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야기

와이너리 투어 관련 정보

봄이나라 2008. 12. 12. 11:40
와인이 태어난 곳, 보르도 취재기
세상 모든 음식이 제 짝을 찾을 수 있는 와인 천국
와인 숍과 대형 마트에서 와인을 사고 레스토랑과 바에서 와인을 마실 때마다 다짐한다. 언젠가는 이 와인이 태어난 그 땅을 밟고 공기를 직접 마셔보겠노라고. 그런 꿈을 실현할 여유가 생기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보르도다.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취하게 만드는 그곳에서 만난 와인과 음식.



보르도 시내의 레스토랑 겸 스튜디오 ‘세크레 데 셰프’에서는 와인과 음식 매치 강좌를 실시하는데, 셰프가 눈앞에서 직접 요리하며 조리법과 특색을 설명해주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볕 좋은 오후에는 중세의 모습이 남아 있는 보르도 시내 카페에서 와인 한 잔 시켜놓고 휴식을 즐긴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취하라, 항상 취하라.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않으려면 우리는 취해야 한다. 술이건 시건 덕성이건 그대 좋을 대로 취하라”라고 노래했다. 무엇인가에 취해야 한다면 보르도 와인보다 더 적절한 선택이 또 어디 있을까. 레드, 화이트, 드라이, 스위트, 스파클링 와인. 매일 다른 와인을 마신다고 해도 이곳의 모든 와인을 다 맛볼 수는 없을 것이다. 최고의 맛과 향과 색을 자랑하는 것은 물론이다.

보르도는 그 자체로 와인이다. 대서양을 곁에 두고 가론 강과 도르도뉴 강이 하나로 합쳐져 만든 지롱드 강 좌우로 넓게 포도밭이 펼쳐진다. 바다와 강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습기, 대서양의 외풍을 막아주는 렁드 숲, 1년 내내 온화한 기후. 신이 와인을 탄생시키기 위해 보르도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이 넓은 땅 곳곳에서 약간의 기온 차이, 약간의 토양 차이로 지역마다, 아니 샤토마다 제각기 개성을 자랑하는 와인이 태어난다. 점토 토양에서는 무게감 있고 섬세한 와인이, 석회질 토양에서는 가볍고 상큼한 와인이, 자갈 토양에서는 균형감 잡히고 풍부한 보디의 와인이 생산된다. 타닌 성분이 많아 힘차고 강한 카베르네 소비뇽, 부드럽고 우아한 메를로에 프티 베르도와 말벡이 섞여 들어가 최상의 레드 와인이 태어나고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을 기본으로 뮈스카델을 더해 단단한 느낌의 개성 강한 화이트 와인이 만들어진다. 보르도 와인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블렌딩의 마술’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품종을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섬세한 밸런스와 복잡다단함이 마술처럼 살아난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페트뤼스, 샤토 라투르처럼 유명하고 비싼 와인부터 우리나라 물 값만큼이나 싼 와인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그러니 와인 애호가들이 ‘보르도. 친절한 그 이름에 영광 있으라’ 기도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보르도를 방문한다면, 제일 먼저 보르도와인생산자협회CIVB로 향해야 한다. 와인 상인의 집을 개조해 만든 이곳 1층의 와인 바에서는 매주, 매달 57개의 AOC 와인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늘 새롭게 소개된다. 가볍게 목을 축인 다음에는 보르도 와인을 공부할 차례다. 와인 공부라면 이미 서울에서 지겹도록 해보았고 와인에 관한 책을 몇십 권 읽었다 해도, 와인 향이 대기에 배어 있는 이곳에서 직접 와인을 보고 듣고 마시며 공부하는 것은 다르다. CIVB 2층에 자리한 보르도 와인 스쿨Ecole du Vin의 3시간짜리 기본 강좌만으로도 마실 때마다 우리를 괴롭히던 ‘단단한 보디’, ‘사냥한 짐승의 향기’, ‘타닌이 강하게 느껴지는’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와인의 전통이 깊다는 것은 와인 교수법의 전통 또한 깊다는 말이 아니던가.

우리 귀에 익은 메도크나 포므롤 등은 보르도에 자리한 지역명인 동시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 이름이기도 하다. 프랑스 와인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원산지 호칭 제한AOC이다. 쉽게 말해 보르도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에만 ‘보르도 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며 이런 명칭을 쓸 수 있는 지역을 법으로 정해놓은 기준이다. 보르도 AOC 와인 생산 지역은 오메도크·생테스테프·포이약·마고 등으로 유명한 메도크Medoc 지역, 페삭레오냥으로 유명한 그라브Graves, 생테밀리옹·포므롤·프롱삭 등의 리부르네Libourne 와인, 소테른Sauternes, 앙트르되메르Entre-Deux-Mer 등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품질 좋은 와인이 탄생하고 그 와인들은 세상 어떤 음식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www. bordeaux.com


푸아그라 농장의 한가로운 풍경.

wine+초콜릿 와인과 음식 매칭 수업의 시작은 초콜릿이었다. 술과 초콜릿이 어울리기나 하냐며 펄쩍 뛸 열혈 주당도 있겠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매치도 드물다. 우유 함량과 카카오 함량에 따라, 또 첨가한 너트나 과일 등에 따라 초콜릿마다 각기 어울리는 와인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메를로가 주 품종인 2005년 포므롤과 너트가 들어 있는 프랄린을 시작으로 타닌이 강하고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 품종인 2004년 포이약 와인과 과일(혹은 아로마)이 들어 있는 가나슈, 2003년산 소테른과 헤이즐넛 초콜릿 등 다양한 매치가 이어졌다. 7종의 와인과 7종의 초콜릿이 만들어내는 그 복잡한 매치를 통해 어떤 경우 초콜릿의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거나 와인의 타닌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조언을 해준 보르도 와인 스쿨의 웬디 나르비Wendy Narby는 이렇게 각기 다른 향과 맛의 초콜릿에 어울리는 와인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보르도 와인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맛’이란 결국 개인의 취향이지만,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드라이한 와인과 초콜릿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와인과 초콜릿 매치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면 보르도는 물론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쇼콜라티에 중 하나인 ‘카디오 바디Cadiot Badie’에서 초콜릿을 산 다음 CIVB의 와인 바로 달려가 서너 종의 와인을 시켜놓고 직접 매치를 경험해보시길!

wine+푸아그라 캐비아, 트뤼플(송로버섯)과 함께 3대 진미로 꼽히는 푸아그라는 인위적으로 사료를 많이 먹여 영양분이 잔뜩 저장된 거위의 간을 말한다. 고대 이집트 기록에도 남아 있을 만큼 역사가 오랜 진귀한 음식으로 유명하다. 최근 들어 동물 학대 반대 운동과 채식 열풍에 밀려 그 인기가 살짝 주춤하다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식재료임이 틀림없다. 1878년에 시작해 5대를 이어 운영중인 푸아그라 농장 ‘페르므 뒤 물리나Ferme du Moulinat’의 운영자 셀린은 건강하고 씩씩한 여장부였다.


1 너트, 과일, 차 등 다양한 맛과 향이 가미된 초콜릿과 와인의 매치 .
2 아르카숑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특산물인 굴과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만드는 환상의 궁합을 맛보아야 한다.
3 빵과 버터, 라면과 김치처럼 와인과 치즈는 완벽한 파트너가 된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와인과 셀 수 없이 많은 치즈가 셀 수 없는 조합을 만들어낸다.

“푸아그라 농장은 동물을 학대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장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사육해야 하니까요.” 최근에는 거위 대신 기르기 쉬운 오리를 이용해 푸아그라를 만든다. 4개월 동안 넓은 농장에 방목한 후 새장에서 12일간 키우며 하루에 두 번(총 24회) 직접 재배한 옥수수를 모이로 준다. 소비자들이 모든 사육 과정을 알 수 있게 투명하고 위생적인 관리가 뒤따른다. 농장 안내를 마친 셀린이 푸아그라, 오리고기 육포와 함께 준비한 것은 단맛이 강한 화이트 와인. 푸아그라 특유의 기름기와 느끼한 맛을 상큼하게 씻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궁합이다. 소테른 지역의 스위트 와인은 그 품질이 최고로 인정받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샤토 디켐. 부패라고 하면 당연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야가 바로 와인이다. 효모균이 포도의 과육 부분을 건조시켜 당분을 집중시키는 과정에서 진한 향과 맛이 나는데, 그래서 스위트 와인을 ‘귀부 와인noble rot’이라 한다. 지나치게 부드럽지 않고 활달한 맛이 소박하면서 힘이 넘치는 와인과 푸아그라의 매치에 새삼 감격했다. 창 밖에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오리들이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4 맛과 향 모두 달콤한 소테른 와인과 푸아그라는 미식의 천국인 프랑스에서도 가장 높이 평가하는 미식이다.
5 아스파라거스 농사를 짓는 베로니크는 병조림, 통조림, 잼 등 다양한 아스파라거스 가공품을 직접 만드는 수완 좋은 농사꾼이다.
6 보르도 하면 레드 와인을 떠올리겠지만 최근 보르도에서 각광받는 와인은 단연 화이트. 특히 앙트르되메르 와인의 심플하면서 힘 있는 느낌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wine+굴 요즘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는 물가 비싼 칸이나 니스 가 아니라 보르도 지역의 작은 마을 아르카숑Arcachon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총리 시절 자주 머물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 아르카숑이 감사해야 할 대상은 바로 굴이다. 현재 유럽에서 생산되는 양식 굴의 80%가 아르카숑산이다. 알 상태의 굴을 여름철에 가져와 3년간 키우는데, 사람의 손길은 가능한 한 배제하기에 100% 자연의 맛을 자랑한다. 서양에서는 ‘철자 R가 들어간 달에만 굴을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9월에서 4월 사이, 즉 기온이 높지 않을 때만 먹으라는 지혜가 깃든 말이다. 굴 시즌의 막바지에, 막 바닷물에서 건져낸 굴에 레몬을 꾹 짜서 뿌리고 훌훌 먹었다. 그 맛을 더해준 것이 앙트르되메르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 샤토 랑드로Ch.Landereau 2007과 샤토 마르티뇽Ch. Martinon 2007. 소비뇽과 세미용, 뮈스카텔 세 가지 품종으로 만드는 이 와인은 굴의 비릿한 맛을 씻어내 굴 특유의 달착지근한 뒷맛을 더욱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7 생테밀리옹의 와인 바 겸 레스토랑 ‘랑베르 뒤 데코르’. 생테밀리옹 와인을 곁들여 호쾌한 지역 전통 요리를 맛보기에 최고인 레스토랑이다.
8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분자 요리. 분자 요리의 대가 티에리 마르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코르데양 바주’의 대표 음식.

wine+아스파라거스
서울 대형 마트의 아스파라거스는 가느다랗고 푸르스름해서 병에 걸린 소녀 같지만 보르도에서 만난 아스파라거스는 햇빛과 바람 속에서 자란 시골 청년처럼 다부진 느낌이다. 오래된 성채 도시 블라이Blaye, 아스파라거스기사단으로 선정될 만큼 이 지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베로니크와 장 마리 카뮈 부부의 농장을 방문했다. 아스파라거스는 흙을 두텁게 쌓아 올리고 그속에서 재배하는데, 이렇게 햇빛을 안 본 것은 희거나 연한 크림색이고 햇빛에 노출되면 초록색으로 변한다고. 검은 모래 토양에서 잘 자라는 아스파라거스는  씨를 뿌린 후 첫 3년 동안은 수확하지 않고 계속 성장만 시키고 그후 8년간 계속 수확할수있다. 워낙 빨리 자라기 떄문에 잠시도 눈을 뗄수없고 매일 수확해야 하니 만만찮은 중노동인 셈이다. 아스파라거스의 제철은 4월에서 6월.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낸 아스파라거스는 차갑게 해서 전채로 먹을 수도 있고, 각종 소스를 뿌려 메인으로 즐길 수도 있다. 이때 함께 곁들이면 좋은 와인은 코트 드 블라이 Cote de Blaye산 드라 이 화이트 와인인데, 과일 향이 특징인퐁트 리 퐁트Font L’y Font2007을 마셔보았다. ‘그 땅에서함께 나는 와인과 식재료라면 최상의 매치’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토양과 기후에서 자란 포도와 아스파라거스는 묘하게 닮았다.

wine+분자 요리 카즈Cazes 가문이 운영하는 샤토 랭시 바주Ch. Lynch Bages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애정의 결과물이다. 포도밭이 전부인 한적한 마을 바주를 장 미셸 카즈와 그의 가족은 보르도에서도 가장 멋진 휴양지로 만들어놓았다. 랭시 바주는 가격 대비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와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방문객에게도 친절한 샤토 중 하나다. 19세기 와인 양조 과정을 그대로 보존하는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설비로 와인을 만들어내는데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종으로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이 약간 들어가 힘차고 강건하면서도 우아한 맛이 난다. 이 작은 마을이 유명해진 데에는 역시 카즈 가문 소유의 레스토랑 호텔 ‘코르데양 바주Cordeillan Bages’의 공이 컸다. 분자 요리의 대가로 <미슐랭 가이드>에서 투 스타를 받은 셰프 티에리 막스Thierry Marx의 지휘 아래에 극도로 과학적이고 정확한 방식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맛 이상의 정교하고 이색적인 맛을 실현해낸다. 쌀 대신 숙주나물(머리와 꼬리를 떼고 준비한다)로 리소토를 만들고 질소를 주입해 만든 거품 무스로 삶은 생선을 장식한다. 80유로에서 150유로 정도면 세트 메뉴를 맛볼 수 있는데, 랭시 바주의 와인과 함께한다면 더욱 좋을 듯. 이곳에 간다면 와인 셀러 구경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보르도 최고의 그랑 크뤼급 와인이 우아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 보관되어 있는데, 마치 종교 시설에 온 듯 엄숙함마저 느껴진다.


1 블라이의 ‘비스트로 드라 시타델’’에서 만난 선 굵은 전통 요리.
2 보르도의 전통 과자인 카늘레 만드는 모습은 시내 곳곳의 제과점에서 유리창 너머로 지켜볼 수 있다.

wine+지역 요리 우아하고 미묘한 맛을 자랑하는 프랑스 음식이지만, 각 지역의 전통 요리를 맛보다 보면 의외로 박력 넘치고 호쾌한 음식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리나 메추라기를 쪄서 소스를 척 뿌리고 채소를 큼직하게 다듬어 굽는 정도일 뿐 지나치게 인위적인 조작은 하지 않는다. 블라이의 성채 안에 자리한 ‘비스트로 드 라 시타델Bistro de la Citadelle’은 아스파라거스와 칠성장어 등 지역의 제철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든다. 이때 잘 어울리는 와인은 역시 앙트르 되메르나 코트 블라이 와인. 아름다운 중세풍 도시 생테밀리옹의 와인 바 겸 레스토랑 ‘랑베르 뒤 데코르L’Envers du Decor’ 역시 프랑스식 순대와 푸아그라 등을 과장이나 장식 없이 선보인다. 당연히 메를로를 주 품종으로 하는, 감미롭고 풍부한 생테밀리옹 와인과 함께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 www.lynchbages.com,
www.cordeillanbages.com

보르도 특산물 카늘레와 마카롱
보르도에서는 와인에 달걀흰자를 넣고 저어 불순물을 정제한다. 그러다 보니 노른자만 잔뜩 남는 상황이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보르도의 전통 과자 카늘레caneles다. 밀가루와 달걀노른자를 섞어 틀에 넣어 구우면 끝. 겉은 바삭한데 속은 부드럽고 쫄깃하다. 보르도 시내 ‘바야르드랑Baillardran’이 카늘레로 특히 유명한 집. 생테밀리옹에 들른다면 전통 마카롱을 맛봐야 한다. 라뒤레 등 세련되고 화사한 색감의 마카롱이 아닌, 설탕과 아몬드만으로 만들어 담백하고 고소하다!

출 처 : 행복이 가득한 집 2008년 6월호


세계의 와인 명가를 찾아서
와인 애호가들의 꿈 로마네콩티
프랑스 디종 Dijon에서 남쪽으로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처음으로 나타나는 언덕이 하나 있다. 부르고뉴에서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아주 중요한 코트 드 누이라는 곳으로, 이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들은 모두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품 와인들을 생산한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클로 드 부조와 누이 생조지 마을 사이에 있는 작고 조용한 동네인 본 로마네. 이 곳에서 와인 애호가들은 평생 한 번, 죽기 전에 마셔보는 것을 꿈으로 여기는 로마네 콩티와 그 주변의 그랑 크뤼(최상의 와인 혹은 와인 등급), 즉 라슈, 생비방, 리슈부르그, 에세조, 그랑에세조를 생산한다. 이 중에서도 로마네 콩티는 그 희소성과 역사성 그리고 무엇보다 로마네 콩티만의 독특한 맛과 이미지로 와인 애호가들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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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언덕, 코트 드 누이
본 로마네 마을을 끼고 있는 코트 드 누이 Cote de Nuits는 한국어로 굳이 옮기자면 ‘어둠의 언덕’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해 보면 이 어둠이라는 것이 진한 붉은 빛깔의 탐스러운 레드 와인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수많은 명품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다. 코트 드 누이의 시작은 부르고뉴의 수도인 디종의 남단, 마르사네 Marsannay에서 시작해 누이 생조지 마을 다음인 코르골로앵 Corgoloin 마을에서 끝난다. 이 언덕은 북에서 남으로 비탈진 경사면과 평지를 형성하며 20킬로미터 정도 연결돼 있고 폭은 800미터, 언덕의 높이는 200~300미터에 이른다. 총 2000헥타르 정도의 포도밭을 형성하고 있는데 수많은 주인과 포도밭 이름 때문에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 언덕의 특징은 99퍼센트 이상 레드 와인 품종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언덕 남쪽인 코트 드 본에서는 어느 정도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아주 극소수만이 몇 헥타르의 화이트 와인 품종을 생산하고 나머지는 모두 붉은 피노 누아 밭이다.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디종에서 포도밭 한가운데로 나 있는 그랑 크뤼 길을 따라 와인 명산지를 차례대로 방문하면서 와인을 시음한다. 전원풍 레스토랑도 있고 고급 레스토랑도 있으며, 마음만 잘 맞으면 와인 생산자 집에 들러 카브에서 직접 와인을 맛볼 수도 있다. 이들은 누가 와인을 어떻게 만드는지 서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신이 갖고 있는 포도밭에서 자신만의 신념으로 그 맛을 얻어내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지역이라 해도 생산자에 따라 맛 차이가 현저한데 이는 모두 섬세한 토양의 차이인 셈이다. 보통 좋은 와인들은 토양의 역할이 90퍼센트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의미를 이곳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발 한 폭에 따라 와인의 등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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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풍의 작은 마을, 본 로마네
코트 드 누이 남쪽 거의 끝에 있는 본 로마네 Vosne-Romanee 는 로마네 콩티라는 세계적인 와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작고 촌스러운 시골 동네에 지나지 않아 ‘이곳이 정말 그 유명한 본 로마네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두 합쳐봐야 1.8헥타르 정도 되는 로마네 콩티 포도밭에서는 매년 6000~7000병 정도의 소량만이 생산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포도밭이 다른 포도밭들과 붙어 있는데 그 거리가 지척이라는 것이다. 단지 로마네 콩티 포도밭이 자리한 위치만 다를 뿐이다. 언덕 위쪽도 아래쪽도 아닌 정중앙에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주변의 토양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포도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의 수령과 포도나무 뿌리가 양분을 빨아들이는 깊이의 토양 배합이다. 언덕 위쪽에 많은 석회암질이 중간으로 흘러내려 하단부를 차지하고 있던 점토질과 지하에서 최고의 하모니를 이루면서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최상의 배합이 이뤄진다. 그리고 이 천상의 배합은 같이 붙어 있는 포도밭과도 차별될 만큼 아주 작은 장소에 국한돼 나타났다. 놀라운 점은 그 옛날 지질학적인 연구가 없던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이 포도밭을 찾아냈는가 하는 것이다. 포도밭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붉은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손가락으로 세도 1분이 채 걸리지 않을 만큼 그 수가 적은데, 그중에서 새 지붕은 모두 로마네 콩티와 관련된 건물들이다.

