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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통해 일상을 찾다 - 주하이린, 빈진향 부부

봄이나라 2008. 3. 5. 13:13


대학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 직장 생활 3년 차였던 스물여덟 동갑내기 주하아린과 빈진향 씨 부부가 갑자기 사표를 던졌다. 그러고는 한 달쯤 지나서 세계 일주에 나섰다. 친구들과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일탈을 감행한 이들 부부는, 그러나 여행을 통해 신선한 일상을 얻었다.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워온 주하아린, 빈진향 부부는 서울대학교 캠퍼스 커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하아린 씨는 IT 회사에, 빈진향 씨는 제약 회사에서 근무했고 결혼도 했다. 여기까지는 뭐 별다를 것이 없는 보통의 인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하아린 씨가 빈진향 씨에게 물었다.
“각시야, 우리 세계 여행 할까?”

당시 직장 생활 3년 차 신드롬을 심하게 겪고 있던 이들은 2003년 1월 말 별 대책 없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한 달쯤 지난 3월 4일에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날아갔다. 마치 친구네 집에 갔었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여행의 시작을 꺼내려는 주하아린 씨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 빈진향 씨가 모범생 기질(주하아린은 아내를 가리켜 속어로 ‘범생이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을 발휘하여 덧붙였다.



“오클랜드로 간 표면적 이유는 어학연수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부터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하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게 뻔했거든요. 이미 저희는 오클랜드에서 세계 일주 항공권을 구입하면 우리나라에서보다 50만~60만원가량 저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구요.”

어학연수를 받는 12주 동안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을 만나 여행 정보를 모으고, 원월드 세계 일주 항공권을 구입했다. 이때 가장 많이 참고한 여행서는 <론리 플래닛>이지만, 빈진향 씨는 단연코 현지인에게 얻은 정보가 가장 유용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속성으로 준비한 여행은 시드니를 거쳐 남미, 유럽, 몰디브와 인도까지 이어졌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전세로 내준 돈으로 하는 여행이라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꼼꼼하게 챙긴 것은 카메라 장비를 챙겼다.

“털털한 성격의 남편 덕분에 여행 계획을 세우고 방향타를 잡는 것은 제 몫이었지요. 특히 남편은 방향 감각과 외국 지명 외우는 데는 빵점이죠. 칠레 제일의 항구인 발파라이소를 가리켜 인천이라 부르고, 고대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를 기억해 낼 땐 ‘거기 경주 말이야’라고 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장비를 챙기는 것만큼은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두 대의 디지털 카메라와 한 대의 캠코더, PDA와 노트북까지 딸린 온갖 장비와 코드, 어댑터를 꼼꼼히 챙겨 넣은 그의 가방을 열어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랍니다.”

408일 동안 여행하면서 들어간 총 비용 4000만원 가운데 두 사람의 항공료 약 570만원과 카메라, 노트북 등을 구입한 비용 530만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로코 감옥에서 울고 몰디브 바다에서 웃다
여행은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소중한 카메라와 렌즈를 남미에서 분실하고 다시 사느라 고생을 했지만, 진짜 큰 시련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입국했을 때 벌어졌다. 입국을 거부당하고 경찰서에 끌려간 것. 이름이 적힌 명패를 들고 피의자 사진까지 찍은 이들 부부는 철창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컴컴한 감옥으로 내려가는데 온갖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르더라구요. 너무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리니까 먼저 수감되어 있던 이슬람 여인이 절 끌어안으며 등을 두드려줬어요. 불어권 국가라 영어로 의사소통도 안 되고 철창 신세를 지게 된 영문도 몰랐습니다. 다행히 모로코 주재 한국 대사관 영사의 도움으로 문제가 잘 해결되었고, 남편의 여권 사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등골이 오싹한 순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몰디브에서였다. 남말레 굴히 섬에 사는 어부 ‘사심’의 집에 체류했던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안주인과는 빨래를 함께 널 정도로 친해졌고, 사심과는 매일 낚시를 하러 나섰다. 한번은 바다 한 가운데서 조각배를 둘러싼 100마리는 족히 넘을 듯한 돌고래와 만났다.

