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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캄보디아 추천 여행지

봄이나라 2008. 3. 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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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시내 지도

 

 
 
호치민시는 남베트남에 있으며, 대륙으로 3km들어간 곳에 위치한다. 시의 북쪽으로는 티네(Thi Nghe)운하, 동쪽으로는 사이공 강, 남쪽으로는 벵에(Ben Nghe)운하로 둘러싸여 물에 의해 3면이 보호되는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시의 서쪽으로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시는 해발 10m의 해발고도에 자리잡고 있다. 인구는 이나라의 수도인 하노이의 인구보다 훨씬 많은 베트남 최대의 도시다. 그 만큼 인구집중률이 높고, 개방화 이후 베트남의 경제적인 중심지로 발전함으로써 이곳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어느 곳이 베트남의 수도인지 어리둥절하게 된다.
 
 
 
옛 총독부 건물인 이곳은 1868년 프랑스에 의해 세워졌으며, 당시
에는 노로돔궁 (NORDOM PALACE)이라 불렀다. 현재는 박물관으
로 사용하고 있는데, 1975년 4월 30일에 베트남 공화국 정부가 항
복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1962년에 공산주의자의 폭격
을 받았으나, 6년 후인 1968년에 당시의 유명한 건축가인 "고비엣
투"의 설계로 재 건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코이 거리 북쪽으로 막다른 길에 중앙 우체국과 나란히 서있는
노틀담 성당은 19세기 프랑스 통치 시대의 건축물로 호치민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신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빛 바랜 적색벽돌물 끝
으로 두개의 첨탑이 나란히 뻗어 있다. 빼어난 건축미로 시민은 물
론이고 여행자들의 사진 찍기 1위 명소로 꼽힌다. 하루에 2회 일반
인의 출입이 허용될뿐 방문객 관람용으로 개방되어 있지는 않다.
 
프랑스 통치시대 때 사용하던 단두대를 비롯하여 베트남전에 사용
되었던 각종 전적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내부 전시실에는 베트남
전 당시 미군의 잔학상을 고발한 수 많은 화보들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이 박물관은 최근 들어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커다란 문제가 되
고 있는 고엽제의 피해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데에서 관광
객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역사박물관(Bao Tang Lich Su)은 월남의 패망전까지는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던 곳인데 사이공
함락후 박물관 기능이 정지되었다가 1979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개관하였다. 내부는 역사관
과 민족관 두 부분으로 나뉘어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발전을 보여주는데, 유물은 총 5천여점 가량
된다.
 
 
핑크빛이 아름다운 호치민 박물관(Bao Tang Ho Chi Minh)은 원래 1863년에 프랑스 총독부의
영빈관으로 설립되었다가 이후 해운회사와 세관건물(일명 드레곤하우스)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1911년, 호치민은 이곳에서 조국의 자주독립의 꿈을 안고 프랑스 배에 승선하였는데, 그일을
기념해 현재 호치민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에는 호치민의 유품과 옷, 샌들, 라디오, 혁명
관련 메모가 전시되어 있다. 2층에서 보이는 사이공 강의 전망이 훌륭하다.
 
촐롱은 호치민의 차이나타운으로 그 역사가 무척 깊다. 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인 1864년에 중국의
상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베트남어와 한자를 섞어 쓴 간판들이 아주
인상적인 이곳은 동남아시아 경제적 영향력은 매우 크다
 
 
사이공뿐 아니라 경제와 유행과 음식문화등 모든것을 체험할 수 있는 대형 시장이다.
레로이 거리와 함기 거리등 시내의 중도로가 사통팔달에서 접하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시장
한가운데 국과 밥집이 물려있는데, 저잣거리답게 무척 맛있고 신선하고 따끈하다. 시장입구에서
뉴 월드 호텔쪽으로 향하는 길에 오렌지와 과일, 꽃가게들이 일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오후엔 각종
군것질 수레가 밀집된다. 저녁이면 각종 과일과 꽃과 빵을 싸게 살수 있는 알뜰 시장이다.
 
 
프랑스 통치시대인 1886년~1891년에 설립된 중앙우체국이 자리하
고 있다. 정문 입구 상부에는 큼지막한 시계가 시간을 알리고 있다.
우편업무 뿐만 아니라 국제전화, 팩스, 전보, 텔렉스가 가능하고
공중전화 카드나 시내 지도도 구입할 수 있다.
 