본 로마네 마을에 로마네 콩티 저장고는 모두 두 개가 있다. 그중 하나는 옛날 수도원이던 곳의 지하를 오크통 저장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마치 방공호처럼 철문을 위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문이 나오고, 그것을 열면 단아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여섯 개의 그랑 크뤼를 담은 오크통들이 숙성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새 오크통만을 사용하며 18개월 정도 숙성시킨다. 그곳에서 셀러 마스터와 단둘이서 여섯 개의 그랑 크뤼 오크통을 하나씩 열어 와인을 시음했을 때의 그 숨 막히는 정적을 나는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한 통을 열고 시음한 후 다시 나무 망치로 마개를 닫는다. 그러기를 수차례, 맨 마지막으로 로마네 콩티 통에 도달한 순간 그때까지의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마개가 열리고 내 잔에 가득 채워졌을 때의 느낌은 향기로움 그 자체였다. 그동안 시음한 수천 병의 와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완벽한 향기로움, 마치 최고로 농익은 과일에서 최고의 향기만을 골라놓은 듯한 느낌걖? 그리고 이내 성숙한 여인이 떠올랐다. 화장을 하지 않은, 아름다운 미소를 갖고 있는 30대 여인, 손끝만 닿아도 그녀의 전체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여인,한 잔의 와인을 마시며 이렇게 실감나게 무엇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네 콩티밖에 없었던 것 같다.

로마네 콩티의 또 다른 셀러는 본사 건물 지하에 있다. 그곳에는 이미 병입을 마친 와인들만 저장해 놓고 숙성시킨다. 61년산과 62년산 로마네 콩티가 겨우 한두 병 저장되어 있고, 가장 최근 빈티지 1400여 병 만이 있을 뿐이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로마네 콩티와 주변의 다섯 개 그랑 크뤼 병들로 둘러싸인 공간에 혼자 서 있다면 그 얼마나 이색적인 경험이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와인을 마시고 그것들이 만들어진 포도밭을 산책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이 포도밭의 특성을 읽는다고 해도 한 잔의 와인이 주는 감동을 가슴에 안고 그 눈으로 바라보는 포도밭은 남다르다. 포도밭임을 나타내는 돌십자가, 그 뒤로 아늑하게 펼쳐진 포도밭, 굵은 포도나무들, 시선과 발길을 돌려 주변의 포도밭을 걸어보지만 마음은 내내 그 카브에 머문다. 나는 이곳을 방문한 후 포도밭 길을 따라 다음 마을인 누이 생조지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 두 시간 남짓 포도밭 한가운데로 난 길을 걸으면서 새롭게 얻은 충격을 아주 소중하게 마음속 깊이 간직했다. 그리고 이제는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와 어느 날 누가 내게 로마네 콩티에 대해 물으면 그때의 기억을 아주 조금만 꺼내 들려주곤 한다. 적막했던 포도밭과 마을의 이미지와 더불어걖? 본 로마네에는 로마네 콩티 외에도 향기로운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 물론 어느 정도 콩티의 명성을 업고 있기는 하지만, 주요 그랑 크뤼 포도밭을 제외하면 품질이 아주 좋은 프리미에 크뤼와 본 로마네 와인이 생산된다. 와인의 가치는 시간이 흘러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 마을의 와인은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는다. 이곳에는 5년, 10년, 아니 그 이상이 지나도 신선함이 유지되는 자연의 비결이 있는 듯하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은 단지 하늘이 만들어주는 포도를 잘 양조해 병까지 옮기는 작업을 할 뿐이다. 물론 그 사이에 포도밭에서 일하는 노력과 수확의 적정 시기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포도의 완성도는 하늘이, 자연이 만들어준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 작은 마을을 여행하게 된다면 걸어서 다니라고 권하고 싶다. 언덕과 구릉과 마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간, 인생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이것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일에 얼마나 가치를 둘 것인가가 아닐까. 일단 한번 그곳에 가본다면 아마도 먼저 ‘어떤 신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 파묻혀 바쁘게 살다가 문득 이 지역의 와인을 접할 때면 그때의 그 신선함이 자연스레 떠올라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로마네 콩티 1999 빈티지 와인을 보관하는 카브


전원풍의 작은 마을, 본 로마네의 포도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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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omanee conti 1997
진한 루비색을 띠며 입 안에서 놀랄 정도로 힘이 넘치는 로마네 콩티 1997 빈티지는 과일 향이 매력적이다. 2012년까지 보관 가능하다.
2 Romanee conti 2002
투명한 루비 색의 로마네 콩티 2002 빈티지 와인은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달콤하고 풍부한 향이 특징이다. 2015년부터 마시면 좋다.
3 Romanee conti 1972
짙은 농도로 섬세하면서도 강한 구조감을 가진 로마네 콩티 1972 빈티지 와인은 실크와 같이 부드러운 집중도로 순수함을 자랑한다.
출 처: STYLE-H 2006년 5월호

세계의 와인 명가를 찾아서
송로버섯향이 스민 고요한 와인마을, 생테밀리옹
photo01 보르도 북동쪽 40킬로미터 지점에 자리 잡은 생테밀리옹 Saint-Emilion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보르도 지방을 대표하는 와인을 만들었고 그 역사는 1000년을 넘어서고 있다. 마을을 두르고 있는 두 개의 언덕에서는 이 마을 최고 품질의 포도가 생산되며, 그것으로 빚은 와인은 적어도 10년 이상 숙성시킨 후에야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마을은 경사 진 언덕을 따라 형성되었는데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고대 도시국가의 원형극장이 연상된다. 또한 이 마을 언덕 위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교회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전해지는 설에 의하면 오래전 이 마을을 찾은 에밀리옹 이라는 수도사가 이 교회 밑에 토굴을 파고 17년 동안 수도 생활을 했으며 현재에도 지하 어딘가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설이야 어찌 됐든 이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포도밭 한가운데서 듣고 있으면 마치 세상 저편 동떨어진 평화로운 시골에 와 있는 느낌이다. 마을 주민은 600여 명. 대부분 근처 마을에 살면서 관광지로 유명한 이곳에서 일을 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밤이 되면 마을은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하다. 교회 뒤편 작은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은 포도밭, 석양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붉은 노을이 마지막으로 보이고 포도밭이 그저 검게 보일 때쯤 마을을 둘러싼 가로등이 하나 둘씩 켜지면 또 다른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아침나절엔 포도밭을 산책하고 몇 곳의 양조장에 들러 와인을 시음하며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긴다. 늦은 오후에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허물어진 포도밭 경계를 이루는 고즈넉한 돌담길을 따라 산책을 하기도 한다. 포도밭이 있는 마을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 바로 생테밀리옹이다. 이런 특별한 정취가 느껴지는 포도밭 때문인지 몇 년 전 유네스코에서는 이 마을과 포도밭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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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생테밀리옹 와인과 잘 어울리는 훈제 또는 구운 연어는 포도플라자 지하 1층에 위치한 와인 바 ‘뱅가’에서 맛볼 수 있다. (오른쪽)생테밀리옹 와인은 버섯을 주재료로 한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데, 라마다 서울의 메인 레스토랑‘카페 스타시오’의 버섯 오믈렛이 바로 그 중 하나다.
 

photo01 생테밀리옹의 명가, 장 피에르 무엑스
이 지역의 와인 명가는 곧 명당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가문을 말한다. 명품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포도를 얻을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필요하며, 경험 많은 양조인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훌륭한 양조인은 와인을 만드는 남다른 감각과 경험을 갖고 있다. 오래된 와인 가문은 이러한 노하우를 세대를 거듭하며 축적해 왔기 때문에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 지역에서는 샤토에 따라 좋은 와인을 만든다. 이 지역의 최고급 와인은 열두 개의 프리미에 그랑 크뤼 Premier Grand Cru이며, 그중에서도 샤토 슈발 블랑 Chateau Cheval Blanc과 샤토 오종 Chateau Auson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와인으로 꼽힌다. 더욱 역사가 깊은 가문으로 샤토 퓌작 Chateau Fugeac, 샤토 카농 Chateau Canon 등이 있다. 이들 포도밭은 대부분 보르도의 가장 일반적인 품종 중 하나인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으로 만든다. 보통 메를로가 더 많이 들어가지만 슈발 블랑의 경우 카베르네 프랑을 거의 반 가까이 넣어 맛의 비밀을 유지하기도 한다. 메를로가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생테밀리옹과 붙어 있는 포메롤. 이곳은 소규모라 따로 분리하지 않고 생테밀리옹과 함께 이 지역 와인을 대표한다. 생테밀리옹과 포메롤 지역을 합쳐 가장 유명한 가문은 장 피에르 무엑스 Jean Pierre Moueix.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이 지역에서 그는 전설로 통한다.장 피에르 무엑스는 처음 포메롤에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에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한 그는 이후 탁월한 사업 수단으로 주변의 작은 와이너리들을 아주 싼 가격에 사들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와인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명가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소규모로 와인을 만들던 주변의 와인 생산 업체 대부분을 사들여 그들 이름을 그대로 살린 판매 기법을 통해 규모 때문에 국제적인 마케팅이 불가능했던 이들의 와인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대부 역할을 했다. 장 피에르 무엑스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와인 산업에 뛰어든 많은 젊은이들의 귀감이 됐다. 오늘날 장 피에르 무엑스는 그의 아들 크리스티앙 무엑스 Christian Moueix가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포메롤과 생테밀리옹 전 지역의 와인을 다루며 가장 대중적인 와인에서부터 이 지역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와인 중 하나인 페트뤼스의 실제 주인이 되었다.
또한 크리스티앙 무엑스는 아버지의 개척 정신을 이어받아 미국 최고의 와이너리 중 하나인 나파밸리에 와이너리를 만들어 미국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와인인 크리스티앙 무엑스 메를로와 기품 있는 고급 와인 도미너스 Dominus,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와인인 나파누크 Napanook를 통해 와인에 관한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샤토 트로롱몽도 Chateau Troplong-Mondot에서는 송로버섯 향기를 품은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고 있으며, 몇몇은 이때까지의 모든 삶을 접고 와인 만드는 데 뛰어들어 새로운 형태의 고급 와인 샤토 파비 Chateau Pavie나 샤토 발랑드 Chateau Valendraud로 이 지역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가 짧은 만큼 검증된 맛이 아니어서 더 많은 시간을 지켜봐야 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와인 저장고를 갖고 있는 샤토는 최고의 와인을 자랑하는 샤토 오종으로 로마시대에 돌을 채취하던 곳에서 지금은 와인을 숙성시킨다. 석회암 향기 속에서 직접 맛보는 와인은 그 향과 맛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와인에서는 석회암 속의 미네랄이 느껴지고 이와 더불어 석회암 속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생테밀리옹의 명가들은 이렇게 자연에 수긍하며 자연 속에서 그들을 숙성시키고 변화시키고 있다.
구운 버섯, 연어와 잘 어울리는 생테밀리옹
좋은 와인은 알코올, 타닌, 산도 등이 아주 적당해 입 속에서 느끼는 부담감이 매우 적다. 생테밀리옹 와인의 특징은 이런 균형이 작지만 잘 살아 있는 것부터 아주 오랫동안 숙성시켜도 그 균형이 깨지지 않고 좀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다.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메를로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 품종의 특징이 이곳의 토양과 만나 조화를 이룬 느낌이다. 메를로는 향이 좋고 신선하며 카베르네 소비뇽에 비해 약간 가벼운 느낌이 들어 레드 와인에 많이 사용된다. 메를로를 많이 사용한 와인은 대부분 최근 빈티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생선을 포함한 모든 음식과 아주 잘 어울린다. 실제로 생테밀리옹에서는 화이트 와인이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생테밀리옹 와인은 모두 레드 와인인데 대부분 생선 애피타이저와 함께 즐긴다. 이는 생테밀리옹 레드 와인에는 타닌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지만, 부드럽게 감춰져 있어 생선 애피타이저와 곁들였을 때 큰 부담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가벼움은 아주 대중적인 섬세함을 만들어갈 수 있고 모든 음식과 어울리도록 레드 와인으로만 메뉴를 만들 수도 있게 해준다. 젊은 빈티지의 대중적인 생테밀리옹은 거의 모든 종류, 특히 버섯이 많이 들어간 애피타이저와 메인 메뉴에 잘 어울리며 오래된 생테밀리옹은 아주 잘 숙성된 치즈나 육질이 살아 있는 스테이크와 잘 어울린다. 와인과 음식의 조화는 그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의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음식을 가만히 살펴볼 때 어떠한 조화를 이루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고도의 와인 마을을 산책한 후 약간 피곤해진 몸으로 구구한 향기가 밴 레스토랑에서 좋은 음식과 와인을 음미해 보면 어떨까? 생테밀리옹은 이미 세계적인 와인 마을로 알려졌고, 그들이 생산하는 와인은 만든 세월만큼이나 명성을 얻고 있다. 수로를 주로 사용해 와인을 수출하던 중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테밀리옹 와인은 도도함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정답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이 같은 느낌 저편에는 마을 곳곳을 연결하고 있는 작고 오래된 골목길과 그 지하에서 익어가는 와인의 향기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그 와인의 향과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과정, 또는 환경을 이해했을 때 와인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와인에는 숨겨진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 이야기를 식탁 위에서 많은 지인들에게 들려준다면 우리는 하나의 문화를 식탁에서 거론하는 셈이다. 자연의 정취가 느껴지는 어느 봄날, 천년 고도의 고요한 생테밀리옹 와인 이야기가 식탁 위에서 한 잔의 와인과 함께 꽃을 피운다면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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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 피에르 무엑스 2001 고품질의 포도로 만들어 생테밀리옹 특유의 둥글고 충만한 붉은 과일 맛이 난다. 샤토 피캄포 2000 석회질 언덕에서 얻은 포도로 만들어 자극적인 목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샤토 오종 1994 풍부한 과일 향의 이 와인은 1993년 빈티지에 비해 더욱 깊은 숙성도로, 타닌은 라이트하지만 우아함과 섬세함이 느껴지는 미디엄 보디다. 샤토 슈발 블랑 1996 부드러운 벨벳 느낌으로 길게 이어지는 피니시가 인상적이다. 샤토 앙젤뤼스 1999 과일맛과 오크향이 느껴지는 긴 피니시가 여운을 남긴다.
출 처: STYLE-H 2006년 4월호



[south of france]최고, 최대를 위한 재발견, 남프랑스 와인
남 프랑스 와인에 관한 모든 것
포도 수확이 끝난 계절이지만 향긋한 포도주 냄새를 실은 바람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오고 있다. <도베>와 잔을 부딪친 와이너리의 주인들은 남프랑스 와인과 자신의 삶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새벽 1시에 도착한 카르카손에서 이틀을 머물고 떠난 때는 화창한 가을날의 오전이었다. 그 밤에 표지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도로 주변을 가리키며 여기가 온통 포도밭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지방을 달리다 보면 볼 수 있는 드넓은 곡창 지대. 랑그독-루시용의 풍경은 그 논자리에 벼가 아니라 포도나무가 가득한 풍경이다. 가을의 포도밭을 본 적이 있는가? 품종이 다른 포도나무가 가을을 맞이하며 떠올리는 홍조도 다를 수밖에 없다.

노랑, 빨강, 자주, 다홍색 잎들을 떨어뜨리는 가을날의 포도밭은 캐나다의 단풍 부럽지 않게 화려했다. 이 지역의 고유 품종인 카리냥 Carignan, 생소 Cinsault, 무르베드르 Mourvedre, 시라 Syrah 등이겠지만 구분할 재간은 없다. 내가 감탄해 마지않던 아름다운 포도밭은 카르카손에서 나르본 사이에 펼쳐져 있는 코르비에르 Corbieres 지역이다. 낮은 구릉이 반복되는 이 산악 지대에서 생산되는 코르비에르 와인은 대표적인 AOC 와인이다.

랑그독-루시용은 2700년 전부터 와인을 생산했고, 지금도 프랑스에서 가장 넓은 포도 재배 지역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저질 와인으로 유명했다.” 열흘 동안 저녁 식사 때마다 마주 앉았던 남프랑스 와인을 두고 누군가 던진 이 한마디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 랑그독-루시용은 저질 와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와인’을 생산한다. 남프랑스 와인의 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1, 2, 3 ‘샤토 드 플로저귀스’ 와인을 생산하는 콜베르 씨 내외는 몽펠리에 교외에 있는 중세의 성에서 백작 부부처럼 산다. 정원과 집 구경이 끝나면 와인 시음을 할 수 있다.

백작의 품위를 가진 와인, 샤토 드 플로저귀스 Chateau de Flaugergues
출장으로 쌓인 와인 테이스팅 경력이 적지는 않은데 이렇게 선뜻 지갑을 열게 만드는 와인은 흔치 않았다. ‘소믈리에르 2005 Sommeliere 2005’에 딱 꽂힌 것은 9유로라는 저렴한 가격만이 아니었다. 와이너리를 포함한 17세기 고성의 주인 콜베르 Colbert 씨와 만난 여운에 취해 있었음이 분명하다. 1692년부터 지금까지 한 가문이 10세대를 계승해온 고성에 들어가면 중앙의 3층 계단에 걸쳐 있는 철제 난간 장식과 17세기 플랑드르 태피스트리가 사람을 압도한다. 침실과 서재의 앤티크 가구는 전시용이 아니라 그가 여전히 사용하는 생활 가구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앤티크한 주거 환경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저 평범한 시골 할아버지로만 느껴졌던 그가 직접 가꾼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을 보여주었을 때 경외심이 저절로 일어났다. 그곳에는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싱싱하게 자라는 나무와 꽃을 보니 이곳의 와인 맛이 매혹적인 이유를 알겠다. 주소 1744, Avenue Albert Einstein 34000 Montpellier
문의 04 99 526 637,
www.flaugergues.com


4, 5 의약으로도 사용됐던 카브리에르 와인은 거친 땅의 선물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모두 AOC급 와인으로 한국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태양왕이 편애한 와인, 카브리에르 Cabrieres
8세기부터 레드, 화이트, 로제 와인을 생산한 유서 깊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로제 와인 ‘Vin Vermeil le Estabel’은 왕의 로제라고도 불린다. 1687년 이 와인이 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루이 14세는 자신을 위한 와인을 생산하도록 명령하여 하루에 한두 잔씩 홀짝홀짝 마셨다고 한다. 카브리에르는 포도밭 면적이 약 386만770제곱미터로 랑그독 지역에서는 가장 작은 와인 생산지이지만, 조합의 노력으로 매년 1800만 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한다. 클레레트 Clairette 품종을 사용한 화이트 와인은 입 안 전체에 감도는 풍미가 특별하며, 과일 맛이 짙은 로제 와인 에스타벨 Estabel은 꽃향기가 코 깊숙이 스며든다. 카브리에르 카브와 박물관에서는 개성 강한 와인이 탄생하는 이 지역의 독특한 지형(편암질의 토양은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는다)과 테루아, 마을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기원전 3000년경에 발견된 청동 제품 등을 볼 수 있으며, 와인 테이스팅도 할 수 있다. 문의 04 67 88 91 60,
www.cabrieres.com


6, 7, 8 귀농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랑그독-루시용이라는 지역을 들어본 적도 없던 베네딕트 가족은 ‘꿈의 와인’을 준비하고 있다.

