가족에게 세계일주는 삶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그는 세계여행을 결심하기 전에는 일에 파묻힌 회사형 인간이었다. 주말이면 피곤에 찌든 아빠는 집에서 잠을 자고 아이는 엄마와 놀러다녔다.

그는 2000년 세계일주를 결심하고 3년 동안 3단계로 나눠 세계일주를 준비했다. 그는 2001년 6월 가족과 일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온 가족이 참여하는 가족 사물놀이단 공새미를 만들었다. 큰딸 현정이가 초등학교에서 사물놀이를 배운 것을 계기로 온 가족이 사물놀이를 배워 2년째 지하철과 사회복지 시설에서 공연을 했다. ‘공새미’는 고향인 제주도 마을의 커다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다. 수도가 없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수 구실을 하던 공새미처럼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가족끼리 사랑도 마르지 말자는 뜻이다. 공세미 가족에게 세계일주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나를 찾는 여행’의 출발이다.

부부 여행을 다니면서- 이강훈 · 강영의씨 부부

쿨하고 느긋한 삶을 찾아서

지난해 5월23일 한국을 떠난 이강훈·강영의씨 부부는 9개월째 여행 중이다. 이들은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튀니지,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그리스, 터키, 이집트, 요르단, 타이를 거쳐 현재 브라질에 머물고 있다. 이들과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아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브라질 인터넷 카페에서는 한글을 쓸 수 없어, 답변을 노트북으로 출력해 스캔받은 뒤 JPG 첨부파일로 보내왔다.

이강훈(31)씨는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 않고 떠난 여행이지만 통장의 잔고도 넉넉지 않고 전세 기간도 끝나가서 올 7월께 돌아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은 기간에는 중남미를 돌아볼 계획이다.


△ 인터넷에 여행 사진을 올려 네티즌들의 관심 속에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이강훈 · 강영의씨 부부. 지난해 5월 여행을 시작한 이들 부부는 현재 브라질에 있다.

이씨는 딱히 세계일주를 꿈꾼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는 대학 졸업 뒤 몇년 동안 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기대했던 것과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보고 위기감이 들었다. 여행을 하는 일종의 공백 기간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다른 삶을 모색해보려고 했다.

경제적 능력보다 정신적 여유가 관건

남편에 비해 부인 강씨의 이야기는 쿨하다. “거창한 여행 동기나 이번 여행으로 무얼 꼭 얻어야겠다는 목적의식은 없다. 내가 여든까지 산다면, 한두해 혹은 몇해 정도는 좀더 먼 곳의 다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구경하고 경험하고 싶었다.” 강씨는 “여행이 끝난 뒤의 상황이 순탄치 않겠지만, 세끼 밥은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보다 살아가는 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여행 중 느낀 작은 깨달음 중의 하나”라고 전했다.

이씨는 여행을 떠나기 전 두려운 게 많았다. 수년간 쌓아온 경력을 버려야 했고, 낯선 곳에서 아프지 않을지, 사고를 당하지 않을지, 여행 뒤 불안한 전망 등에 대한 걱정이 그를 괴롭혔다. 이씨는 “신경을 건드리는 현실적 고민거리가 숱하지만 여행 뒤 예전처럼 빡빡하게 쫓기듯 빠르게 살지 않겠다. 느긋하게 사는 법을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우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여행을 하듯이, 인생도 공식이나 모법답안이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장기 세계 여행을 가려면 물질적 여유보다 정신적 여유가 더 관건이라며 지금 당장 할 일과 의무감 때문에 떠날 수 없겠지만 의지를 갖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면 세계일주가 절대 무책임한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여행 기간 동안 찍은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여행기를 홈페이지(salk02.com)에 올리고 있고, 귀국해서 이들을 모아 책을 만들 계획이다.

공연 여행을 떠나려고- 2기 아리코리아 대원들

청춘의 열정으로 ‘무모한’ 도전

2002년 3월26일 20대 대학생 5명이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겠다며 장구, 꽹과리, 징을 들고 세계로 떠났다. 이들은 단순한 대학생 배낭여행이 아니라 세계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겠다는 ‘한국 대학생 문화 실크로드’ 구실을 자임했다. 아리코리아(goworldgo.net)란 말은 아리랑과 코리아에서 따왔다.

이들은 413일 동안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북미 대륙의 59개 나라 도시들에서 전통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마당놀이와 사물놀이를 선보였다. 매일 저녁 그 나라의 공연을 보고 감상문을 적었다. 우리의 눈으로 세계를 배우고 세계에 우리의 모습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 한국 대학생 문화 실크로드 구실을 자임하는 ‘아이코리아’. 이들은 장구, 꽹과리, 징 등을 들고 세계 각국에서 전통문화 공연을 펼친다.

일부 사람들은 돈도 경험도 없는 이들의 무모한 도전을 걱정했다. 아리코리아 인력관리팀장인 김석현(28·중앙대 연극학과 4년)씨는 “처음에는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여행 경비가 부족해 무전여행에 가까웠다. 공연 작품을 놓고 토론하면서 대원들 사이에서 이견이 터져나왔다. 외국 당국의 허가를 받고 거리공연을 하는데도 꽹과리 소리가 시끄럽다고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는 환영을 받았지만 유럽 일부 나라에서는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차가웠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짐을 도둑맞고 돈마저 떨어져 거리공연 뒤 모금을 벌여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413일 동안의 경험, 대물림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난관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공연 때문이었다. 아리코리아 탐험대장인 김형준(29·중앙대 연극학과 4년)씨는 공연을 하며 다니지 않았다면, 1년이 넘는 동안 24시간 같이 무언가를 붙어서 한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물놀이를 하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고, 서로 눈빛을 보며 웃고, 흥을 돋워야만 하는 덕택으로, 마당놀이를 하면서 서로의 눈을 보며 감정을 표현하며, 그렇게 하나가 됐다. 서로가 다른 주관과 생각, 행동 때문에 티격태격하고 상처도 많았지만 서로 그 아픔을 보듬어주려 하고 서로서로 더 커가고, 이해심과 이타성을 배웠다.”

아리코리아는 지난해 말 2기 40여명을 뽑아 7월 말부터 2005년 2월 말까지의 해외 공연을 목표로 연습을 하고 있다. 겨울방학이지만 요즘 2기 아리코리아 대원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공부를 한다. 풍물강습, 승무, 민요, 탈출, 굿, 남사당패 땅재주, 돌기, 구르기, 덤블링 같은 애크로배틱 동작을 배운다.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프랑스어·일어·중국어·스페인어 회화도 배워야 한다.

연극·음악·무용 전공자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문화예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아리코리아 대원이 될 수 있다. 대원들은 관련 교육 경비와 개인 비상금을 제외하곤 여행 경비를 내지 않는다. 아리코리아는 기업과 독지가들로부터 협찬을 받을 예정이다.

김석현 팀장은 “국내 문화를 외국에 알리기 위해서는 국가기구가 공식적으로 홍보하는 것보다는 아리코리아같이 민간단체가 나서 전통문화를 알리는 게 효과적이다. 정부도 이런 측면에서 관련 정책을 입안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출처 : 한겨레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