응우엔후에(Nguyen Hue)대로 서쪽 끝부분, 레로이 대로가 시작되는 곳에 호치민시의 상징 건물
이라 할수 있는 인민위원회 청사가 자리한다. 구 사이공의 시청이었던 곳으로 건물 정면의 장식
이 훌륭하고 크리스탈 상인들에를 가진 내부의 인테리어도 귀족적이며, 방과 창문도 모두 전형적
인 프랑스식이다. 건물 앞에는 호치민이 아이를 안고 있는 커다란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사이공 강변의 사이공 Saigon, 벵에에 Ben Nghe, 미칸 My Canh, 168 유람선 선착장은 어둠이
내릴쯤이면 색색의 오색등이 켜지면서 화려한 변신을 한다. 유람선에 승선하면서 식사를 하며 공
연을 즐기게 된다. 대개 1층에서는 대중가요, 2층에서는 전통악기 공연을 하는데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한국 노래도 가끔 들려준다. 강 건너로는 네온사인이 휘황한 골드스타와 필립스의 대
형광고판이 보이고 유람선 밖으로는 컨테이너 선박이 지나간다.
 
 
 
호치민시에서 북동쪽으로 200km 국도 1호선이 처음으로 바다와 만나는 곳이 판티엣이다. 이곳은 후코크 섬과 더불어 늑맘(베트남 전통소스)의 본고장이면서 베트남 남부지역에서 해변이 가장 아름다운 어업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중 대표적인 해변이 동쪽으로 22km 떨어진 Mui Ne해변이다. 최근에는 외국자본이 들어와 좋은 리조트가 많이 생겨나고, 베트남에 가장 좋은 골프장이 들어와, 주말에는 리조트 방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베트남 전 당시에 미군과 주월 한국군의 휴양소가 있던 곳으로 호치민에서 북동쪽으로 약 125km가량 떨어져 있다. 프랑스 통치 시대 때 총독과 고관들의 휴양지로 개발되었던 곳이다. 10km에 달하는 긴 백사장의 해변가에는 프랑스풍의 별장들이 늘어서 있고, 호치민에서 붕타우로 가는 길에서는 베트남 특유의 한적한 시골 풍경도 볼 수 있다.
 
 
호치민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가량 떨어진 구찌라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한 땅굴이다. 베트남 전 당시에 남부 공산군(일명 베트콩)들이 캄보디아의 국경근처에다 근거지를 두고 호치민을 공격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땅굴을 파서 만든 지하요새이다.
 
 
 
호치민시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가면 약 1시간 30분후에 메콩델타 입구의 도시인 미토에 도달한다. 미토는 망고, 랑브탄등 풍부한 과일 산지로 유명하다. 미토 관광의 핵심은 메콩강 크루즈다. 양쪽으로 펼쳐지는 정글을 바라보면서 갈색 빛이 나는 메콩강의 웅대한 흐름속으로 들어간다.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벤체행 페리,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를 보면서 여유있고 기분좋은 강바람을 맞을 수 있다.
 
 
사이공에서 70km 떨어진 지역으로 "미토" "칸도"가 유명하다.
베트남 쌀 생산의 45%를 차지하는 곡창지대이며 풍성한 열대 과일
과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전원공간이다. 크루즈에 탑승하면 메콩의
삼각주와 과일섬을 방문해서 열대과일도 시식하고 차도 대접받으며
한나절을 즐길 수 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인 하노이는 1010년경에 세워진 고도시이다. 하노이는 1954년 북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도였다가 1975년 베트남이 공산 통일된후 현재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수도가 되었다. 하노이 번화가는 호인키엠 호수를 중심으로 펼져지고 있는 데 그남쪽 일대는 호텔과 레스토랑, 여행사, 항공사, 대사관등이 모여 있고 프랑스 통치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콜로니어 ㄹ양식의 서양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호수북쪽은 하노이의 구 시가지로 이 도시가 세워진 이래 산업의 중심지로서 발전했던 곳이다. 이 구시가지는 베트남 문학작품에 수업이 등장하는 (하노이 36거리)이기도 하다. 프랑스 통치시대에 세워진 서양건물과 교회도 거리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베트남 국회와 공산당 본부 건물 건너편 넓은 바단 광장에 짙은 갈
색의 대리석으로 된 사각형의 웅장한 건물이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이룩해 낸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 받고 있는 호치민의
묘소이다. 1975년에 세워진 이 묘는 모두 대리석으로 이루어졌으며
외부는 연꽃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외국인들조차 묘소 200m 전방에
서 차를 내려 걸어 들어와야 하며 묘역내에서는 절대로 입을 열어서
는 안되며, 슬리퍼, 반바지 차림으로는 관람이 불가능하다. 또한 월 요일과 금요일은 개방을
하지 않아 관람할 수 없으므로 일정을 잘 조정해야 한다.
 