꿈으로 영근 나만의 와인, Domaine de Salente
500여 병 규모의 개인 와인 셀러를 갖출 정도로 와인 애호가인 베네딕트 Benedicte와 루악 Loic 부부는 언젠가 그들만의 와인을 생산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는 공감이 생기자 부부는 귀농을 위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보르도에서 랑그독까지 쥐 잡듯이 뒤진 부부는 랑그독-루시용의 주도인 몽펠리에에서 불과 23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냑 Gignac에서 28만 제곱미터의 포도밭을 구입했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부럽지 않은 농장에서 4명의 가족이 행복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이야기는 안주인 루악 씨가 7시간 동안 익혀낸 양고기를 먹으며 들을 수 있었다. 수년에 걸쳐 시골 농가를 싹 고쳐서 앤티크 가구와 예술품이 가득한 전원의 게스트 하우스로 꾸며놓았다. 그르나슈 Grenache를 이제 막 심었으니 2년 후면 AOC 와인도 생산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런 집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아침에 눈을 뜨고 발견한 네모난 창 너머의 들판 풍경이 현실이 아니라 꿈만 같았다. 주소 34150 Gignac
문의 04 67 57 54 79,
www.salente.com

남프랑스의 중세풍 호텔

주교가 살았고 대통령이 묵어간 요새 호텔 데 라 시테 카르카손
사방이 이중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카르카손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다 시원한 전망을 감상하고 싶다고 하자 사람들은 주저 없이 호텔 데 라 시테 카르카손 Hotel de La Cite Carcassonne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호텔 데 라 시테 카르카손은 카르카손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호텔의 정원과 성의 망루, 그 아래로 깔린 마을이 조합해내는 풍경은 윈스턴 처칠, 존 록펠러, 월트 디즈니, 자크 시라크 대통령 등 그토록 많은 유명 인사들이 다녀간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귀하신 몸들은 철옹성 안의 럭셔리한 호텔에서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런 귀빈들을 모두 만나보았을 총지배인 함부르거 Hamburger 씨 부부가 우리를 맞이하는 정성이었다.

유모 감각이 넘치는 이 부부는 ‘서재 바 Le Bar Bibliotheque’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레스토랑 ‘라 바르바칸 La Barbacane’에서 주방장 제롬이 준비한 정찬을 즐기는 내내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20년 전에 한국의 민속촌과 요정을 방문했던 추억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를 기다리면서 준비한 배려였을 것이다. 1909년 생나제르 대성당 옆에 건축되어 1920년대부터 호텔로 사용되어온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주교의 숙소였다. 특급 열차인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회사가 소유한 호텔은 지상 위에서도 여전히 ‘특급’이다. 중세의 도시를 산책하는 것만큼이나 이 호텔의 속내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아침 산책을 나섰다가 호텔 밖 모퉁이에서 마음에 꼭 드는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한 시간 후 나는 그 식당에 앉아 있었다. ‘세 사스키아 Chez Saskia’ 레스토랑은 호텔 데 라 시테 카르카손의 부속 건물에 있는, 아침과 점심을 위한 레스토랑이었다. 호텔 입구는 작고 건물은 낮지만, 주변을 둘러싼 건물이 모두 호텔 소유라서 편의 시설이 흩어져 있다. 요금은 49개의 딜럭스 룸이 300~450유로, 12개의 스위트룸이 600~1000유로다. 주소 Place Auguste-Pierre Point 11000 Carcassonne 문의 04 68 71 98 71,
www.hoteldelacite.com


지척에 대기하고 있는 완벽한 쉼터 크라운 플라자 툴루즈
프랑스에 온 지 열흘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여행지인 툴루즈는 대미를 장식하는 도시로 손색이 없을 만큼 활기차고 흥미로웠다. 문제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호텔에 가방만 맡긴 채 체크인도 하지 못하고 거리를 두어 시간쯤 돌아다녔을 때 저항할 수 없는 피로감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겨우겨우 버티며 나아가다가 우리가 묵기로 되어 있는 크라운 플라자 툴루즈 Crown Plaza Toulouse 호텔을 발견하자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다. 마치 서울 시청 앞에 있는 서울 프라자 호텔처럼, 크라운 플라자 툴루즈 호텔은 툴루즈 의사당이 있는 카피톨 광장의 모서리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툴루즈처럼 볼거리가 넘치는 도심에서는 갑자기 피로가 몰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도심 한가운데의 요지에 호텔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장점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늦은 밤 호텔로 돌아올 때도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 광장을 지나는 길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사람은 광장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유명한 광장 주변에는 유명한 작가나 음악가들의 집이 있는 경우가 많다. 크라운 플라자에 묵는다고 말하자 가이드의 얼굴에 부러움이 드러났다. 162개의 객실과 비교적 큰 칵테일파티를 열 수 있는 고풍스러운 안뜰 ‘그랜드 파티오 Grand Patio’, 라이브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피아노 바, 저쿠지가 있는 피트니스 센터, 첨단 설비를 갖춘 콘퍼런스 룸을 갖추고 있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호텔을 만끽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옆 테이블 꼬마 아이의 영국 악센트가 강한 노래를 들으며 즐겼던 아침 식사의 고요함이 오래 인상에 남는다. 주소 7 Place du Capitole 31000 Toulouse, France 문의 05 61 61 19 19,
www.crowne-plaza-toulouse.com

출 처 : 행복이 가득한 집 2007년 12월호

포도밭에 둘러싸여 쉬다 - 나파밸리 와인 투어
여행의 유효 기간은 길다. 오감이 모두 깨어나는 길 위에서의 시간은 두고두고 현실에서의 시간을 위무한다.‘럭셔리’란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세계 최고의 여행을 소개한다. 빌 게이츠가 편애하는 캐나다 헬리 하이킹, 청정 먹을거리가 넘치는 그리스 산악 마을,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 료칸, 최고의 와이너리가 산재한 미국 나파밸리…. 비단 물질적으로 호사로운 여행뿐 아니라 육체적·정서적으로도 눈부신 여행을 럭셔리의 기준으로 삼았다. 여행은 바람과도 같다. 바람이 불지 않는 일상은 가뭄의 들녘처럼 척박하다. 올여름만큼은 당신의 일상에 굵직굵직한 바람이 많이 불기를.

1, 4, 5 거대한 숲 속에 둥지처럼 자리한 오베르주 드 솔레유의 외부와 내부.

why luxury travel
프랑스에 보르도가 있다면 미국에는 나파밸리Napa Valley가 있다. 1970년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가 와인 제조 방식을 고급스럽게 바꾼 이래 나파밸리는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여피들은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바로 이곳 나파 밸리에서 주말을 보낸다. TV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대륙의 동쪽 끝 뉴욕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던 캐리의 완벽한 남자 친구 빅이 경비행기를 타고 놀러 가던 곳이 이곳 나파밸리 아니던가.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것은 미국 부호들의 오랜 로망이다. 그리하여 나파의 여러 멤버십 클럽과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백발의 실리콘밸리 이사, 중년에 접어든 할리우드의 거물급 스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미국인의 개방적이고 캐주얼한 성격을 대변하듯 나파밸리의 와이너리는 장인 정신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와이너리와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와이너리 오너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대중에게 개방하고 마케팅하는 데 얄미울 만큼 능하다고 할까. ‘헤스 컬렉션Hess Collection’, ‘아르테사Artesa’, ‘파 니엔티Far Niente’ 등의 와이너리는 현대 미술품, 앤티크 자동차 등 대도시의 뮤지엄 컬렉션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컬렉션까지 갖추었다. 와인 비즈니즈의 활황과 더불어 나파밸리 인근의 부동산 가격은 최근 30년간 천정부지로 뛰었다. 고급 외식 산업의 발전도 눈부시다. 1990년 말 오픈한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는 주인이자 셰프인 토머스 켈러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이후 레스토랑 인근의 작은 마을을 통째로 사들여 베이커리며 세컨드 레스토랑, 심지어 호텔까지 오픈했다.

what to do
나파밸리에는 최고급 와이너리 200여 개가 자리한다. 꼭 가봐야 할 와인 명가도 많은데 대표적인 곳은 역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다. 최근 타계한 몬다비는 1966년 ‘금주법’이 풀리자마자 나파밸리에 와이너리를 세운 인물이다. 그의 리더십과 노력으로 당시 유럽 와인의 모작 수준에 머물던 나파밸리의 와인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몬다비 와이너리는 아름다움과 웅장함에서도 단연 돋보이지만 그와 비례해 매일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다. 방문 전 웹사이트(www.robertmondaviwinery.com)를 체크, 투어의 종류를 고르면 보다 차분하게 와이너리를 둘러볼 수 있다. 주소 High Way 29. Oakville, CA 94562 문의 (888)766-6328
베린저Beringer 와이너리 또한 와인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몬다비가 오늘날의 나파밸리를 일군 개척자였다면 베린저 와이너리는 100년 앞서 선진 유럽의 와인 제조법을 나파밸리에 소개한 곳이다. 1876년부터 시작해 20세기 초 알코올 금지령 중에도 교회 납품 명목으로 와인 생산을 지속한 이 와이너리는 역사 깊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창업자인 제이콥 베린저가 중국 노동자들의 인력을 빌려 수작업으로 만든 저장 창고가 대표적인데 이곳에는 ‘천상의 맛’을 지녔다 평가받는, 100년 이상 된 카베르네 소비뇽 빈티지가 보관되어 있다. 주소 Main Street 2000. St. Helena, CA 94574. 문의 (707)963-7115, www.beringer.com
욘빌Yountville은 나파에 왔다면 한 번쯤 꼭 들러봐야 할 곳. 나파밸리 남쪽에 자리해 나파밸리에서 도보로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 이 작은 타운은 미국에서 단위 면적당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가장 많은 곳이다. 토머스 켈러가 운영하는 프렌치 런드리(미슐랭 투 스타), 부숑Bouchon(미슐랭 투 스타), 부숑 베이커리, 패밀리 레스토랑 스타일의 애드 호크Ad hoc, 호텔 오베르주 뒤 솔레유의 레딩턴이 오픈한 레드Redd(미슐랭 투 스타) 등 ‘맛있는 천국’이 즐비하다.

2 최고급 와이너리 200여 곳이 도열하듯 들어선 나파밸리에서는 어디에서나 최고급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포도 찌꺼기를 이용하는 스파 역시 유명하다.


3 나파밸리에서 ‘다이닝’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여름에 이곳을 방문하면 테라스에서 나파밸리의 전경을 굽어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where to stay
‘오베르주 뒤 솔레유Auberge Du Soleil’. 프랑스어로 ‘태양이 쉬는 집’이란 뜻이다. 깊은 숲 속에 박힌 ‘부티크 산장’이 리조트를 정의하는 가장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있겠다. 객실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통유리로 디자인해 집 안에 초록의 자연이 거침없이 들어온다. 모든 로지에는 큼지막한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어 숲 속 별장 같은 운치를 더한다. 창밖으로는 올리브 나무 숲과 와이너리가 펼쳐진다. 자연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에 인접해 있어 스파 또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숙박료는 비수기인 1~3월에 675달러(더블룸 기준), 성수기인 7~11월에는 900달러 정도다. 문의 (707)963-1211,
www.aubergedusoleil.com



reservation
샌프란시스코 시내 호텔과 나파밸리 내 호텔과 여관에서는 예약 가능한 리무진 투어가 항시 대기 중이다. 가격은 하루에 60~70달러 정도. 6~7명 이상의 인원이라면 단체 여행을 짜는 것도 좋다. 현지 여행사로는 캘리포니아투어가 가장 믿을 만하다. 원하는 와이너리, 피크닉 장소 등을 문의하면 맞춤 여행을 계획해준다. 문의 (510)549-4211,
www.california-tour.com.























출 처 : 행복이 가득한 집 2008년 7월호



이야기가 있는 와이너리 Best 7
나파밸리산 와인에 세계의 찬사는 쏟아진다. 캘리포니아의 볕과 바람을 담은 와인을 시음하노라면 이곳의 와인이 정녕 최고의 명작임을 실감할 수 있다. 여기 소개하는 와이너리는 그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훈장’을 달고 있는 곳들이다.


로버트몬다비 와이너리가 있는 나파 밸리의 안쪽 풍경. 나파밸리는 단순한 포도 골짜기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하고 포근한 자연이다.

목적지가 나파밸리라면 언제든지 기꺼이 여행 가방을 다시 싸겠다. 골짜기 가득가득 태양과 바람이 적절하고 최고의 빈티지 와인과 레스토랑이 은행잎처럼 수두룩한 그곳에 나는 큼지막한 마음 한쪽을 떼어두고 왔다. 맛난 먹을거리가 넘쳐나서만 그곳을 편애하는 것은 아니다.

4백여 개의 포도밭이 모여 영글영글 잘 익은 ‘포도 문화’를 완성하는 그곳에서 걷고 숨 쉬면서 나의 마음은 오랜만에 제 박자를 찾은 듯 평온했다. 그곳에서 일곱 군데의 이름난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와인 시음을 위해서도, 외부 얼굴과 풍경 안쪽의 이야깃거리를 위해서도 모두 기억해둘 만한 곳들이다. 나파 골짜기에서 벌어졌던 큼지막한 ‘사건’ 역시 지면에 담았다. 광주요가 주최가 되어 벌인 한국 음식 축제. 광주요는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대표와 와인 제조업자 등의 VIP를 상대로 미국 스타일에 맞게 변주한 ‘가온’의 최고급 한정식을 선보였다. 수백 벌의 그릇까지 미리 한국에서 공수해 간 대규모의 파티였다. 저마다 자신의 최고급 빈티지 와인을 가져온 나파 골짜기의 거성들은 한국 음식과 나파밸리 와인의 만남을 즐겁게 음미했다. 아직까지 한국이 세계적인 와인 소비국이 아닌 까닭일까, 처음 맛보는 최고급 한정식에 생경함을 보이는 이도 있었지만 광주요의 음식은 나파의 와인과 멋지게 조화되며 최고의 찬사(광주요의 음식을 나파밸리에 정식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를 받았다.

나파밸리에 있는 최고급 리조트 ‘오베르주 뒤 솔레일 Auberge Du Soleil’(태양이 쉬는 집이란 뜻)과 함께 운영되는, 근사한 호텔 두 곳도 소개한다. 나파 밸리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 좋고, 유럽의 B&B 스타일 숙소보다 고급스러우면서도 포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 따사로운 볕과 자연은 호텔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는데, 아침에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따듯한 식사도 제공 받는다. 무엇보다 주변으로 크고 작은 와이너리가 넘실대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산장과 부티크 리조트 사이쯤 되는 그곳에 묵으면 나파밸리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1 세계적 컬트 와인인 할란과 본드 와이너리의 오너 ‘빌 할란’.
2 할란 에스테이트 안쪽. 나파밸리에 어울리는 목조 건물과 돌담이 눈부시다.
3 와인 셀러. 이곳에서 100점짜리 와인이 숙성된다.
4 할란 에스테이트 와이너리의 ‘자매 와인’인 본드의 와인.

100점 와인은 어떤 맛일까, 할란 에스테이트 Harlan Estate
규모는 작지만 ‘명작’을 만드는 와이너리에 사람들은 ‘부티크’란 소담하되 반짝이는 수사를 붙인다. 할란 에스테이트는 나파밸리를 대표하는 부티크 와이너리. 섬세한 관리와 더불어 기복 없는 우아함을 선보인다.

로버트 파커는 명실 공히 세계 최고의 와인 전문가이고 <와인 스펙테이터 Wine Spectator>는 와인 업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와인 전문지이다. 그 두 ‘별’이 할란 에스테이트에 준 점수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1997년 빈티지 와인을 보자. 로버트 파커는 100점을 주었고 <와인 스펙테이터>는 100점에서 3점이 모자란 97점을 주었다. 2002년 빈티지 와인도 비슷한 수준이다. 로버트 파커는 또다시 100점을 주었고, <와인 스펙테이터>는 99점을 주었다. 전문가들은 “호화스러운 맛으로 가득한 고급 비행기가 저공비행을 하듯 묵직한 맛이다”라고 표현했다.

이 와이너리의 성공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빌 할란이다. 1985년 나파밸리에 93헥타르의 부지를 구입하며 와인 산업에 뛰어든 그는 토지 매입 후 5년이 지난 1990년에야 첫 와인을 내놓을 만큼의 신중함으로 ‘자식’을 스타로 등극시켰다. 스타 탄생의 이면에는 땀과 열정이 있었다. 총 면적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유독 배수가 좋은 화산암 토양에만 포도 품종을 심었으며 단위 면적당 소출을 제한해 얻은 ‘귀한’ 포도 알갱이는 낱알 선별 후 숙성 과정에 들어갔다. 한 해 생산량은 1만 8천 병.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므로 사람들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부티크 와인’을 기다린다.
할란은 또 하나의 명작, 본드 에스테이트 Bond Estate도 생산한다. 카베네 소비뇽이 주가 된 여섯 가지 와인이 ‘본드’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최고의 경작자로부터 매입한 질 좋은 포도밭의 포도를 원료로 하여 맛과 향이 탁월하다. 본드 에스테이트 역시 ‘부티크 와인’임은 물론이다.
주소 P.O Box 352 Oak Ville, CA 94562-0352 문의 (707)944-1441, www.harlanestate.com,
www.bondestate.com


1 대장장이가 수공예로 만든 포도 잎사귀를 얹은 파 니엔테 입구. 사람의 손길과 장인정신으로 아름답다.
2 드넓은 정원을 품고 있는 파 니엔테 와이너리 외관.
3 와이너리 한편에 자리한 캐리지 하우스에는 파 니엔테를 재건한 장본인이자 자동차 컬렉터인 질 니켈이 구입한 빈티지 자동차가 즐비하다.
4 파 니엔테에서는 고급 디저트 와인, 돌체도 생산한다. 돌체만을 위한 와인 셀러도 따로 있다.

샤르도네 명가, 파 니엔테 Far Niente

파 니엔테에서 맛보는 와인은 차분하고 고풍스러운 와이너리의 공기와 더불어 감미롭다. 1797년에 출생 신고를 해 오늘에 이르렀으니 2백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포도가 익어가는 ‘마을’이었던 셈이다.

와이너리의 역사는 1백20여 년 전인 18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1919년 미 전역에 금주령이 발효되면서 와이너리는 생기를 잃었다. 금주령의 배경이 흥미롭다. 무분별하고 폭발적인 음주 세태가 밀주, 밀수 등 온갖 사건사고를 야기하자 미국 정부는 전국적으로 금주령을 발포했다. 당시 밀주와 밀수로 거래되는 ‘뒷돈’이 3백60억 달러였다니 그 폐해가 실감난다. 와이너리에서 다시 포도가 익어가는 향이 나기 시작한 건 1979년이었다(와이너리는 현재 ‘내셔널 트러스트’의 보호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 소유주이기도 한 질 니켈Gil Nickel은 포도원을 인수, 본격적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와이너리 입구에 서면 솔향처럼 은은한 향이 난다. 포도나무 넝쿨을 닮은 우아한 곡선의 철제 대문, 바오밥 나무처럼 큰 키의 고목, 세월의 더께가 가득 얹힌 건물들은 그 자체로 오랜 역사를 대변한다. 10여 대의 빈티지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는 ‘미니’ 자동차 박물관도 인상적이다. 1954년 형 벤틀리 등 1900년대 중반의 클래식 자동차는 와이너리에 화사한 색을 입힌다.
이곳의 와인은 샤르도네로 대표된다. 샤르도네 와인은 구조가 매우 단단하고 잘 짜여져 있어 열대과일*넛맥*헤이즐럿 등의 향이 미묘하게 섞인 풍만함을 선사한다. 전문가들은 “나파 유수의 화이트 와인 중 가장 장기간 숙성될 수 있는 와인”이라 평한다. 와인 숙성용 셀러인, 무려 4만3000m2의 지하 동굴은 와이너리에서 꼭 둘러봐야 하는 시설로 꼽힌다. 일체의 냉방 시설 없이 동굴의 자연적 온도 변화만으로 제 기능을 하는 와인 셀러는 지금 나파밸리의 명물이 되었다.

세미용Semillon과 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을 혼합해 만든 디저트 와인, 돌체Dolce 역시 이곳의 ‘대표 선수’. 곰팡이 핀 마른 포도로 생산하는데, 농축된 풍미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와이너리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와이너리를 재건하던 중 건물 전면의 돌에서 한 줄의 문구가 발견되었다. ‘돌체 파 니엔테 Dolce Far Niente.’ 번역하자면 ‘아무 근심 걱정 없이’란 뜻인데 와이너리의 주인은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이 문구를 와이너리의 이름으로 전격 선택했다.
주소 Post Office Box 327 Oakville, California 94562 문의 (707)944-2861,
www.farniente.com


나파밸리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는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숍 외관과 내부.
와인은 물론이고 그릇, 글라스, 와인 따개, 치즈, 과일 등 와인과 관련된 상품들이 빼곡하다.