“몰디브에는 유명한 네 가지 어족이 있습니다. 백상어, 거북, 돌고래, 만타. 만타는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가오리처럼 생긴 어종이지요. 거기에서 니모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나왔잖아요? 이 넷을 모두 만났고, 바다 속 협곡에서 마치 눈보라처럼 눈앞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물고기들과 놀았답니다.”

인도 함피에서 겪은 일도 잊지 못한다. 빨래하고 몸을 씻고 수영하는 일이 모두 한자리에서 이뤄지는 강변에서 막 세수를 마친 수염 난 아저씨의 모습은 헤어스타일이 근사한 청년 같았고, 몰려드는 거지 떼를 물리치고 릭샤(인도의 인력거) 기사와 짜증 나는 흥정을 해야 할 때는 남들이 인도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다는 도 道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처럼 고통스러웠거나 아름다웠던 소중한 여행의 흔적은 두 사람의 카메라 속에 고스란히 담겼고, 2004년 1월에 <좌린과 비니의 사진 가게>(랜덤하우스중앙)라는 책도 냈다. 이들은 책 속에서 여행 도중 시시각각 변화했던 자신들의 감성을 그들만의 목소리와 사진으로 솔직하게 보여주며 그들이 경험한 여행의 추억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많이 참고하게 되는 여행서에서 말한 관람 포인트를 무시하세요. 유용한 정보도 많지만, 때로는 그저 길이 이어진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눈에 들어오는 대로 부딪히며 나만의 느낌으로 여행을 하자는 것이 아내와 제 방식이었습니다.”



사전 준비를 치밀하게 하라는 것이 여행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인 반면, 이들의 여행법은 한마디로 돈키호테식이다.
“고민을 너무 많이 했다면 세계 일주를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저희에게 세계 일주는 만화 <엄마 찾아 삼만리>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에 등장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상과 같았습니다. 환상과 두려움을 버린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 같은 세계 여행을 마친 그들에게 무엇이 달라졌을까?
“1년이 넘는 시간을 둘이서만 보내면서 시련을 공유하면 서로 눈빛만 봐도 알고 모든 허물을 다 덮는 도통한 부부가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구요. 세계 여행이 일탈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우리들 일상에서도 가끔 일탈이 일어나니까 별스럽게 포장할 일도 아니구요.”

담담하게 말하는 아내의 말에 이제 막 서른이 된 주하아린 씨는 지금쯤이면 어늬 회사 책상머리에 앉아 과장 자리라도 꿰차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아마 그 자리에 있었다 해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처럼 인생에 대한 불안감은 비슷하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었다.
세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사진 가게를 차렸다. 정식으로 숍을 가진 것은 아니고, 자신들이 찍어 온 사진을 틀에 넣어 홍대 근처의 희망시장이나 인사동에서 판매를 했는데, 9000원씩 내놓은 이 작품들은 꽤 좋은 반응을 얻어 많게는 하루에 50매 이상 판매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는 예술가들이 자신이 직접 만든 작품을 파는 시장이 크든 작든 형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가 유명한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이렇게 직접 만든 작품을 가지고 작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그렇게 손수 만든 작품을 직접 거래하는 길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다소 무모하게 시작한 세계 여행이라는 일탈에서 벌어진 에피소드와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들의 감수성은 홈페이지(www.zwarin.com, www.beanytime.com)에 수록된 여행기와 사진들을 통해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미니 앙케트
1. 여행 기간과 여행 경비 408일, 4000만원
2. 이용한 항공권 원월드 세계여행 항공권
3. 사용한 디지털 카메라 니콘 쿨픽스 5700, 캐논 파워샷 G3, 캐논 EOS 300D
4. 가져가서 유용하게 사용한 물건 플랙서블 어댑터, 라면 수프, 침낭
5. 다시 세계 여행을 한다면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너무 많다. 겨울이 가기 전에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를 여행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