 
하노이 중심 가에 이쓴 이 조그마한 호수는 되돌려 준 칼의 호수로 유명한 곳이다..호안킴이란
말에 유래는 후기 레 왕조의 레 태조 레러이가 이 호수로 뱃놀이를 왔다가 커다란 신경거북에게
보검을 한자루 받았는데 이 보검으러 중국의 침략을 물리친후 이 호수로 다시 뱃놀이를 나온
왕은 신령거북이 물위로 다시 나타나 보검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되어 유래된 말이다..
한쪽 길이가 200M 다른 한쪽 길이는 700m 길쭉하게 늘어져 있는 이 호수 주위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늘어져 있어 하노이 낭만을 더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북쪽으로는 시장이 남쪽으로는
프랑스식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어 대조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쭝자매의 항쟁중 중국 침략군과 벌인 전투 상황에서부터 프랑스
식민통치 기간중의 항쟁, 남 베트남 해방전쟁, 미군과의 전투, 79년
캄보디아 침공 상황까지 전시되어 있다. 당시의 군복, 깃발, 훈장,
무기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쟁 기록 영화 상영도 20여분간 관람할
수 있어 베트남의 전쟁 역사를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문묘는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으로서 1070년 리 왕조때 설립되었다.
이곳에는 82개의 비석이 보관 되어있는데 이 비석들에는 1484년부터
1780년까지 82회 실시된 국자감시에 합격한 박사 1,306명의 성명과
나이, 출생지가 기록되어 있다..문묘는 또한 공자를 보시고 받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탑은 1049년 리 타이 통 왕때 축조된 것이다.. 탑자체는 크지 않지만 그 형태는 매우 독특하다
탑 자체는 가로세로 3m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지름 1,25m의 원통형 석주 위에 올라
앉아있다.. 이 석주는 정사각형 연못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이 수중인형극은 베트남 리왕조시대인 11세기에 베트남 농촌에서
자연 발생한 민속놀이로서 유일한 수중극이다. 예전에는 나무에 풀로
만들어졌으나 요즘은 약간의 현대식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무대뒤물
속에서 사람들이 대를 이용하여 무대앞의 인형들을 움직여 극을 하
는데 인형이 마치 사람이 움직이는것 처럼 자연스럽다. 약 1시간 정도
진행되며 요금은 2달려 개관은 오후 8시부터 9시까지이다.
 
 
 
 
라오카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9km 호안리엔손 산맥이 있으며 해발은 1,500m로 피서지로서 유명하다. 여름에는 습도가 높은편이어서 따가울 정도로 더운 하노이에서 이곳으로 오면 금방 시원해지는 것을 알수 있다. 휴식을 취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도시는 20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소규모이며 가는 곳마다 민족의상을 입은 몬 족(베트남은 메오족이라고 부름)의 모습이 보인다.
 
 
하노이에서 180km 떨어진 북동쪽에 위치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없는 3천여개의 환상적인 섬들로 자연 풍경이 중국의 계림보다도 아름답다고 하여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절경과 바다의 수석을 전시해 놓은 것 같다. 유람선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면 죽순과 같은 기암괴석이 해면에 나타나고 하나 하나가 각기 다른 표정의 기암들 사이를 천천히 배를 타고 가면 정말 바다 속의 동양화 세계로 끌려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만 일대 해저의 평균수심은 200m로 해수면은 투명하고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다.
 
 
닌빈은 하노이 남쪽 93km지점에 위치한 닌빈성의 성도이다.
베느남 국도 1번을 타고 2시간 반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닌빈성의 성도인 닌빈시가 나오고 그 곳에서 소도로를 타고 오른쪽으로 약 20분간 안쪽으로 들어가면 베트남 최초의 봉건왕조라 할수있는 딘왕조의 사당과 그 대를 이은 레 왕조의 사당이 나온다.이곳은 딘과 래왕조의 수도였던 호아루이다..
이곳의 산세는 육지의 하롱이다,.,,이지역 제일의 관광 명소인 탐곡 3동굴(항카, 항하이,항바)을 방문한다.항카동굴은 이 3동굴중에 맏형으로 동굴이 제일 길고 크며 약 130에 이르고 그다음 항 하이 항바를 4인승 조그마한 대나무 배로(삼판)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삼동굴을 다 지난 곳에 넓은 평야가 나온다.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은 이곳의 베트남 제일으 관광지라고 말할 정도 이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우는 곳으로 베트남 최고의 휴양지이다.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야자나무의 가로수가 확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해변과 각종 문화 유적으로 관광객의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발 1,400~1,500m에 있는 고원도시 달랏은 도시 주변에 펼쳐진 언덕 위의소나무 숲에 있다. 이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우 상쾌하며 피서지답게 연평균 기온은 18도에서 23도이다. 주택지로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기복이 많은 언덕 위헤 프랑스 풍 건축의 빌라가 많이 있다.
 