그 없이 나파밸리도 없었다, 로버트 몬다비 Robert Mondavi

나파밸리 사람들이 로버트 몬다비에게 붙이는 가장 일반적인 수사는 ‘살아 있는 신화’다. 세상에 너무 많은 ‘살아 있는 신화’가 있으므로 그 가치가 퇴색해 보일 수 있지만 그가 나파밸리의 상징이자 우상으로 평가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에 여행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버스와 승합차, 자동차는 연신 관광객을 쏟아낸다. 한 해 평균 50만 명의 관람객이 이곳으로 진군하듯 몰려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 있는 신화’가 사는 ‘와인 제국’과의 만남! 나파밸리 최초로 저온 발효 기술을 적용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를 사용하며, 프렌치 오크통 발효조를 이용하는 와이너리의 역사를 사람들은 존중한다. 음식과 와인, 예술의 삼박자가 수묵담채화의 강과 달처럼 훌륭히 섞이는 것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와인을 곁들인 세계 유명 요리사들의 연회는 물론 재즈와 클래식 콘서트, 미술 전시회 등이 1년 내내 끊이지 않는 와이너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로버트 몬다비를 단순한 와이너리가 아닌 ‘예술 익어가는 포도밭’으로 인식하게 한다. 올해 95세인 로버트 몬다비의 최고 업적은 ‘나파밸리’ 자체를 하나의 일반 명사로 등극시킨 것.

1966년 소규모의 포도밭으로 역사를 일구기 시작해 포도 품종과 넝쿨의 상태, 토양과의 상관관계 등을 다른 와이너리와 모두 공유하면서 나파밸리는 흩어지는 힘이 아닌 ‘모이는’ 힘을 갖게 되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구매자로 하여금 눈이 아닌 혀가 좋아하는 와인을 선택하게 하고, 자연 친화적인 포도밭 경작을 통해 나파밸리를 ‘청정 포도밭 골짜기’로 인식하게 한 역사 역시 그의 이름과 더불어 정착한 것이다. 이곳에 가면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꼭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생선과 육류는 물론 수많은 디저트를 고를 수 있는데 각각의 메뉴는 최고의 궁합을 보이는 와인과 더불어 서빙되므로 와인의 매력을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테이블을 채운 꽃, 메뉴를 적어놓은 종이, 벽에 걸린 와인 관련 사진 등 레스토랑의 소품 역시 와인만큼이나 ‘맛있다’. 로버트 몬다비에서는 현재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누아, 샤르도네, 진판델, 메를로 등 수많은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주소 Highway 29 Oak Ville, CA 94562 문의 1-888-766-6328,
www.robertmondavi.com




1 이 운치 있는 고성 안에는 와인을 생산하는 첨단 장비와 셀러가 있다.
3 이곳 와이너리 최고의 스타로 대접받는 카베르네 소비뇽.
2 샤토 몬텔레나의 2대 소유주인 보 배럿Bo Barett.
4 와이너리의 고성 앞에는 아름다운 중국식 정원과 호수가 자리한다. 24시간 상주하며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만 세명이다.

보르도를 이기다
샤토 몬텔레나 Chateau Montelena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눈을 감고 와인을 시음한 뒤 최고를 가리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랑스 와인의 우승을 점쳤으나 정작 왕관을 쓴 주인공은 바로 이곳, 샤토 몬텔레나 와인이었다.

그날의 흥분과 감동을 샤토 몬텔레나 사람들은 또렷이 기억한다(그들이 나눠주는 보도 자료에는 ‘그날’의 사건을 대서특필했던 <타임>지 지사가 실려 있다). 보르도 와인의 전설이자 그랑크뤼 클라세 협회 사무총장이었던 피에르 타리Pierre Tari 등 ‘날 선’ 여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부르고뉴 와인 대신 샤토 몬텔레나의 샤르도네 와인에 1등을 주었다. 프랑스 언론은 사기극이라며 흥분했고 파리지앵들은 허탈해했다. 그날의 사건에 언론은 ‘미국 침공American Invasion’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와이너리는 예스럽고 고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구름처럼 큰 고목이 곳곳에 가득하고, 담쟁이가 벽면 전체를 빼곡히 덮고 있다. 특히 정원이 인상적인데(정원은 해외 여행자들이 가장 신기롭게 보는 곳이다) 이는 오래 전 이곳에 터를 잡았던 부자 중국인이 조성한 것이다. 중국의 부와 인구가 그 옛날 이곳 나파밸리의 최북단까지 닿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1978년부터 생산한 카베르네 소비뇽은 와이너리 최고의 ‘스타’다. 시음의 혀맛이 아직도 선연하다. 다른 품종을 섞은 ‘블렌드’가 아니면서도, 풀 보디 full-body의 묵직함을 지니면서, 복합미가 매우 뛰어났던 기억. 진하고 풍부한 블랙커런트와 미네랄 향, 그윽한 삼나무 향이 퍼즐처럼 섞이고, 간간이 담담한 흙냄새가 났다. 카베르네 소비뇽 86%에 메를로 14%를 더해 만든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역시 훌륭했다. 단일 품종으로 만든 와인보다는 묵직함이 덜하지만 사이사이 바람과 체리, 건포도 향이 들어간 느낌.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 음식과 함께하면 그만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지난 25년간 끊임없이 훌륭한 점수를 얻은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는 샤토 몬텔레나뿐이다.” ‘와인의 제왕’ 로버트 파커 Robert Parker의 말이다. 주소 1429 Tubbs Lane Calistoga Napa Valley, CA 94515 문의 (707)942-5105,
www.montelena.com


1, 3 2008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을 비롯, 세계적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의 작품으로 나파밸리에서 단연 돋보인다. 건물 내부에서 바라보는 와이너리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그림이자 풍경이 된다.
2 내부는 작은 소품을 이용, 갤러리처럼 꾸몄다.

세계적 건축가가 지은 ‘포도 집’,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Dominus Estate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의 명성에 관해 들었다면 도미누스 와인의 ‘내공’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샤토 페트뤼스의 소유자인 크리스티앙 무엑스 Christian Mouiex가 나파밸리에서 만드는 와인이 도미누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곳은 눈부신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미처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이곳을 일부러 찾은 이유가 있다. 미학적 건축! 흡사 가로로 길게 뻗은 ‘돌망태’를 닮은 이 독특한 건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자크 헤르조그 Ja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 Pierre de Meuron 콤비가 만든 세계적 작품이다.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 2006년 독일 월드컵 주경기장,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이 모두 그들의 ‘자식’이다. 돌로 지은 미학적 건물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인근의 아메리칸 캐니언에서 채석한 현무암을 썼고 이를 스테인리스 스틸 망으로 잡아두어 심미적이고도 공학적인 느낌을 완성했다. 더불어 건물은 고속도로에서 불어오는 먼지바람을 막아주는 역할까지 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유리 사무실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포도원의 하루와 사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부 역시 외관만큼이나 눈부시다. 크고 작은 청동 소품이 군데군데 잘 만든 수공예품처럼 놓여 있다.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와이너리는 구조감과 복합미가 뛰어나며 로마네 콩티 등과 더불어 세계적 명성을 지닌 샤토 페트뤼스의 소유자, 크리스티앙 무엑스가 ‘지휘’하는 곳이다. 1982년 나파밸리의 포도원 잉글누크Inglenook와 합작, 뒤에 소개할 오퍼스 원보다 먼저 ‘나파밸리 기지’를 만들었던 그는 1995년부터 단독으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인이 총지휘자이므로 ‘보르도풍’은 와인에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 들어 있다. 풍부한 타닌, 튼튼한 구조의 ‘나파밸리적’ 특성 외에도 부드럽고 우아한 ‘보르도적’ 특성이 공존한다. 주소 2570 Napanook Road Yountville CA 94599, 문의 (707)944-8954,
www.dominusestate.com


1 오퍼스 원 CEO 데이비드 피어슨(왼쪽)과 PR 매니저, 세일즈 담당은 많은 대화를 통해 최상의 접점을 찾아낸다.
2, 3우주선을 닮은 웅장한 오퍼스 원의 메인 건물. 발코니에 서면 바다처럼 펼쳐진 하늘과 포도밭을 조망할 수 있다.
4 지하 셀러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일렬로 놓여 있는 오크통.

단 하나의 압도적 이름,
오퍼스 원 Opus One
나파밸리 초입에 우뚝 서 있는 오퍼스 원 건물의 위용은 대단하다. ‘미래’를 담은 박물관 같기도 하고, 원형으로 지은 우주선 같기도 하다. 그 안에서는 특출한 외관보다 더 명성이 자자한 최고급 와인이 만들어진다.

오퍼스 원의 명성은 ‘별들의 집결지’인 나파밸리에서조차 높다. 병당 와인 가격이 약 2백 달러로 가장 높으며(국내에서는 40만~50만 원대에 판매된다), 품질 관리 또한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그곳의 방문자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부분은 오크통의 ‘일렬 관리’. 공간이 충분치 않아 대부분의 와이너리에서 2단 이상으로 오크통을 쌓는 것과 달리 오퍼스 원에서는 오크통을 일렬로 배열하고, 수시로 품질을 관리한다. 종합 경기장의 육상 트랙처럼 동그란 와인 저장고는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다. 수천 개의 오크통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놓여 있는 모습은 오크통을 소재로 한 대규모 설치미술 같다. 와인 시음장과 살롱 곳곳에는 피카소, 미로 등의 작품이 별처럼 박혀 있다. 오퍼스 원은 매년 최상급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에는 오퍼스 원의 ‘뿌리’가 차지하는 공헌이 크다.

오퍼스 원을 만든 두 명의 창립자는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거성, 바롱 필리프 드 로실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 남작과 나파밸리의 거성,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둘은 ‘나파밸리에서 프랑스의 특급 보르도 와인을 만들어보자’는 약속 아래 오퍼스 원을 설립했다(라벨에 붙은 두 명의 얼굴 그림자는 바롱 필리프 드 로실드와 로버트 몬다비의 약속을 상징한다). 오늘날 오퍼스 원에서 만드는 와인은 단 한 가지.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말벡Malbec 등의 비율을 매해 적절히 조절하면서 보르도 1등급 와인인 그랑크뤼Crand Cru의 ‘기준’을 만들어낸다. ‘오퍼스 원’은 (음악에서의) ‘작품’을 일컫는 라틴어 ‘Opus’와 영어 원 ‘One’이 결합된 것으로 ‘첫 작품’을 상징한다니, 이 얼마나 적절한 네이밍인가.
주소 7900 St. Helena Highway Oakville, California 94562 문의 (707)944-9442,
www.opusonewinery.com

5 오퍼스 원 와인의 라벨. 로버트 몬다비의 얼굴은 서쪽을, 로실드 남작의 얼굴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1 1백 년도 더 된 헛간의 나무 판자를 일일이 떼어다 만든 목조 건물. 그리고 그 앞에 한가득 놓인 호박은 최고의 풍경을 만들었다.
2 와이너리 입구에 운치 있게 놓인 나무 수레.
3 백장미처럼 깨끗한 느낌의 모던한 건물 너머로 니켈&니켈의 ‘오래된 풍경’이 펼쳐진다.

100% 싱글 빈야드, 니켈 & 니켈 Nickel & Nickel
니켈&니켈 와이너리는 참 고운 ‘얼굴’로 기억되는 곳이다. 넝쿨 장미 가득한 정원을 지나 흰 건물을 지나면 너른 마당과 오래된 헛간이 보인다. 그 앞에 수북이 쌓여 있던 호박이며 채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마당 하나 갖고 싶었다. 가을이면 거둬들인 호박과 포도가 눈처럼 쌓이는 공간. 넘치는 ‘물질’이 없다 하더라도 그곳에 서면 마음이 꽉 채워질 듯싶었다. 오래된 헛간과 너른 마당에 더욱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곳 스스로 풍화된 세월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주인은 앞서 소개한 와이너리 파 니엔테를 공동 소유하고 운영하는 이들. 와인 전문가이기 전에 와인 애호가인 이들은 1998년 이 땅을 매입, 와이너리로 바꾸었다.
흰색 건물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오래된 풍경과 마주한다. 나무판 한장 한장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오래된 목조 건물! 부지를 매입하기 전부터 이곳에 있던 헛간의 나무판을 일일이 떼어다 만들었다는데 정말이지 보고 또 봐도 아름답다. 그 옆 너른 마당에 선물처럼 쌓여 있는 호박 역시 참으로 센스 있는 데커레이션이다. 그곳에서 맛보는 와인은 그렇듯 풍요로운 세월의 향기와 더불어 감미롭다.

그 눈부신 ‘얼굴’만으로 꼭 한번 발걸음을 해보라 권유하고 싶은 니켈&니켈 와이너리는 싱글 빈야드, 즉 단일 포도밭 와인만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품종이라 하더라도 기후와 토양이 다른 곳에서 자란 포도를 블렌딩할 경우 맛의 ‘원형’이 깨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같은 샤르도네 품종이라 하더라도 ‘이쪽’ 포도밭과 ‘저쪽’ 포도밭의 성질이 다르므로 이곳 와이너리에서는 ‘이쪽’ 혹은 ‘저쪽’의 포도만을 사용, 각기 다른 와인을 만든다. 언뜻 생산량이 적을 것 같지만 이렇게 생산되는 와인의 종류가 25종이 넘는다. 샤르도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시라, 진판델 등 거의 모든 종류의 품종이 제품군에 포함된다. 와인 메이커인 다리스 스피넬리 Darice Spinelli의 설명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아무 포도밭이나 찾아 다니지 않습니다. 토양, 기후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인 포도밭이어야 하지요. 또한 이전부터 최고의 재배지로 입증된 곳이어야 합니다. 포도밭 주변에 어떤 이웃이 있는지, 포도밭을 누가 관리해왔는지, 포도를 재배하는 담당자가 최고의 포도밭을 가꾸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지도 면밀히 검토합니다. 땅의 성질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며 각각의 땅이 지닌 성질을 잘 이해해야 최고의 와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소 8164 St. Helena Highway Oakville, CA 94562 문의 (707)967-9600, www.nickelandnickel.com

You Can Buy It in Korea
여기 소개한 모든 와이너리(단, 로버트 몬다비와 니켈&니켈 제외)의 대표 와인은 나라식품(02-405-4300)에서 수입, 와인타임(02-548-3720)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와인타임은 압구정동과 문정동, 도곡동에 지점을 두고 있으며 백화점에도 와인을 납품한다. 로버트 몬다비의 와인은 신동와인(02-794-4531)에서 수입하며 니켈&니켈은 아직까지 국내에 정식 수입되고 있지 않다.
출 처 : 행복이 가득한 집 2008년 2월호



스파, 와인 그리고 예술이 있는 스위스
스위스로 신혼여행을 간다면 어떤 루트를 선택하겠는가?”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칼라스’ 안보현 대표와의 동행은 이런 기획에서 비롯되었다. 공연 예술, 스파, 와인을 좋아하는 그녀가 선택한 곳은 스위스의 관문이자 문화 도시 취리히, 해발 1400m에 있는 온천지대 로이커바드, 레만 호 지역의 절경과 와인을 맛 볼 수 있는 몽트뢰와 브베. 철도 시설이 잘되어 있는 나라인 만큼 기차 여행을 위한 스위스 패스를 챙겨 들고 각 지역 탐방에 나섰다.


1 취리히 중앙역 천장에 장식되어 있는 니키 드 생팔의 <천사Angel>.
2,3,4 부루마불 게임에도 등장하는 취리히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 크게 유명 브랜드 상점이 늘어선 신시가지와 중세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구시가지로 구분된다. 도시 전체에 트람Tram 노선이 잘 연결되어 있고, 정거장에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는 트람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운행 시간이 정확하다. 스위스 패스를 가지고 있다면 별도로 티켓을 구입할 필요 없다.

현재까지의 해외여행 일수를 헤아리면 1년은 족히 되고도 남는다는 안보현 씨.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외국인 교수에게 사사받기 위해, 해외 뮤직 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공연을 보기 위해 등 여러 이유로 어려서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다. 대학 졸업 후 무대 위에 서는 성악가의 길 대신 무대 뒤에서 역할이 큰 공연기획자로 일하며, 4년 전부터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칼라스’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요즘은 공연뿐만 아니라 와이너리 탐방 때문에 유럽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특히 이탈리아에 가면 인접한 루가노 지역에 꼭 들를 만큼 스위스에 대한 관심도 많다. 자연과 사람이 이루어낸 솜씨가 잘 조화를 이룬 스위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함께 가고 싶은 곳이라고.

우리나라 면적의 1/2 정도 되는 이곳은 철도망이 전국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어 이를 이용한 여행을 해볼 만하다. 시계의 나라로 유명한 만큼 기차가 연착되는 일 없이 제 시간에 도착, 출발하기 때문에 이를 근간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절대 없다. 그래서 안보현 씨와 함께 기차 여행길에 올랐다.


1프라우 뮌스터 내부. 청록색 탑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이곳은 샤갈이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2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리마트 강. 오래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축물과 거리의 회전목마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모습을 더한다.
3자코메티 관이 있는 쿤스트 하우스는 유명 작가의 좋은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4길드의 집을 개조한 미술관 내부의 화려한 천장.

수도 베른보다 더 많이 알려진 취리히는 그 자체가 문화이고 예술이다. 리마트 강을 따라 형성된 구시가지 곳곳에서는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은 최고의 예술품을 마주하게 된다. 여행 가이드북에도 빠짐없이 언급되는 프라우 뮌스터에는 샤갈이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고, 맞은편 그로스 뮌스터에는 자코메티가 만든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심지어 강 오른쪽에 자리한 경찰청의 벽과 천장이 자코메티의 벽화로 장식되어 있을 정도. 그러나 도시 전체를 조망하면 화려하거나 웅장한 건물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근면과 검소를 강조하는 개신교라서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에 약간의 장식을 가미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중 다소 화려해 보인다 싶은 건물은 영락없이 예전의 상인 집단인 길드의 집. 지금은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로 이용되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 본능적으로 문화, 예술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는 길드의 집 문 안쪽 면에는 외부와 달리 좀 더 장식을 하고, 천장에도 화려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멋지고 근사하게 꾸미고 싶은 본심과 금욕, 절제하려는 상반된 마음에서 갈등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의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도시의 모습은 화려함과 예술성을 거침없이 드러낸 파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절제미가 녹아 있어서인지 다양한 숍이 자리하고 있는 구시가지의 골목길은 한참을 걸어 다니면서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다.

취리히에는 약 50개의 박물관과 1백 개가 넘는 아트 갤러리가 있는데,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쿤스트 하우스다.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자코메티 관에서는 초기 작품부터 아프리카 조각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빼빼 마른 형태의 조각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한남동 리움 미술관에서 단 한 점 볼 수 있었던 그의 작품을 풍족하게 즐기는 호사도 누려볼 만하다. 이외에 샤갈, 피카소, 세잔, 뭉크 등 근대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취리히에서 열리는 공연이나 다양한 문화 행사는 금융 도시답게 은행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든든한 지원 덕분인지 1년 내내 공연, 예술, 문화 행사가 끊이지 않는데, 이곳에서 문화의 향취를 흠뻑 맡는 기회를 놓치지 말 것.


1 1916~1917년까지 취리히에 머물렀던 레닌이 자주 갔던 카페 ‘오데온ODEON’.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메뉴, 커피잔, 설탕 봉투 등에 그려진 레닌 일러스트가 인상적이다.
2길드의 집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곳. 음식 맛은 물론 계절 분위기를 살린 센터피스, 친절한 서비스가 특징이다.
3역에 있는 이정표의 노란색은 출발편, 흰색은 도착편의 기차 시각을 알려준다.

산속 고지대에 자리한 온천지 로이커바드
로이크 역에서 버스로 30여 분간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로이커바드에 도착한다. 해발 1400m부터 더 높은 곳까지 목조 가옥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떤 조건의 자연 속에서든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사람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깊은 산속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하루 390만 리터의 천연 온천수가 나오는 온천 지역. 해발 2700m에 고인 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해저 500m까지 흘러내려 그 물이 온천수로 뿜어져 나오는데 40여 년이 걸린다고 한다. 땅속으로 스며들어 ‘40여 년간 여행한 물’은 알프스의 미네랄, 칼슘 등 1백30여 가지 성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이곳은 스파뿐만 아니라 재활 클리닉 센터로도 유명하다. 스위스 국가대표 선수들의 치료소로 공식 지정되었을 정도.

스파뿐만 아니라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안보현 씨는 로이커바드에 도착하면서부터 지체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겜미Gemmi 산은 수원水源 지대이자 하이킹으로도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목초지, 산맥, 호수, 빙하가 어우러진 자연을 제대로 느끼려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산에 올라야 하는 법. 길목마다 목적지 방향, 소요시간, 해발 등이 표시된 노란색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난이도까지 적혀 있어 원하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목에 종을 매고 ‘댕댕’ 소리를 내며 풀을 뜯어 먹는 소(이런 환경에서 신선한 풀을 먹으니 스위스의 우유, 치즈, 초콜릿이 맛있을 수밖에)가 있는 목초지를 지나 산과 계곡을 따라 오른다. 산을 따라 설치한 철로 만든 길을 걸어 오르다 보면 아찔한 순간도 있지만 자연 속에 흡수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1해발 2700m에 달하는 겜미Gemmi 산 정상에 있는 산상 호수 다우벤제는 놓치지 말고 가볼 만한 곳.
2로이커바드는 평생 1천 일 이상을 온천지역에서 보냈다는 괴테를 비롯해 모파상, 뒤마 등 유명한 문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이곳에는 약 22개의 온천이 있는데 하이킹, 스키, 눈썰매 등 산악 스포츠를 즐기고 난 후 피로를 푸는 데 제격이다. 눈으로 자연 풍광을 즐기며 온천 풀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Thank you, God”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3가파른 길에는 바닥 밑으로 사용하고 난 온천수가 흐르게 설치해서 빙판길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고.
4하이킹 후 온천 풀에 들른 안보현 대표. 그녀의 추천 아이템은 저렴한 가격에 효과는 탁월한 마사지다.

산길을 오른 뒤 이쯤이면 되었다고 길을 멈추는 것은 큰 실수! 반드시 케이블카를 타고 겜미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2700m 정상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먹는 뢰슈티(Ro?sti, 감자를 얇게 썰어 프라이팬에 넣고 팬케이크 모양으로 익힌 것)와 사과주스는 소박한 밥상이지만 최상의 기분을 경험케 한다. 레스토랑 밖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이 만년설로 덮인 풍광은 지구 태초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산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 데칼코마니 같은 영상이 펼쳐지는 산상호수 다우벤제는 가까이 보이지만 다녀오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내친 김에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그곳에서 말을 삼가고 호수까지 걷다 보면 색다른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하이킹을 하거나 스키, 눈썰매를 타고 나서 로이커바드 온천으로 가면 그야말로 완벽한 코스. “산과 호수가 공존하는 흔치 않은 트래킹을 즐길 수 있어서 좋고, 이후에 스파에서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든다”는 안보현 씨 말마따나 ‘세상에 이런 곳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한 지역이다.


1브베의 와이너리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단 세 곳의 포도밭 중 하나로 밭 사이를 걸으며 포도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레만 호수와 브베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을 바라본 느낌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
2,3브베의 와이너리 마을.
4,5골든패스 클래식 기차. 1930년대 초 스타일의 외관에 벨에포크 양식으로 꾸민 객실은 기차 여행의 낭만을 더해주기에 충분하다. 7‘시옹 성이 있는 몽트뢰’라고 칭해질 만큼 대표적인 명소. 가운데 있는 성탑에 올라가면 레만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와인과 예술적 감성을 불러들이는 레만 호수
취리히에서 루체른을 거쳐 몽트뢰로 이어지는 골든 패스 라인은 스위스 기차 여행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에 해당된다. 천장의 일부까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파노라마 열차를 비롯해 180도 돌아가서 움직임이 자유로운 의자, 카우치형 소파 등 스타일이 다양해 마치 집 안에서처럼 편하게 앉아 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 기차 유리창을 통해 목초지, 만년설, 전통 가옥 샬레 등 스위스의 자연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모습에 이어 레만 호수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와’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몽트뢰 역에 내리면 취리히나 로이커바드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데, 지중해 스타일이 묻어나는 이곳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와인이다. 압구정동과 청담동처럼 경계 구분이 모호하게 몽트뢰 가까이 붙어 있는 브베에는 샤슬라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비롯해 스위스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와이너리가 많다. 와인 마니아 안보현 씨가 가장 기대했던 브베 지역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단 세 곳의 포도밭 중 하나. 비탈길에 계단형으로 포도나무를 심어 직사광선을 많이 흡수하고, 호수에서 반사된 태양빛까지 더해져 당도 높은 포도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수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현지 외에는 맛보기 힘든 스위스 와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숙성시켜 영Young하고 가벼운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안보현 씨가 최고로 꼽은 것은 ‘데즐리’로 프루티하면서 드라이한 맛을 좋아하는 그녀의 입맛에 딱 맞는다고.


1‘시옹 성이 있는 몽트뢰’라고 칭해질 만큼 대표적인 명소. 가운데 있는 성탑에 올라가면 레만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2안보현 대표가 최고로 꼽은 와인 ‘데즐리’는 샤슬라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으로 프루티하면서도 드라이한 맛이 특징이다.

레만 호수를 따라 카페, 레스토랑, 고풍스러운 호텔이 늘어서 있는 몽트뢰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곳이다. 소설 <롤리타>의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잠시 머물며 집필하려 했다가 결국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년간 몽트뢰에서 지냈다고 한다. 시인 바이런은 시옹 성 지하의 감옥을 보고 ‘시옹 성의 죄수’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호수 암반 위에 세워진 시옹 성은 몽트뢰를 대표하는 멋진 곳이지만, 이를 소재로 한 바이런의 작품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다. 이외에 오드리 헵번, 찰리 채플린, 헤르만 헤세, 빅토르 위고 등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이 레만 호수 지역을 찾았다. 이 때문에 유명인의 동상이 많이 있는데, 록 밴드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가 호수를 향해 선 채 한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은 하늘로 힘차게 뻗은 모습이 가장 유명하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나 자연경관 덕분에 관광자원을 벌어들이는 유럽 국가의 경우 낭만은 충만하지만 일처리가 명확치 않아 여행하다 한두 번은 골탕 먹게 마련이다. 그러나 스위스는 이와 달리 수려한 자연 못지않게 시스템이 잘되어 있고, 각자 맡은 임무를 똑 부러지게 처리해 반했다는 안보현 씨.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레만 호수 근처의 부티크 레스토랑에서 그와 함께 와인을 즐기고 싶단다.

스위스 기차 여행이 좋은 이유 4
1한 치의 오차도 없는 운행 시각 기차가 제 시간에 도착, 출발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

2한눈에 들어오는 알프스 산맥의 풍광 산악지대를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를 타면 푸른 목초지, 울창한 산, 만년설이 덮혀 있는 산봉우리 등 스위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3다양한 종류의 기차와 객실 타입 골든패스라인, 빙하특급 등 도시를 잇는 다양한 루트의 노선이 있다. 또한 자유롭게 돌아가는 의자, 다양한 스타일의 좌석, 천장까지 통유리로 이어진 창문 등 색다르게 디자인 된 기차 내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4기차역에서 가능한 수하물 서비스 역에서 역으로 짐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무거운 여행 가방을 계속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자세한 내용은
www.rail.ch/baggage
출 처 : 마이웨딩 2007년 11월호

오스트리아 다뉴브 와인 기행
음표처럼 퍼지는 와인 향기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를 낳은 땅에서 나온 포도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세계 와인 생산의 1퍼센트만을 차지하는 오스트리아 와인은 유럽 대륙의 어떤 와인보다 섬세하고 음악적이다. 신선하고 가벼운 스타일부터 힘차고 묵직한 스타일까지, 복합적인 향미를 지니고 있는 오스트리아 와인이 연주하는 맛의 선율을 느껴보자.

1
랑겐로이스 마을의 포도밭 위에 세워진 와인 박물관 로이지움의 리셉션 센터.
2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포도 그뤼너 벨트리너.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살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 와인 마케팅 보드(AWMB)의 대표 빌리 클링거 Willi Klinger가 말한다.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레일리아와 혼동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하는 말이다. 이어서 “오스트리아 와인은 지성인을 위한 와인”이라고 강조한다. 세계 와인 생산량의 고작 1퍼센트를 차지하는 오스트리아 와인은 어차피 대량 수요처가 필요하지도 않다. 와인의 참 맛을 이해하는 그런 지성인들의 와인이면 충분하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더 요구한다 해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정된 와인을 보다 더 고차원적으로 알리기 위한 현명한 태도인 것 같다. 역시 AWMB에서 일하는 주자네 슈타글 Susanne Staggl은 “유럽 한복판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와인으로는 별로 알려진 적이 없어 ‘구세계 Old World’ 중에서도 가장 새롭습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는 ‘New Old World’로 표현될 수 있죠”라고 말한다. 품질은 충분하나 수량이 부족하여 와인 애호가들에게조차 생소한 와인이 아닐까 싶다.

포도밭을 맨 처음으로 찾아 나선 곳은 황새가 많기로 이름 난 부르겐란트 Burgenland 지방의 루스트 Rust다. 이곳은 노이지들러 호수 Neusiedlersee 인근의 도시로 이름처럼 바다같이 큰 호수다. 호숫가에는 물안개가 많아 예로부터 이곳은 스위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귀부 포도를 만드는 곰팡이 보트리티스 시네레아 Botryits Cinerea가 포도밭에 잘 퍼지기 때문이다. 동유럽의 드넓은 평원 페노니아를 달리는 이들의 생활은 기다랗게 지어진 집의 양쪽 끝에 마주 보고 단 대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로 말 탄 채 드나들 수 있다. 이 지방에 속한 미텔부르겐란트 Mittelburgenland 지역은 레드 와인으로 유명하다. 토착 품종인 만생종 블라우프랑키쉬 Blaufrankisch는 육중한 골격과 강건한 구조, 진한 빛깔을 자랑하여 2005년에 레드 와인으로는 최초로 DAC(Districtus Austriae Controllatus; 프랑스의 AOC, 이탈리아의 DOC와 유사)를 획득하였다. 루스트의 양조장 기핑 Giefing의 주인 에리히 기핑은 제철 음식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내놓으며 여러 종류의 블라우프랑키쉬를 맛보도록 했다. 이 품종은 오스트리아를 벗어나면 렘베르거 Lemberger라고 불리기도 한다.

두 번째 행선지는 오스트리아 와인의 최대 생산 지역인 바인피아텔 Weinviertel. 비엔나 북쪽에 위치한다. 한때 벌크와인을 주로 생산하였으나, 요즘 고품질 와인으로 거듭나려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주로 그뤼너 펠트리너가 재배되는데, 2003년에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DAC가 지정되었다. 시음 장소는 바로크 문화가 흥건히 젖어 있는 호프 성 Schloss HOF. 사보이의 왕자 오이겐의 거처였으며, 이후에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별장으로 사용한 드넓은 성이다. 이 지역에서 대대로 양조업에 종사해오다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을 출시하고 있는 바우어 노르베르트 Bauer Norbert에 따르면 츠바이겔트 Zweigelt라는 품종은 3년 정도 숙성되면 딱 좋으며, 주로 국수나 소시지에 곁들인다. 주말이면 체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와인을 사러 오기도 한다. 츠바이겔트는 블라우프랑키쉬보다 색깔도 연하고 질감도 가벼운 편이라서 음식과의 궁합을 맞추는 것은 오히려 더 쉽다. 츠바이겔트는 1922년에 동명의 학자가 블라우프랑키쉬와 생로랑 St-Laurent을 혼합하여 만든 신품종이다.

고양이가 앉은 오크통이 최고의 와인
세 번째 행선지는 괴트바이크 수도원 Stift Gottweig. 우리의 불국사처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해발 449미터의 산꼭대기에 조성된 베네딕트 수도원은 이제 더 이상 적막하지 않다. 와인 산업이 번성하면서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관광지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영성 훈련에 힘쓰지만, 다른 쪽에서는 숭고한 현장을 살피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넓은 테라스에 서서 다뉴브 강을 바라보며 근처 양조장의 와인들을 맛보고 있었다. 루트비히 히들러 Ludwig Hiedler는 개성 있는 리슬링을 생산한다. 화산 토양으로 가득 찬 포도밭 하이리겐슈타인 Heiligenstein은 와인 속에 미네랄을 한 아름 쏟아 붓는다. 부싯돌의 뉘앙스랄까, 간결하고 깔끔한 뒷맛이 한참 동안 입 안을 맴돈다.

네 번째 행선지는 와인 박물관 로이지움 랑겐로이스 Loisium Langenlois. 마을에 당도하니, 빌바오 구겐하임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 덩어리로 꾸며진 건축물이 포도밭에 덩그러니 서 있다. 박물관에 이르는 지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곧장 상상력으로 충만한 세계가 기다린다. 형형색색의 물갈래가 분수에서 터져 나오며 등장하는 바쿠스가 압권이다. 음악을 타고 연못 속에서 부상하는 그의 입에서 한줄기의 물이 뿜어져 나오고, 그 물은 조명을 받아 화이트 와인으로, 로제 와인으로, 레드 와인으로 변한다. 성경에서처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장면이다. 와인 셀러로 가니 고양이 조각이 붙은 오크통이 진열되어 있었다. “잘 익은 포도가 담긴 통은 발효 중에 발생하는 열량이 높은데, 고양이가 그걸 알고는 뜨끈뜨끈한 그 위에 즐겨 앉는다”고 홍보 담당자 에바 슈타이닝어거 Eva Steininger는 설명한다. 그녀는 이어서 “이곳은 와인의 태동과 미래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설계된 곳이며, 2003년 신축된 후에 오스트리아의 명소가 되었다”고 말한다.

다섯 번째 행선지는 오스트리아 대표 와인 명산지 바하우 Wachau. 다뉴브의 물결이 오랜 세월 동안 산허리를 파먹고 또 파먹고 들어간 결과, 오늘날 화려하게 굽이치는 아름다운 강 유역을 만들어놓았다. 이곳도 역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이다. 구불구불 요동치는 강 흐름이 남향으로 이르는 곳에 하나같이 자리 잡은 것이 포도밭. 깎아지른 듯한 고바위에서 어떻게 작업을 하나 염려될 정도로 험한 곳에 위치한 포도밭에서는 고품질의 화이트 와인이 만들어진다. 유럽연합은 예외적으로 이런 절벽 밭에는 관개를 허용하고 있지만, 포도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으면 좀처럼 하지 않는다.

바하우에는 유명 양조자들이 많다.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에 해당하는, 딱 떨어지는 단일 포도밭들도 많다. 포도의 순수성을 좇는 이런 곳, 예를 들면 에메리히 놀 Emmerich Knoll, 로이벤버그 Loibenberg에서 재배한 그뤼너 펠트리너는 미네랄, 흙, 돌, 성냥, 후추 같은 향이 예리하게 퍼지며 시종일관 혀를 잡아맨다. 프란츠 히르츠베르거 Franz Hirtzberger가 징거라이델 Singerriedel에서 얻은 리슬링은 화려한 리슬링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풍부한 아로마가 단번에 코를 제압하며, 복합적이고 신선하고 입 안에서 확 퍼지는 강렬함과 농밀함은 최고의 화이트라 할 만하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우리에게 낯설다. 라벨 읽기도 요령부득이다. 프랑스 와인 편식에 빠져 있던 우리가 이제 조금씩 와인의 다양성에 눈뜨고 있는 요즘, 친한 친구와 부담 없이 즐길 와인 한 병을 추천한다. 다뉴브의 잔물결이 흘러넘치며, 모차르트와 클림트의 재치가 스며든 오스트리아 와인. 빌리의 말처럼 ‘지성인을 위한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 한 잔 어떠신가요?


1 와인 명산지 바하우에 속하는 뒤른슈타인의 풍경. 이 곳 산 꼭대기 성에 사자왕 리처드 1세가 감금되기도 했다.
2 매일 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초대하는 성장한 청년들이 거리에 즐비히다.
3 오스트리아 와인 마케팅을 책임지는 빌리 클링거.
4 꼬마 기차 타고 떠나는 비엔나 기행도 재미있다.
5 가장 따뜻한 오크통 위로 뛰어든 고양이. 그 안의 포도가 가장 잘 익었다는 신호다.

information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오스트리아 와인 4
1 부르겐란트 Burgenland
품종 블라우프랑키쉬 Blaufrankisch 빈티지 2004 특징 진하고 강한 과일 향기, 풍부한 질감과 단단한 구조로 입 안을 장악한다.
2 캄프탈 Kamptal 품종 그뤼너 펠트리너 Gruner Veltliner 빈티지 2005 특징 1987년부터 매년 라벨을 회화 작품으로 갈아입는다. 상쾌하고 가벼운 화이트 와인.
3 부르겐란트 Burgenland 품종 바이스부르룬더 Weissbrugunder (피노 블랑의 독일식 표현) 빈티지 2004 특징 수확을 늦추어 포도의 당분을 최대한으로 높임. 발효를 중도에 그만 두어 와인의 맛이 단 게 특징.
4 부르겐란트 Burgenland 품종 츠바이겔트 Zweigelt 빈티지 2005 특징 같은 이름의 포도 학자가 만든 교배종으로, 검붉은빛이 감도는 화려한 빛깔과 농익은 과일 향기가 특징이다. 강건한 질감과 밀도로 삼킨 후의 여운도 있다. 와인 문의 수미르 와인 (02)720-5742

출 처 : DOVE 2007년 9월호

[CANADA ICE WINE]오카나간 와이스와인 페스티벌
Snow, Food, Award, Smile, Tasting …
밴쿠버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의 오카나간 Okanagan은 과일과 와인의 천국이다. 오카나간 호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동산, 과수원, 구릉에서는 포도와 사과, 배, 체리, 살구 등이 뜨거운 볕을 먹고 주렁주렁 열린다. 과실이 사라지고 눈 내리는 겨울, 인근의 선픽스 리조트에서는 아이스 와인 페스티벌이 열린다. 리조트에서 열리는 아이스 와인 페스티벌은 매년 ‘북미 이벤트 톱 100’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2 ‘와인 마스터스의 저녁’에 서빙된 ‘화이트 초콜릿 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사과 구이’, 그리고 ‘수프에 찍어 먹는 베이컨 브레드 스틱’. 각각 리슬링 아이스 와인, 피노 누아와 함께 ‘짝’을 이루었다.
3 만찬의 호스트는 모든 테이블을 돌며 각각의 음식과 와인의 궁합에 관해 친절한 설명을 보탠다.

오카나간은 뒤에 소개할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 Niagara on the Lake와 함께 아이스 와인을 재배하는 양대 산지다. 비록 그 규모에서 ‘자이언트급’인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에 미치지 못하지만 당도 높은 포도만으로 친다면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의 포도에 뒤지지 않는다. 높은 당도의 포도 생산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역시 기후다. 오카나간 밸리는 북반구에서는 유일하게 사막의 기후를 지닌 곳으로 미국의 나파 밸리보다도 2배 이상 높은 일조량을 자랑한다. 한여름의 온도는 38~40℃를 넘나드니 포도를 포함한 모든 과실은 알알이 품은 쨍한 볕과 더불어 싱그럽다. 오카나간 밸리 주변으로는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와이너리가 있는데 모두 강 연안의 고지대나 비탈길에 있다. 태양은 이곳에 평지보다 먼저 도착해 밤새 내린 이슬을 말린다. 연간 강수량도 낮아 포도는 각설탕처럼 품은 당을 비에 내주지 않는다. 겨울은 산비탈을 내려온 바람으로 매섭게 추우니 아이스 와인을 만들기에도 모든 조건은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토양과 태양, 바람과 벌, 오크 통의 영향으로 포도에서는 나무 향, 바닐라 향, 열대 과일 향, 꿀 향, 아카시아 향, 허브 향 등이 셰이크처럼 어우러진다.

오카나간 아이스 와인 페스티벌은 그렇듯 달고 싱그러운 포도로 만든 아이스 와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무대는 오카나간 밸리의 인근에 위치한 선픽스 리조트 Sun Peaks Resort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휘슬러-블랙콤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갖고 있는 리조트는 겨울, ‘눈 걱정 없는 눈’으로 깊숙이 파묻힌다. 묵직한 통나무 지붕에 내린 눈은 항아리만큼 높은 키로 쌓인다. 리조트에는 선픽스 로지 Sun Peaks Lodge, 하트스톤 로지 Heartstone Lodge 등 4~5개의 ‘통나무집’이 있는데 각 로지에서는 매일 다른 프로그램의 축제가 열린다. 아이스 와인 축제가 열리는 매년 1월, 참가자들은 스키와 스노보드를 타며 낮 시간을 보낸 후 밤이면 와이너리가 야심껏 준비한 ‘명작’ 아이스 와인을 맛본다. 낮 동안 부지런히 움직였던 몸은 아이스 와인과 함께 뜨거운 물에 담긴 국수 가락처럼 나른해진다. 아이스와인 앞에는 요리사들이 경합하듯 내놓는 진수성찬이 놓인다.

아이스 와인 페스티벌은 보통 2박 3일 일정으로 치러진다. 선픽스 리조트는 이 기간 동안 ‘와인 나라’로 변신해 축제를 돕는다. 와인 세미나, 와인 경매, 콘서트, 불꽃놀이, 퍼레이드 등이 축제를 빛내주는 조연들이다. 와인 축제를 빛냈던 ‘주연’이 몇 있는데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선픽스 로지 내의 레스토랑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열린 ‘와인 마스터의 저녁 Winemaster’s Dinner’, 좀 더 음운의 미를 살려 번역하자면 ‘와인 제조업자들이 주최하는 만찬’ 이벤트였다.

1, 2 ‘남자들의 남자’ 스티브와 그가 선보이는 아이스 와인.


3 선픽스 리조트에 내리는 눈은 항아리보다 큰 키로 통나무 지붕 위에 쌓인다.
2, 3. 4  와인 간담회에서는 베스트 빈티지의 아이스 와인과 이에 탐닉하는 아이스 와인‘빅 팬 Big Fan’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5 이번 와인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한 미션 힐 와이너리의 부스.

캐나디안, Men’s Man과 와인에 반하다
만찬장에 들어서며 처음으로 건네받는 것은 자우저 Sauser란 와인이다. 이를테면 보르도처럼 ‘올해의 첫 와인’인 셈인데 이제 막 발효가 시작된 와인은 포도즙과 와인의 중간 형태를 띤다. ‘완성된’ 와인만큼 농익은 맛은 아니지만 가볍고 시큼한 맛이 아오모리 사과 한입을 깨문 듯 상큼하다. 와인 잔을 들고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눔으로써 만찬이 시작된다. 밴쿠버에서, 토론토에서 ‘달려온’ 이도 많지만 미국에서, 프랑스에서 ‘날아온’ 이도 많다. 오늘의 호스트는 아도라 Adora와 롤링데일 Rollingdale 와이너리. 두 곳 모두 오카나간 밸리에 있는 곳으로 만찬은 이 두 곳의 ‘베스트 와인’과 함께 서빙된다. 두 와이너리의 대표가 무대의 중앙에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다. 처음 와인을 시작할 때 새와 곰, 여우 같은 ‘적’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야기며, 기껏 잘 지어놓은 ‘와인 농사’를 수확 일주일 전에 내린 폭우로 망쳐버린 에피소드 등에 사람들은 박수와 휘파람으로 화답했다. 2004년에야 비로소 와인 제조에 뛰어든 롤링데일 와이너리의 스티브 Steve는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바리톤보다도 낮고 굵은 음색을 지닌, 곰처럼 큰 몸집을 한 사내는 “와인 농사가 이렇게 많은 청소를 필요로 하는 줄 몰랐다. 발효 탱크 등 모든 공간이 깨끗할 새가 없으니 아주 죽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전직이 뭐였냐”는 나의 질문에 무성하게 난 가슴의 털을 보여주며 임꺽정처럼 굵은 음색으로 “매춘부!”라고 답할 만큼 즉흥적 언변과 유머 감각이 탁월했다. 몰랐던 표현인데 그처럼 터프하고 남자다운 남자를 캐나디안들은 ‘멘즈 맨 Men’s Man’(남자들의 남자)이라 불렀다.

만찬은 여섯 가지 코스로 서빙되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애피타이저, 스타터 Starter, 샐러드, 메인, 후식, 티 Tea 순서다. 마지막 차의 순서를 제외하고 모든 코스에는 아도라와 롤링데일에서 음식과의 궁합을 고려해 선택한 와인이 짝을 이뤘다. 메뉴 한 가지가 끝날 때마다 두 명의 대표는 번갈아서 어떤 맛에 주안점을 두고 와인을 음미할지, 와인의 맛과 향이 어떤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주방장은 각 음식에 관해 짤막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 메뉴를 잠깐 소개한다. 애피타이저로는 3년 발효시킨 치즈와 구운 마늘, 인도산 조미료를 넣고 구운 셜롯(Shallot : 서양 파의 일종)이 나왔는데 이와 ‘짝’을 이룬 와인은 아도라 와인의 2003년산 피노 그리스 Pinot Gris였다. 아도라의 사장 레이드 Reid는 “치즈의 향이 매우 강해 신맛이 강한 피노 그리스와 매칭을 이뤄봤다. 가벼운 보디의 신맛이 강한 와인이 치즈의 향을 누그러뜨리며 음식 전체의 맛을 부드럽게 돋울 것이다”라고 했다(그의 말은 과연 사실이었다). 쇠고기 수프에 베이컨으로 만든 빵 막대 Bread Stick를 찍어 먹는 스타터에는 롤링데일에서 만든 2004년산 피노 누아 Pinot Noir가 매치되었는데 여기에는 “일반 쇠고기 요리에는 묵직한 보디의 레드 와인을 서빙하나 이 요리는 비프에 비해 가볍고 산뜻해 좀 더 가벼운 레드 와인으로 준비해봤다”는 설명이 추가되었다(가벼운 레드 와인과 함께 먹는 쇠고기 수프는 봄나물 밥상에 반주로 마시는 막걸리처럼 잘 어울렸다). 메인 요리로는 킹크래브와 뉴욕 스테이크가 서빙되었고 이 요리에는 아도라의 메를로와 롤링데일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함께했다. 사람들은 각각의 와인과 음식을 비교하며, 미묘하게 다른 ‘궁합’의 차이를 탐구하듯 음미했다.

만찬은 약 3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각 와이너리에서 내놓은 ‘아이스 와인 대표 선수’ 두세 가지가 함께 서빙되고, 커피와 녹차가 각각의 주인을 찾아간 후, 오늘의 음식을 준비해준 ‘주방장 일동’에게 환호성과 박수까지 보낸 후에야 만찬은 비로소 끝이 났다. 10여 명이 함께 앉았던 ‘긴’ 테이블 위에 얹어진 와인 잔을 세어보니 큰 잔, 작은 잔, 주둥이가 넓은 잔, 좁은 잔 등을 합쳐 얼추 30개 정도의 잔이 올려져 있다. 운동회보다 긴 저녁 시간을 참지 못하는 한국의 취재단은 만찬의 ‘정식적인 종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고, ‘와인과 함께하는 밤’을 좋아하는 캐나디안들은 그 뒤로도 한참을 그곳에 남아 밤을 이어나갔다. 유머 감각 출중한 스티브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스위스 - 이탈리아 - 스페인 등을 여행하며 보낸 파란만장했던 젊은 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델타 Delta 로지에서는 ‘2007 아이스 와인과 레이트 하비스트 Late Harvest(아이스 와인의 포도 수확 적정 온도인 -8℃를 지키지 못한 아이스 와인) 시상식’이 있었다. 후보에 오른 와이너리와 시상식을 관람하려는 청중, 심사위원단 등으로 홀은 빼곡하게 들어찼다. 시상식은 조촐하되 따듯했다. 직접 호명되기 전까지 와이너리는 수상 사실을 알지 못하며, 수상 와이너리에는 트로피가 수여된다. 레이트 하비스트 & 디저트 와인, 리슬링 아이스 와인, 비달 아이스 와인, 레드 아이스 와인 등 총 5개의 카테고리에서 10개의 수상 와이너리가 결정되었다. 미션 힐 Mission Hill 와이너리가 3관왕에 올랐고, 잭슨트릭스 Jackson-Triggs 와이너리가 2관왕을 차지했다. 와인 채점에는 총 6명의 심사위원이 투입된다. 와인 잡지의 기자, 소믈리에, 오카나간 와인협회의 간부 등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데 이들은 출품된 와인을 3시간 동안 시음하고 각각의 채점 결과를 합해 수상 와이너리를 결정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지역의 와인 전문지 <와인 트레일스 Wine Trails>의 기자이며 심사위원인 대니 그린 Dani Greene은 말했다. “모든 와인은 ‘명찰’을 달지 않고 시음대에 올려지기 때문에 특정 와이너리를 의도적으로 밀어주는 등의 특혜는 있을 수 없다. 수상 결과는 일간지나 와인 전문지 등에 모두 실리게 되므로 홍보 효과를 위해서라도 매년 점점 더 많은 와이너리가 시상식에 참여한다. 수상작은 모두 당도와 산도, 알코올이 훌륭히 균형을 이룬 것들이었다. 달기만 해서는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시상식이 끝나고 난 후 청중들은 브런치를 함께 하는데, 수상 와이너리나 비수상 와이너리 모두 홀의 한쪽에 부스를 마련하고 와인을 서빙한다. 지난밤의 스타, 스티브 역시 ‘멀쩡한’ 얼굴로 그 자리에 있었다.


1 프로그레시브 테이스팅, 즉 여러 와이너리가 출품한 아이스 와인을 ‘집중 테이스팅’하는 행사는 오카나간 아이스 와인 페스티벌의 백미로 꼽힌다.
2, 3 금융 전문가에서 아이스 와인 전문가로 변신한 존 슈레이너는 ‘와인 간담회’를 통해 편애해 마지않는 아이스 와인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4 선픽스 리조트는 캐나다의 스키 영웅, ‘낸시 그린 Nancy Greene(왼쪽 여성)과 함께하는 스키’ 프로그램으로도 유명하다.

스키와 와인은 도돌이표를 타고
시상식을 관람한 청중들은 브런치의 종료와 함께 눈 쌓인 슬로프로 오른다. 슬로프는 스키어 혹은 스노보더 대비 방대하게 넓으니 사람들은 천연설이 만들어내는 파우더 슬로프를 타인의 방해 없이 질주한다. 리프트를 기다리는 시간도 없으니 슬로프에는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뿐이다. 그렇게 한바탕 짜릿한 활강을 즐긴 이들은 맥주 혹은 휴식 혹은 온천으로 피로를 푼 후 저녁의 ‘프로그레시브 테이스팅 Progressive Tasting’ 행사에 참가한다. ‘집중적 테이스팅’이라 해석할 수 있는 이 행사는 오카나간 페스티벌의 백미로 꼽힌다. 오카나간 밸리 인근의 와이너리 20여 군데는 여행 박람회 하듯 한자리에 참여해 각자의 대표 와인을 선보이고 참가자들은 입구에서 받은 컵 하나를 들고 나름대로의 순번으로 와인을 테이스팅한다. 그들에게는 행사에 참여한 와이너리가 내놓은 모든 와인 품목이 프린트된 인쇄물과 연필도 지급되는데 사람들은 이 종이에 시음한 와이너리를 체크하고, 각 와인의 맛을 나름대로 정리해가며 ‘와인이 빛나는 밤’을 즐긴다. ‘블랙잭’ 등을 통해 수공예로 만든 목걸이도 선사하므로 바자회에 참석한 듯한 기분도 든다. 와이너리를 한 장소에 모아놓지 않고, 리조트 곳곳의 로지와 레스토랑 등에 분산시킨 것은 가장 마음에 드는 ‘연출’이었다. 조용히 내리는 눈을 맞으며, 발그레한 볼을 한 채 이 장소, 저 장소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풍경은 사탕을 요구하며 마을을 순회하는 핼러윈데이의 풍경만큼이나 정겨웠는데, 그들의 손에는 아이스 와인 잔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다.

다음 날 함께한 프로그램은 ‘와인 간담회’였다. 지난 40여 년간 금융 전문가로 활동하다 아이스 와인과 ‘늦바람’이 나 세계 최초로 아이스 와인과 관련된 책까지 낸 존 슈레이너 John Schreiner는 직접 선택한 9종의 아이스 와인 명작을 놓고 간담회를 진행했다. ‘선생님’ 앞으로 아이스 와인을 사랑하는 ‘빅 팬 Big Fan’ 20여 명이 모여 들었고, 그들은 준비된 아이스 와인을 차례로 마시며 아이스 와인의 아로마와 부케, 산도 등을 음미했다. 아이스 와인을 고리로 ‘선생님과 학생들’은 끊임없이 느낌과 생각을 공유했다. “이 와인에서는 살구 향이 은은하게 감지되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같은 품종이라도 와이너리에 따라 이렇게 맛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 와이너리의 와인 메이커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데 와인을 만드는 기술과 열정이 대단합니다. 최고급 와인을 위해 프랑스 오크 통만을 사용하지요” “이것은 카베르네 프랑으로 만든 아이스와인입니다. 맛을 한 번 음미해 볼까요?”…

간담회를 끝낸 청중들은 일부는 집으로, 일부는 슬로프로 이동했다. 집으로 돌아간 이들의 저녁 식탁에는 오늘 아이스 와인이 놓일 터였고, 슬로프로 간 이들은 오늘 밤 다시 아이스와인 페스티벌에 합류할 것이었다. 스키를 위한 낮과 아이스 와인을 위한 밤이 한 하늘에 걸려있음은 오카나간 아이스 와인 페스티벌의 최고 매력이었다.



1,3 스위트룸의 내부 전경. 오래된 성 城을 개조해 만든 유럽의 호텔과 비슷한 얼굴이다.
2 스위트룸에 있는 과일 바구니. 고흐의 정물화 속 과실만큼이나 농익은 색이 인상적이다.

4
‘친절한 셸리 씨’가 있는 레스토랑에는 10여 개국에서 수입한 와인이 준비되어 있다.
5 호텔 곳곳은 ‘오랜 세월’을 증거하는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만약 한스 안데르센이 이곳에 기거했다면 ‘성냥팔이 소녀’가 환상 속에서 본, 따스한 난로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있으며, 정겨운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따뜻한 풍경’의 무대로 이곳을 생각해냈을지도 모르겠다. 구운 흙냄새가 날 듯한 테라코타 타일의 복도, 오래된 벽돌로 구획된 담과 벽, 응접실 한편에 자리한 벽난로가 어우러져 빚는 풍경은 군불처럼 따스하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꽃은 그렇듯 온기 있는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고가구 위에도, 가죽 소파와 벽난로 옆에도, 레스토랑에도 국화와 선인장, 벤저민 등은 포인트처럼 놓여있다.

눈 대신 마음을 움직이는 이곳의 정식 명함은 우리나라 말로 치면 역사 깊은 여인숙이요, 영어로 이야기하면 유서 깊고 소담한 호텔을 뜻하는 ‘빈티지 인 Vintage Inn’이다. 휘황찬란한 현대의 문명 대신 아련한 과거의 향수와 맞닿아있으니 건물은 오래된 서정으로 가득하다. 고전적 외형의 클래식 피아노, LP만큼이나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목조 시계, 18세기 영국의 풍경을 담은 그림 액자 등은 이곳의 섬세하고 구체적인 얼굴인데 가장 놀랄 만한 세월의 증거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이다. 1973년 6월 28일, 이곳을 방문한 ‘영국의 어머니’를 기념해 찍은 사진. 여왕은 이제 막 결혼 피로연을 끝마친 신부처럼 싱그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부티크 호텔보다 더 눈부신 ‘빈티지 인’의 역사는 약 110여 년 전인 18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아가라 주변에서 수확한 복숭아와 토마토로 통조림을 만들던 공장 ‘팩토리 Factory 13’이 이 호텔의 전신인데, 20년간 숨 가쁘게 움직이던 공장은 세월의 변화와 함께 캐나다에서 훈련받는 폴란드 병사들을 위한 자재 창고로, 바스켓 공장으로, 레스토랑으로, 수공업 공예점으로 기능하다 1972년, 마침내 지금의 호텔로 변모했다. 목적이 다른 변신이었지만 통나무 기둥과 대들보, 벽돌로 지은 담 등 건물의 큰 뼈대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뼈대의 안쪽에 수백 권의 고서가 있는 도서관과 122개의 크고 작은 객실, 스파 시설과 수영장이 들어섰다. 오래된 한옥을 이탤리언 레스토랑으로 개조해도 그 여백의 미와 고아한 질감은 남는 것처럼 호텔은 지난 세월의 역사와 더불어 아늑하고 포근하다.

‘아이스 와인’을 여행의 테마로 할 때 빈티지 호텔은 더욱 빛난다. 유명 양조장을 ‘스타 군단’처럼 거느린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셉션에 신청하면 앞서 다룬 이니스킬린ㆍ잭슨트릭스ㆍ필리테리 와이너리 등 6개의 양조장을 방문하는 와인 투어(2시간 30분~3시간 동안 진행되며 참가비는 55C$)를 경험할 수 있다. 와인을 음미하는 것은 호텔 내에서도 가능하다. 메인 레스토랑에서는 캐나다 온타리오 지역의 와인은 물론이고, 프랑스ㆍ칠레ㆍ이탈리아ㆍ미국ㆍ독일ㆍ뉴질랜드ㆍ헝가리ㆍ스페인ㆍ우루과이ㆍ사우스 아프리카 등 10여 개국의 와인을 서빙한다. 메뉴판에는 이곳의 소믈리에인 셸리의 추천 와인 리스트가 별도로 준비되어 있고 ‘친절한 셸리 씨’는 각 음식과 함께 먹으면 좋을 추천 와인까지 일러 주니 안전 무탈할 와인 시음 또한 즐길 수 있다.

주소 P.O. Box 1180, 155 Byron Street, Niagara-on-the-lake, ontario, Canada
문의 (905)468-1362,
www.vintage-hotels.com



출 처 : DOVE 2007년 3월호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1> 미켈레 끼아를로
피에몬테 스타일 '이탈리아 와인의 전형'
토양·음식과의 궁합 중시… 한 해 28종류 100만병 내외 생산


글ㆍ사진 피에몬테(이탈리아)=박원식기자 parky@hk.co.kr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지역 와인은 프랑스로 치자면 보르도 보다는 부르고뉴 와인에 더 가깝습니다. 블렌딩을 중시하는 보르도 와인과 달리 하나의 품종으로 한 종류의 와인만을 만들고만 있으니까요. 바르베라 품종으로는 바르베라, 네비올로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이런 식이죠.”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 터를 잡고 있는 유명 와이너리 ‘미켈레 끼아를로(Michele Chiarlo)’. 미켈레 끼아를로는 창립자의 이름을 딴 것으로 가야, 안티노리, 비온디 상티와 같은 가족 소유의 프리미엄 와인 브랜드 단체인 그란디 마르키 소속이다. 지금은 오너의 장남인 알베르토 끼아를로가 마케팅과 세일즈, 차남은 빈야드와 와인 메이커 역할을 각각 맡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이어지는 가을 수확철, 포도밭에서 일하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온 알베르토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치며 이 지역 와인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와인은 피에몬테 스타일로부터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포도 재배와 와인 메이킹에서부터 토양을 중시하고 음식과의 궁합을 중시하는 것 모두 피에몬테 사람들의 와인 마시는 습관입니다.”

피에몬테는 이탈리아 북부의 패션도시 밀라노와 토리노 중간쯤에 자리한 지역. 프랑스 국경에 인접해 있으며 알프스와 아펜니노 산맥(Apennines)에도 둘러싸인 이 곳은 토스카나와 함께 이탈리아 최상급의 와인 생산지 중 하나로도 꼽힌다. 피에몬테 또한 ‘산의 발’이라는 뜻. 지역 전체가 언덕 사면들을 따라 포도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모습은 이 곳이 천혜의 와인 산지임을 말해 주기에도 충분하다.

“우리는 고급 와인인 바르베라나 칸누비 경우 포도 작황이 좋지 않을 때는 와인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벌써 지난 15년 간 4번이나 와인을 만들지 않았거든요. 1991년과 92, 94년, 그리고 최근에는 2002년입니다. 빈티지가 나쁠 때는 세컨드 와인으로만 만들거나 커다란 와이너리 도매상(코페라티브)에 대량으로 팔아 버릴 정도로 품질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미켈레 끼아를로 또한 다른 와이너리의 와인을 사거나 다른 밭에서 재배한 포도를 구매하지도 않는다. 이는 블렌딩을 하지 않기 때문. 65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고 60헥타르는 밭을 빌려 추가로 경작중이다. 한 해 생산량은 100만 병 내외. 알베르토는 “모두 28가지 종류의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이 중 16가지는 하나의 밭에서 나온 포도만으로 담근 와인들”이라고 강조한다. 모두 한정판 와인인 셈.

“피에몬테 와인은 ‘푸드 와인’이라 부릅니다. 음식과 함께 먹는, 음식을 위한 와인이란 의미에서죠. 무엇 보다 음식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칩니다.” 알베르토는 “전세계적으로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성공에 힘입어 이탈리아 와인도 함께 붐을 이루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맛에 있어서 피에몬테 와인은 후레시하면서도 적당히 산도(신맛)와 탄닌이 있고 구조감이 뛰어나다는 것이 그의 추가 설명.

1- 알베르토 끼아를로
2- 와이너리 양조장
3- 와인을 발효시키는 오크배럴과 스테인리스 배럴
4- 빈야드의 허수아비
5- 포도밭 언덕

피에몬테 지역에서 재배되는 주요 포도 품종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네비올로와 바르베라, 그리고 모스까또와 코르테제 등. 이 중 네비올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 높은 두 개의 와인인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로 유명한 품종으로 과즙이 풍부하고 달면서도 시큼한 맛을 자랑한다.

또 바르베라는 피에몬테 지역에서 가장 널리 식재되고 있는 레드 와인 포도 품종. 코르테제는 피에몬테 지역의 대표적인 드라이 화이트 와인인 가비를 만들어 내는 품종이고 모스까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위트 와인 ‘모스까또 다스띠’를 만들어 낸다.

“20여년 전부터 수출에 주력한 모스카토는 큰 성공을 거둔 편입니다. 하지만 바롤로나 바르베라 등은 아직 한국인들이 널리 익숙해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꽤나 자리를 잡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아직은 시장이 성장중이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알베르토는 머잖아 한국인들도 네비올로 등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포도 품종 맛을 즐겨 찾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향이 복잡한 듯 풍부하면서도 적당히 자극적이기도 한 바롤로나 바르바르스코의 참 맛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 와인인 ‘가비’의 경우 이미 일본에서 스시와 함께 마시기 좋은 와인으로 벌써 자리매김 돼 있다.

“바르바레스코는 보통 오크 배럴과 병에서 각각 1년, 바롤로는 오크통에서 2년, 병에서 1년여의 숙성을 거치지만 우리가 만드는 바롤로는 병에서도 2년 숙성시킵니다. 더 우아한 향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바롤로나 바르바르스코 와인은 초기에는 맛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깊은 맛을 낸다”고 소개한다.

전통적인 피에몬테식 방식인 대형 오크배럴에서 와인을 발효시키는 것도 집안이 고수하는 방식. 오크통은 와인에 구조감을, 병입된 후에는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준다는 것이 그의 분석. 병입 과정에서는 병 안에 산소가 들어가지 않도록 특별한 유리 밀실에서 작업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과 러시아가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피에몬테 와인이 자리잡은 것은 벌써 10여년 전입니다. 한국도 곧 그리 되겠지요.” “1년에 150일, 절반 가까이 해외 출장을 다닌다”는 그는 한국에서 한국 음식에 맞는 피에몬테 와인을 보여주겠다”고 결의(?)를 표시했다.


브라이다(Braida), 맛있는 와인으로 '바르베라'의 혁명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2)
포도밭 오크통 교체 등 실험으로 신 맛 악명 떨치고 伊대표 와인으로 우뚝

1- 브라이다 와이너리의 빈야드.
2- 후덕한 인상이 매력적인 브라이다 와이너리의 오너인 라파엘라(오른쪽)와 남동생 주세페.
3- 빈야드에서 수확을 앞두고 있는 포도나무.
4- 와인 저장 지하 셀러에 가득한 프렌치 오크배럴들.
5- 브라이다 와이너리를 방문한 독일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방문객들이 와인 테이스팅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테이블 와인인 바르베라(Barbera). 식사 때면 어김없이 올라 오는 친숙한 와인이지만 한 가지 문제라면 ‘너무 시다’는 것.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율배반. 신 맛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음식 없이 와인만 마시기 힘들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이기도 하다. 바르베라 와인의 신 맛이 식욕과 함께 소화를 촉진 시켜주어서다. 실제 바르베라는 전세계 수많은 와인들 중에서도 가장 신 맛이 강한 품종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 바르베라는 ‘맛이 시다’는 ‘악명’을 떨치고 ‘맛있는 와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름하여 ‘바르베라의 혁명’. 그리고 그 반전의 역사에는 와이너리 ‘브라이다’가 버티고 서 있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옆의 피에몬테 지방. 아스티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로체타 타나로(Rocchetta Tanaro) 지역에 와이너리 ‘브라이다’는 자리잡고 있다. 현재 이 와이너리의 오너는 여성 라파엘라 볼로냐(Raffaella Bologna), 선친이자 창업자인 쟈꼬모 볼로냐(Giacomo Bologna)의 딸이다.

“바롤로, 바르바레스코와 함께 이 지역 3대 와인으로 꼽히는 바르베라는 한 때 ‘싸구려’ 와인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서민들이 가볍고 편하게 마시는 와인 정도로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아버지(쟈꼬모)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바르베라 와인도 맛있게 만들 수 있고 세계적인 와인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신거죠.”

하지만 여전히 ‘시고 시큼하기만’ 한 바르베라. 그녀의 선친인 쟈꼬모는 어떻게 하면 바르베라 와인을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방법을 고심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유명 와인 산지인 버건디와 보르도 지방, 미국까지 찾아 다니면서 와인 양조 기술을 배우는데 열중했다.

결국 그가 변화를 위해 시도한 첫 번째 방법은 ‘포도밭의 교체’. 예로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고급 와인에 속하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일명 ‘좋은(기름진) 밭’에서 나는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들었다. 반대로 바르베라는 ‘나쁜(척박한) 땅’에 주로 심어 수확했다.

하지만 쟈꼬모는 여기서 기존의 관습을 뒤엎었다. 바르베라도 좋은 땅에 심어 본 것. 결국 양지 바른 땅으로부터 풍부한 영양 성분을 넘겨 받으며 수확한 바르베라에는 ‘단 맛’이 더해졌다.

그리고 신 맛이 강한 바르베라에게 부족한 것은 탄닌. 레드 와인이 주는 대표적 ‘입맛’이랄 수 있는 떫은 맛을 주는 성분이 모자라서다. 쟈꼬모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프렌치 오크 배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많이 사용하던 ‘덩치 큰’ 슬로베니아 오크통 대신 자그마한 크기의 프랑스산 오크통을 쓰면 와인과 오크 간의 ‘접촉 면’이 넓어지면서 와인 맛에 ‘구조감’을 준다는 확신에서다.

그의 예상과 시도는 그대로 적중했다. 맛이 좋아지면서 바르베라도 이탈리아산 고급 와인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됐다. 처음 ‘동네 사람’들로부터 ‘또 왜 작은 오크통을 쓰냐?’ ‘별나게 혼자만 왜 그러느냐?’며 따돌림을 당하던 것도 자연스레 옛 말이 됐다.

이탈리아 전체와인 생산의 30%에 육박했지만 그저 테이블 와인으로 여겨졌던 바르베라 품종의 혁명에 기여한 쨔꼬모는 이탈리아 전체 와인의 품질 향상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게 된 공헌도를 인정받아 ‘빈이탈리(Vinitaly)가 선정한 ‘최근 30여 년간 와인산업에 가장 영향을 끼친 12개 와이너리’에도 선정되었다.

부녀가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시도한 창의성은 이뿐 만이 아니다. 예전 바르베라의 수확 시기는 보통 9월초. 하지만 이들은 10월 초로 수확 시기를 한달 여 더 늦췄다. 결과는 포도가 농익으면서 신 맛이 줄고 단 맛이 강화된 것. 숙성과 발효 과정에서 와인의 맛이 한층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다.

6- 브라이다에서 와인 메이킹 실습을 하고 있는 일본인 연수생
7- 포도밭에서 갓 따온 포도를 짜내기 위한 현대식 시설.
8- 브라이다 와이너리 안마당에서 가족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쟈꼬모와 라파엘라 부녀가 무려 25년 여에 걸쳐 실험한 바르베라 와인의 결정판은 ‘아이수마’다. 포도를 1년에 한 번 수확하다 보니 1년에 한 번씩 조금씩 변화와 개혁을 해 보며 완성해 낸 바로 최고의 와인. 가장 좋은 포도밭 중에서도 가장 좋은 위치에서 재배한 포도 중 최우량의 것들만을 모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나온 산물이다.

이탈리아어로 감탄사인 ‘아이수마’란 단어 또한 ‘바로 이거야!’ ‘이 포도가 진짜다!’ ‘우리가 해냈다’ 는 뜻을 함축한다. 때문에 1990년에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이수마는 지금도 포도 작황과 상태가 좋은 해(빈티지)에만 생산되는 전통을 고수한다.

이처럼 바르베라 와인 성공 신화의 1등 공신인 쟈꼬모가 ‘창조와 개혁’의 대명사로 불릴 만한 또 다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닌 그녀의 딸이 와인 메이커이자 와이너리 오너라는 사실이다.

이 지역에선 예전 여자가 와이너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무척 싫어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쟈꼬모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딸 라파엘라를 양조 학교에 입학시키는 강수를 감행했다. 그것도 직접 딸 손을 잡고 학교까지 찾아 가서. 미국 유학에서 돌아 온 라파엘라는 양조장으로 직접 들어가 아버지로부터 ‘바르베라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해 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바르베라의 명성과 함께 브라이다 와이너리가 더 유명해진 데는 딸 라파엘라의 기여(?)도 한 몫 더했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모든 노하우를 주변 친구들에게 거침없이 전수했기 때문. 이 사실만으로도 이탈리아 와인업계에서 엄청난 유명 인사가 돼버렸다.

덕분에 이 와이너리의 오너인 라파엘라는 주변지역 뿐 아니라 이탈리아 와인메이커들 사이에서는 인맥의 중심이라고 불리워진다. 웬만한 와이너리 오너와 통화하려면 그녀에게 얘기하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할 정도. 유쾌하고도 호방한 웃음, 무엇 보다 화통하고도 워낙 좋은 성품과 대접하기 좋아하는 가풍은 외국인들 눈에도 매력적이기만 하다.

아버지 못지 않게 딸 라파엘라의 창의적인 시도들도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커다란 관심거리다. 그녀가 만든 화이트 와인인 ‘일 피오레’. 이탈리아어로 꽃이란 뜻인데 원래 샤도네이에 리즐링 포도 품종을 같이 블렌딩했다.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하던 새로운 시도를 왜 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샤도네이가 너무 오랫동안 외로워서”라고 낭만적인 대답을 한다.

참고로 그녀의 남편 노베르트는 오스트리아 사람. 그녀는 ‘오스트리아산 포도와 결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녀가 만드는 와인 ’바치알레’도 창의성과 총기가 돋보인다. 바롤로와 피노노아 품종을 처음으로 블렌딩한 것인데 당시 누구도 생각못했던 시도였다. 그래서 ‘중매쟁이’를 뜻하는 바치알레란 단어도 그녀가 지은 와인 이름이다.

지난 해 이탈리아 음식 전문지인 감비로로쏘와 에스프레쏘에서 최고등급인 3glass를 받은 ‘비꼬따’ 또한 그녀가 추천하는 와인.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여자를 뜻하는 이름이 재미있다. 포도밭의 땅 색깔을 드러내듯 갈색과 황금색이 어우러진 듯한 와인 몬테브루나 또한 그녀가 6년전 처음으로 만든 창조적 와인이다.

유명세 때문에서라도 그녀의 와이너리에는 항상 손님들로 넘쳐난다. 1년 한 해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방문객만 평균 3,000여명. 빈야드(포도밭)와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와인 테이스팅과 강의를 듣는 것이 기본 코스. 유럽 방문객들을 위해서는 그녀의 시동생인 스테판 라이니셋이 강사로 나선다. 독일어는 물론, 스위스어, 불어도 거뜬히 소화해 낼 정도.

브라이다 와이너리에는 일본인 유학생도 3명이나 머무르고 있다. 와이너리에서 와인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한 공식 연수 과정을 밟으러 온 학생들. 포도 재배, 수확에서부터 양조 등 전과정을 현지에서 배우는 경험 과정이라 지원자도 넘쳐난다.

“와인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입니다. 어느 와인이든지 와인 메이커가 어떤 밭에서 어떻게 어떤 생각으로, 또 얼마만한 정성으로 만드는지를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철학과 이상, 지향하는 바가 와인 속에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는 너그럽기만 한 그녀는 자신의 임무(와인 메이킹)에는 한 없이 철두철미하기만 하다.

이 회사의 대표와인들인 Bricco dell' Uccellone, Bricco della Bigotta, Ai Suma등 최고의 바르베라들은 국내에서는 서울 신사동의 와인숍 아이수마(02-545-4283), 갤러리아 백화점 에노테카 등에서 전문적으로 만날 수 있다.

출 처 : 주간 한국


와인의 고향_ 보르도 여행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지역인 보르도의 향기
 
 
Bordeaux
 
프랑스 보르도는 와인의 본고장이다. 세계 와인의 2.5%를 생산한다. 포도밭 넓이는 세계의 1.5%인 데 비하면 꽤 많다. 양이 많은 것만으로 본고장이라 하는 건 낯간지러운 얘기다. 보르도 와인은 양보다 전통과 품질을 자랑한다. 세계의 애호가들이 보르도 출신을 여전히 와인 족보의 중심에 올리는 이유가 품질, 바로 맛 때문이다. 메도크, 오 메도크, 포이약, 마르고, 그라브, 소테른, 바르삭, 앙트르 되 메르, 생테밀리옹, 포므롤…. 이름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는 동네들 아닌가.
 
 
 

석회암반 언덕 위의 중세도시 생테밀리옹. 높다란 종탑이 도시의 중심이다. 왼편 언덕엔 생테밀리옹에서 둘뿐인 그랑 크뤼 특A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오존이 보인다

 


그래도 보르도에 가서 와인만 찾아다니면 절반의 여행이 되고 만다. 나머지 반은 올드 보르도와 생테밀리옹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채워진다. 9세기에 착공한 석굴 교회,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중세 마을과 옛 골목을 누비는 자동차들, 200~300년 전 와인 네고시앙의 아파트와 와인 창고…. 1000년 세월이 현재와 함께 호흡하며 거기 살아 있다. 유적이 밀집한 생테밀리옹과 보르도는 1999년과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각각 등재됐다.걷다 날이 저물어 쉬고 싶으면 17세기에 지은 샤토(성)로 가 만찬을 즐기고 400년 전 영국풍을 간직한 방에서 하룻밤 묵어 보자. 여행 120% 만끽 코스다.
 
 

올드 보르도의 옛 금융가 앞에 조성한 ‘물의 거울’이 빚어내는 비경이 발걸음을 잡는다. 창의적 상상력의 힘이 전율처럼 느껴지는 현장이다



올드 보르도:고색창연한 골목길 따라 한나절 산책

프랑스에서 여섯째로 큰 도시 보르도는 아퀴텐 레지옹 지롱드 데파르망의 수도다(레지옹·데파르망은 지방행정 단위). 시내 인구가 23만 명 남짓이지만 17~20세기 초 프랑스 대표 무역항이었다. 식민지 교역과 와인 수출로 호황을 누렸던 덕에 시내는 육중한 석회암을 쌓아 올린 석조전이 즐비하다. 보르도는 지금도 와인의 대명사이고 지롱드를 대신하는 지명이다.

북위 45도 근방인 이곳은 여름 해의 꼬리가 길어 오후 10시쯤 땅거미가 진다. 살구색이 바랜 듯한 석회암 건물 벽이 석양을 머금으면 도시는 술 맛을 자극하는 홍조로 채워진다. 그래서인지 8시는 돼야 문을 여는 레스토랑에선 누구나 식전주(食前酒·아페르티보)로 길고 긴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200여 년 전 와인까지 비장하고 있는 샤토 루덴의 셀러. 병 위로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4 17세기에 지어진 샤토 루덴의 침실은 설립자의 고향인 영국풍이다. 지금은 호텔로 개방하고 있다 5 중앙광장에서 굽어본 생테밀리옹 마을의 집들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의 그루터기인 양 황토색 기와지붕을 이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보르도 구도심은 도시 북쪽을 감싸고 흐르는 가론강 수변을 따라 4.5㎞에 걸쳐 집중돼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 150㏊ 지역이 ‘올드 보르도’다. 강변 핵심 지구는 75년 항구가 강 맞은편으로 옮겨간 뒤에도 20년간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일종의 보세구역이었다. 기능을 잃은 항구에 사람 출입까지 뜸해 늘어선 석조전에는 화려했던 영화 대신 세월의 더께만 쌓였다.
 
 




침체를 털어낸 이는 알랭 쥐페 시장이다. 95년 시장에 당선되자 반대를 물리치고 보세구역 철망을 걷어냈다. 하역장과 시설물을 철거하고 폭 100m 강변 부지에 도로를 내고 산책로와 꽃밭이 들어선 시민공원을 꾸몄다. 노면전철이 다니는 철길을 내고, 중간 중간 관광안내소도 설치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망루 요새 겸 성문으로 올드 보르도를 지켜온 ‘포르트 카이유’도 몸통만 남기고 양 날개 성을 헐어 차가 다니도록 길을 냈다. 주인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얻어 옛 건축물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관광자원으로 개방하자 18세기 유럽의 거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찬사와 함께 세계의 관광객이 모였다.

백미는 상공회의소 광장 길 건너에 만든 평면분수 ‘물의 거울’이다. 커다란 풀장 넓이로 길보다 높게 단을 쌓고 판석을 깔아 조성한 분수는 물을 높이 뿜어 올리지 않는다. 물이 판석 틈으로 몽글몽글 샘솟아 바닥에 퍼지거나 때로 짙은 안개를 피어 올린다. 물기가 바닥에 번지면 길 건너 올드 보르도의 웅장한 석조전이 판박이처럼 수면에 내려와 박힌다. 아이들은 그 광경에 환호하며 뛰어들고 누워 뒹굴고, 덩달아 신이 난 어른들과 개들도 뒤엉켜 뛰어다닌다. 물의 거울 속에서도 그렇게 뛰논다.
 


2007년 보르도를 찾은 관광객은 250만 명, 절반이 외국인이다. 관광수입은 1억 유로(약 1700억원)로, 와인 다음으로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프랑스 총리를 역임한 뒤 보르도 시장에 당선된 쥐페는 2006년 재선돼 14년째 연임 중이다.

올드 보르도의 골목길은 200~300년 전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질 듯 고색창연하다. 기웃기웃 걷다 보면 노천카페가 늘어선 길도 있고 명품거리도 있다. 옛 교회당도 있고 이름만 같은 노트르담 성당도 있다. 3시간이면 중요한 곳은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걷기 힘들면 보르도 중앙광장으로 가면 된다. 보르도 여행은 여기가 원점이다. 모든 대중교통이 출발하고 다시 모인다. 광장 한편에 보르도 관광청과 와인협회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관광청에 가면 모든 여행정보와 편의를 얻을 수 있다. 무개버스나 자전거를 이용한 시내관광부터 와인과 관련한 모든 패키지 상품을 안내받고 예약할 수 있다.

생테밀리옹:오밀조밀 마을 사이 들어선 포도밭 풍경

도르도뉴 계곡을 내려다보며 석회암 지대 언덕에 자리한 생테밀리옹은 1300년 고도다. 말만 1300년 고도가 아니다. 1000년 넘은 건축물이 지금도 현역이다. 와인으로도 보르도에서는 메도크와 쌍벽을 이룬다. 석회암이 녹아든 토양은 생테밀리옹 포도를 키우고, 그 포도가 메도크의 자갈 토양에서 자란 것과는 다른 독특한 맛의 와인으로 익는다. 오존, 슈발 블랑, 피작, 페트뤼스, 르팽 같은 명작이 이 땅의 산물이다.

여기 석회암이 세계문화유산 두 곳을 만들었다. 올드 보르도를 장악한 석조전의 80%는 생테밀리옹 석회암으로 지었다고 한다. 생테밀리옹의 상징인 수십㎞의 지하 동굴과 석회암반에 굴을 파고 만든 모놀리스(단일 석재) 교회(9~12세기), 동굴교회 위에 세운 133m 높이의 아득한 종탑(12~15세기)도 석회암이 만든 유적이다. 종탑의 석회암 기단부는 오랜 세월 빗물에 녹아 진흙을 손가락으로 문지른 듯 푹푹 파여 있다.

보르도에서 서북쪽으로 35㎞ 떨어진 생테밀리옹은 우리나라 읍보다 작은 아담한 마을이다. 8세기에 수도사 에밀리옹이 오면서 마을의 역사는 시작됐다. 767년 눈먼 여인에게 광명을 찾아주는 기적을 행했다는 수도사는 죽어 성인으로 추앙되고, 그를 기려 마을 이름을 생테밀리옹이라 했다. 12~15세기에 걸쳐 많은 건축물이 지어졌고 오늘날까지 그 골격이 유지되고 있다.
 


중심지는 걸어서 돌아도 1시간이면 넉넉하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던 일곱 개의 성문과 마을 지하에 거미줄처럼 얽힌 동굴까지 다 살펴보려면 한나절은 걸린다. 처음 눈길을 잡는 풍경은 종탑 아래 마을 중앙광장 담에 서서 굽어보는 포도밭 평원이다. 생테밀리옹 마을에 뿌리를 두고 끝없이 물결치는 푸른 구릉은 사람의 눈길이 따라갈 수 없는 곳까지 달려가 하늘에 이른다. 수백 년 세월을 견딘 주택들은 연한 황토색 석회석 벽에 붉은 기와를 얹고 언덕을 따라 오르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골목길들은 경사가 심하고, 세월에 닳은 길바닥 돌은 맨발로 걷고 싶은 유혹을 자꾸 일깨운다. 외적이 침입하면 숨으려고 만든 지하 동굴은 현재 와인 저장고와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다. 온도가 연중 14~15도로 일정하기 때문에 ‘작품’ 저장에 안성맞춤이다. 관광안내 책자를 보니 재미있는 주의사항이 있다. 길이 미끄러우니 하이힐은 피하고 여름에도 여벌의 스웨터를 준비하라는 것. 너비 2m 또는 무게가 6t이 넘는 차량은 마을에 진입할 수 없다는 안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곳 여행도 중앙광장 한편에 있는 관광청사무소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여행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가 다 모여 있다. 자전거를 빌려주고 각종 여행상품도 준비하고 있다. 포도밭 순환 꼬마열차(35분 5.5유로), 가이드와 걸어서 포도밭 돌기(2시간 10유로)를 추천한다. 여기는 메도크에 비해 규모가 작은 샤토들이 밀집해 있어 풍경은 오밀조밀 정겹고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수확기의 보르도를 찾아가다
2008 Harvest time in BORDEAUX

보르도는 전세계의 와인 생산지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지역이자 샤또 마고, 샤또 무통 로칠드 등 유명 샤또들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와인산지다. 
이런 의미와 함께 보르도 와인은 강한 타닌과 단단한 구조감, 풀바디로 인하여 와인의 왕에 비유되곤 한다. 보르도, 그 강인한 떼루아가 담겨 있는 와인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주류저널이 보르도를 찾았다. 2008년 메독, 쌩떼밀리옹, 쏘테른 등 보르도 유명 산지들의 수확기 흙냄새와 포도향기를 전한다.
글 나보영 기자 / 사진 뷰티풀 씬 엄지민 팀장
취재협조 보르도와인협회(CIVB), 소펙사(SOPEXA,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


About Bordeaux Wine
보르도 와인의 이해
보르도, 연간 600만 헥토리터의 와인 생산, 세계 와인 생산량의 2.5%차지
보르도는 연간 600만 헥토리터(1 hℓ = 100ℓ) 즉, 약 8억 5천만 병의 와인을 생산하여 세계 와인 생산량의 2.5% 차지하고  있다. 이중 67%가 프랑스 내에서 소비되고 33%가 국외로 수출되는데 수출량 중 63%가  유럽연합국가들로 수출되고 나머지 37%는 그 외 국가들로 수출된다. 한국은 보르도 와인 수출국 중 12위를 차지한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 보르도 와인의 질 향상을 위해 A.O.C 와인의 생산을 2000ha(1ha = 약 3024.99평)까지로 제한하여 생산량을 줄여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는 물량으로 38,456 헥토리터, 금액으로 28,866천만 유로의 보르도 와인이 수입되어 2006년 이후 물량과 금액 면에서 성장세를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8년과 비슷한 2008년 빈티지, 그리고 달라지는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 등급
보르도와인협회는 수확을 앞두고 2008년 빈티지는 평균 기온, 일조량, 강우량 등의 기후에 따른 페놀 성분 생성 단계, 수확 시기, 예상 수확량에 있어 1988년과 유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수확 시기는 예년에 비해 조금 늦은 편이며 수확량은 밀디유(노균병)와 우박, 서리 등으로 인해 550만 헥토리터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2003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결정한 크뤼 부르주아 등급이 2008년 2월 폐지됨에 따라 이 등급의 와인을 생산하던 샤또들은 협회차원에서 별도의 등급을 부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2007년 빈티지의 병입을 위해 와인의 질을 확인하고 있다.


Best of The St Emilion wine
쌩떼밀리옹, 그곳의 최고 샤또들
국내에서 애호가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쌩떼밀리옹은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전세계 여행자들에게도 사랑 받고 있다. 아름다운 쌩떼밀리옹에서는 최고의 샤또들을 방문했는데 프르미에르 그랑 크뤼 클라세에 속하는 ‘샤또 슈발 블랑(Cha?eau  Cheval Blanc)’ 과 ‘샤또 라 갸플리에르(Cha?eau La Gaffelie``re)’다.
쌩떼밀리옹의 와인 등급은 프르미에르 그랑 크뤼 클라세, 그랑 크뤼 클라세, 그랑 크뤼로 분류되는데 흔히, 그랑 크뤼를 메독의 그랑크뤼 클라세와 혼동하기도 하지만 쌩떼밀리옹의 그랑크뤼는 일반 쌩떼밀리옹 와인보다 알코올 농도가 0.5% 높고 수확량이 적을 뿐 보통의 쌩떼밀리옹 와인과 큰 차이는 없다.

샤또 슈발 블랑(Cha?eau Cheval Blanc)


당당한 기풍이 느껴지는 백마 그림이 상징적인 샤또 슈발 블랑은 쌩떼밀리옹의 프르미에르 그랑 크뤼 클라세 샤또 중에서도 샤또 오존느와 함께 특별하게 인정받는 곳으로, 다른 프르미에르 그랑 크뤼 클라세 와인들이 메독 그랑크뤼 클라세의 2~5등급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 두 곳의 와인은 1등급과 같은 수준을 자랑한다.
와인 메이킹에 있어 가장 중요한 떼루아의 특성은 밭에서 결정된다. 이곳은 밭을 질에 따라 40개로 세분화하여 전부 개별적으로 양조하고. 이에 따라 등급별 와인을 만든다. 물론, 퍼스트 와인 샤또 슈발 블랑은 최고의 밭에서 나온 포도로만 양조한다.

샤또 라 갸플리에르(Cha?eau La Gaffelie`re)


오랜 샤또의 역사는 항상 우리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곤 한다. 샤또 라 갸플리에르는 생떼밀리옹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원으로 1520년부터 이 샤또의 가족이 이 곳에 정착했다. 포도를 심으려고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포도 수확 그림이 그려진 로마 시대 유물이 발견되어 3~4세기 경부터 인류가 포도를 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22헥타아르의 포도밭에서 연간 6만병의 퍼스트 와인 ‘샤또 라 갸플리에르’와 2만 병의 세컨 와인 ‘끌로 라 갸플리에르’를 생산하고 품종은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 그리고 일부 까베르네 소비뇽이 차지한다.
국내에는 길진인터내셔날이 공급하고 있다.


Bonjour Me첾oc, Enchante Me첾ocaines
세계최고의 레드와인 생산지, 메독

보르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와인 산지이자 세계 최대의 레드와인 산지인 메독에서는 네 명의 샤또 여주인들이 결성한 메도껜(Me첾ocaines,
www.lesMedocaines.com)이라는 단체를 접하게 되었는데 힘, 지성,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들은 공동의 마케팅과 홍보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 함으로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어서 생산자들 간의 협력이 큰 힘을 발휘하는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샤또 빨루메(Cha?eau Paloumey)


샤또 빨루메에서는 직접 포도 수확에 참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9월 28일부터 수확을 시작한 이곳에 바로 다음 날인 29일 도착한 일행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가위를 하나씩 들고 포도송이를 땄다. 상태가 좋은 포도만을 골라 수확하고 소팅 테이블(나뭇 가지 등 이물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기계)에 서서 이물질을 골라냈다. 이후에 분쇄기를 거쳐 양조탱크에서 1주일간 알코올 발효된 와인은 2주간 *마세라시옹을 거쳐 겨울까지 젖산 발효된 뒤 12개월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32헥타아르에서 10만병의 와인을 생산하여 60%가 수출되는 샤또 빨루메의 와인은 국내에서는 금양인터내셔날과 레뱅드 매일이 공급하고 있다.
*마세라시옹(maceration): 레드와인 양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껍질 채 양조탱크에 담겨있는 기간을 말하며 ‘추출’ 또는 ‘침용’이라 한다. 메이커마다 색과 맛을 보면서 이 기간을 결정한다.

샤또 라 뚜르 드 베쌍(Cha?eau La Tour de Bessan)


샤또 라 뚜르 드 베쌍에서는 양조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과즙이 와인이 되기까지 단계별로 맛을 보며 당분이 알코올이 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샤또 라 뚜르 드 베쌍 관계자는 “올해의 포도 상태로 보아 와인의 산도와 타닌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기후 등을 보면 1988년 빈티지와 비슷할 것 같으며 양조기술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더 좋은 빈티지가 될 것이다”고 전했다.
샤또 빨루메(Cha?eau Paloumey)
샤또 빨루메에서는 직접 포도 수확에 참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9월 28일부터 수확을 시작한 이곳에 바로 다음 날인 29일 도착한 일행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가위를 하나씩 들고 포도송이를 땄다. 상태가 좋은 포도만을 골라 수확하고 소팅 테이블(나뭇 가지 등 이물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기계)에 서서 이물질을 골라냈다. 이후에 분쇄기를 거쳐 양조탱크에서 1주일간 알코올 발효된 와인은 2주간 *마세라시옹을 거쳐 겨울까지 젖산 발효된 뒤 12개월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32헥타아르에서 10만병의 와인을 생산하여 60%가 수출되는 샤또 빨루메의 와인은 국내에서는 금양인터내셔날과 레뱅드 매일이 공급하고 있다.
*마세라시옹(maceration): 레드와인 양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껍질 채 양조탱크에 담겨있는 기간을 말하며 ‘추출’ 또는 ‘침용’이라 한다. 메이커마다 색과 맛을 보면서 이 기간을 결정한다.


Most famous sweet wine, Sauternes
소테른, 스위트 와인의 명산지


19세기 초 소테른에서는 포도에서 ‘보트리티스’라는 곰팡이를 발견한다. 일반적인 수확기가 지나 포도 껍질에 곰팡이가 끼고 수분이 증발하면 건포도처럼 당분이 농축되고 이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꿀처럼 달콤하며 아름다운 황금빛을 띄는 소테른의 스위트 와인이 된다.
보르도는 4,040헥타아르의 땅에서 연간 110,000헥토리터 즉, 150만병의 스위트 와인을 생산하며, 소테른은 약 2000헥타아르의 포도밭에서 연간 40~50만 상자의 소테른 와인을 생산한다.
소테른에서는 바르삭·소테른 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장 크리스토프 바르브가 대표인 ‘샤또 라빌(Cha?eau Laville)’과 특등급인 ‘샤또 뒤껨(Cha?eau d’Yquem)’, 1등급인 ‘샤또 라포리 뻬라게(Cha?eau Lafaurie-Peyraguey)’를 돌아보았다.



이번 보르도 수확기 취재와 함께, 보르도 지역과 그 와인을 좀 더 이해하고자 알랭 비로노 보르도와인협회 회장을 만나봤다. 또한, 보르도를 여행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함께 소개한다.

mini interview
알랭 비로노 보르도와인협회 회장


Q. 보르도와인협회는 보르도 닷컴 사이트 운영, 프로모션 진행, 한국 교육기관과 파트너쉽 강좌 진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신데요 향후 계획하고 계신 다른 프로그램이나 활동이 있나요?
우선, 와인업계 대상 보르도 와인 교육 과정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총 6회 과정으로 이를 이수하고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보르도와인협회에서 발행하는 보르도와인전문인 디플로마를 부여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지방에 있는 와인애호가들에게 보르도와인을 소개하기 위하여 그 동안 서울에서만 진행되었던 ‘보르도 셀렉션 100 시음회’를 부산에서도 진행하려고 합니다.

Q. 프랑스의 여러 지역 및 전세계 국가의 와인들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르도 와인을 홍보하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전략을 펼칠 계획이신지 알고 싶습니다.
부담 없는 가격대의 품질 좋은 보르도 와인을 알리는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보르도 와인 하면 그랑 크뤼를 먼저 떠올리는데 전체 보르도 생산량 중 그랑크뤼의 생산량은 2%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98%의 보르도 와인을 한국소비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보르도 셀렉션 100, 마트 판촉, 와인 교육 등의 행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보르도 관련 사이트
1.보르도닷컴
www.bordeaux.com
보르도와인협회의 공식사이트로 한국어를 포함한 7개국어로 서비스 된다. 보르도 와인의 떼루아르, 품종, 양조, 아벨라시옹, 역사, 와인 관광, 음식 매칭 등 많은 정보가 실려있다.

2.보르도 여행자 사무소 www.bordeaux-tourisme.com
보르도 여행자 사무소의 웹페이지. 영문으로 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보르도 산지들을 여행하는 ‘Tours of wine country’, 보르도 와인 스쿨이 와인 애호가들을 위해 준비한 두 시간 동안의 테이스팅 프로그램 ‘Introduction to wine tasting in the city center’ 등 다양한 보르도 여행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보르도 여행 프로그램
1. 메도껜 빈티지 워크숍 (Les Me첾ocaines Vintage Workshop)
메독의 네 명의 와인 생산자 모임 메도껜이 주최하는 행사. 가을 보르도 수확기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www.bordeaux-tourisme.com/ www.lesMedocaines.com

2. 시티 센터에서의 시음회 (Introduction to wine tasting in the city center)
보르도 와인 스쿨에서 제공하는 와인 애호가를 위한 두 시간의 테이스팅 코스.
www.bordeaux-tourisme.com

3. 와인 산지 여행 (Tour of the wine country)
보르도 여행자 사무소에서 여행자들이 각기 다른 보르도 산지들을 여행할 수 있도록 구성한 프로그램.
www.bordeaux-tourisme.com

4. 와인 네고시앙 박물관 (Muse첿 du Vin et du ne쳁oce)
‘Muse첿 du Vin et du ne쳁oce’은 보르도시에 와인 박물관이 없어서 건립이 필요하다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의견에 따라 Cha?eau Beauval(샤또 보발)이 지난 6월 말 개관한 사설 박물관으로 보르도 와인의 역사, 와인 병과 라벨의 변천사, 양조 기계의 변화 등을 볼 수 있다. 관람료는 7유로(10인 이상 단체 5유로)이며 두 개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www.mvnb.fr



[TOUR WORLD] 호주의 오지를 만나다

노던 테리토리 & 남호주
지금까지 알고 있던 호주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호주를 만나보고 싶다면 호주의 중앙 평원에 위치한 노던 테리토리나 남호주로 눈을 돌려보자.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호주의 오지가 펼쳐지니 변화무쌍한 자연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가 되기 때문이다.

◆ 세상의 중심 `울룰루`가 있는 노던 테리토리

= 노던 테리토리는 호주인들에게도 매우 특별한 곳이자 색다른 지역을 찾아다니는 여행객들에게는 `필수 여행지`로 통한다. 이곳의 중심인 다윈은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60개국 70여 개 이상의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묘한 설렘과 긴장감이 곳곳에 스며 있다.

노던 테리토리의 가장 대표적인 여행지 `울룰루(Uluru)`. 애보리진(호주 원주민)들의 오래된 성지인 울룰루는 붉은 흙이 깔린 넓은 평원에 홀연히 서 있는 세계 최대 단일 암석(높이 348m, 둘레 9.4㎞)으로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 쓴 듯 전체가 벌겋게 보이는 울룰루의 모습은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벅찬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울룰루는 또 다른 바위산인 카타 추타(Kata Tjuta)와 함께 울룰루 카타 추타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울룰루와 카타 추타 트레킹, 아웃백 열기구타기, 낙타 투어 등 다양한 아웃백 체험도 가능하지만 198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일부지역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할 정도로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울룰루를 테마로 한 투어 외에도 아웃백 한가운데 위치한 최고급 리조트에서 숙박할 수 있는 프로그램 때문에 특별한 허니문을 위해 찾아온 커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휴양지 리조트에서 벗어나 대자연에서 만나는 색다른 경험은 새로운 인생의 기분좋은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해가 질 무렵 아웃백 한가운데서 맞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고품격 디너 프로그램)`는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된다.

◆ 남호주에서 맛보는 특별한 와인세계

=

앨리스 스프링스를 지나 아래로 좀 더 내려가면 호주 최대 와인 생산지 `바로사 밸리`가 있는 남호주로 연결된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제이콥스 크릭(Jacob`s Creek)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와인 애호가라면 바로사 밸리에 있는 수많은 와이너리를 둘러볼 수 있는 와인 투어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미리 예약하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와인 만드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고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곁들인 다양한 와인을 시음해보는 것은 물론 직접 와인을 제조해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코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와인이 남호주의 전부는 아니다. 남호주의 주도인 애들레이드는 시드니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축제들이 끊이지 않고 열릴 정도로 호주에서도 손꼽히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애들레이드를 조금만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면 미국 그랜드 캐년에 비견될 만한 절경으로 유명한 플린더스 산맥, 세계적인 생태낙원으로 이름이 높은 캥거루섬 등 다양한 명소들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정보=호주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 (02)399-6502

www.australia.com

노던 테리토리 주관광청 kr.travelnt.com

남호주 주관광청 www.southaustralia.com/kr

■ 이것만은 알고 떠나요

△가는 길=현재 호주 노던 테리토리나 남호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을 경유하거나 직항편을 이용해 시드니까지 가서 콴타스 또는 제트스타 국내선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서 인천~시드니 구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시드니까지 비행시간은 약 10시간 소요.

△여행상품 문의=내일여행사(02-6262-5959), 넥스투어(02-2222-6600), 레드캡투어(02-2000-4500), 모두투어(1544-5252), 블루여행사(02-516-0552), 이오스여행사(02-546-7532), 자유투어(02-3455-0002), 참좋은여행사(02-2188-4060), 하나투어(1577-1233), 휘데스 트래블(02-755-5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