 
달랏 지방의 중앙에 광대하게(둘레 약5km)펼쳐진 호수로 1919년 건설된 댐에 의해 형성되었다.
보트와 모터보트크루즈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으며, 호수 주변에 나있는 낭만적인 마잇길로
말을 빌려 탈수도 있다. 그리고 호수 북쪽에는 골프장이 있다.
 
 
 
베트남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이자 고대 황제의 수도인 후에는 종교, 문화, 교육의 도시이다. 화려한 황제의 무덤, 주목할만한 탑들, 진존하고 있는 성채등이 매력적인 관광지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의도시후에는 베트남 역사의 주요 무대로 수많은 왕의 무덤과 사원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며 베트남 관광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후에 지역에는 베트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많은 역대 왕들의 무덤과 군들이 산재해 있다.
 
 
이 왕릉은 후에에서 7km 떨어진 두옹 수안 투옹마을의 반 니엔산에 있다. 1864년에 역사를 시작해
1867년에 끝마쳤다. 투둑왕은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후사를 돌볼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능을 설계하고 공사도 친히 감독했다. (베트남의 오랜 전통에 따라 효자는 어버이의 묘를 만들도
록 되어 있었다. ) 관광객이 절경을 등지고 우뚝 솟아있는 왕릉을 보고 있노라면, 이 탁월한 축조
물과 주변의 경관이 마치 운율이 잘 맞는 시의 각운을 연상케 한다고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후에에서 10km 떨어진 차우구 구릉지역에 있는 이 왕릉은 1920년부터 1930년까지 무려 10녕의 역
사끝에 축조되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함께 스며있는 장대한 축조물로 도자기를 깨뜨려 그
조각으로 상형문자와 상징적인 형태의 장식문양을 짜 맞추어 놓았는데 그 솜씨가 탁월하다.
 
 
향강 왼쪽편에 있는 캄케산에 만들어진 이 왕릉은 후에에서 12km정도 떨어져 있다. 1841년부터
1943년까지 3년간의 역사끝에 완공된 이 왕릉은 장중함과 함께 능 주변을 애워싸고 있는 암울한
분위기 때문에 느웬왕조의 대표적인 축조물로 간주되고 있다.
 
 
 
다낭은 베트남의 그 어떤 지방 도시보다 활기차 보이는 도시이다. 시내 중심가에는 1천여개의 점포가 밀집된 시장이 성황을 이루고 있으며 젋은이들로 가득찬 노천 카페에서는 록 뮤직이 흘러나와 호치민 못지않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대리석의도시 다낭의 가장 아름다운 명소는 대리석 산으로 석공들이 빚어 놓은 대리석 작품들은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다. 바쁘게 돌아가는 포구와 백사장, 참 족의 조각 박물관 (5세기)과 참파 왕국의 수도였던 MYSON(이손)등의 유적이 이도시의 자랑이다. 마블 마운틴(대리석산)이 마블 마운틴은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신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프놈펜은 15세기부터 캄보디아의 수도로 등장, 앙코르가 버려진 후부터 성장을 시작하여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때는 아름다운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프놈펜은 몇 십년간의 내전의 혼란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13년 내전의 종식과 정국안정의 기대감 속에서 여행자와 외국투자가의 발길이 늘고 있다.
 
 
 
왕국은 1866년 노로돔왕에 의해 건축되었다.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도 하다. 현재 국왕인 시하누크의 궁을 비롯한 몇몇 지역의 건물은 입장이 금지되어 있고, 왕실과
실버 파고다, 코끼리 실은 입장이 가능하다. 주홍빛과 금빛으로 장식된 캄보디아 건축물의 웅장
하고 화려한 모습과 잘 정돈된 정원의 모습은 다른 불교 문화권의 왕실과는 다른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왕궁 내부에 있는 불교사원으로서 불상을 모신 사원의 바닥이 실버
타일로 만들어진 이유로 실버 파고다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사원
은 크게 세 군데로 갤러리, 사언내부, 그주변 탑들이다. 이 실버 파고
다 각 건물의 기단에는 이태리 대리석이 사용되었으며 실버파고다
본전 건물앞에는 노로돔왕의 기마 상이 있다. 본전에 모셔진 크리스
탈 성의 "에메랄드 불상"이 가장 중심적인 유물이다.
 
 
킬링필드 당시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975년 4월 17일 이 학교는 S-21(Securiy Office-21)이라는 수용소
로 변하게 된다. 담에는 철조망이 올려지고 교실은 고문실이나 감옥
으로 개조되었다. 각종 고문도구와 이곳을 거쳐 대부분 살해된 사람
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끔찍한 전율이 느껴진다.
입장료(US$2)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만명 이상의 양민들이 집단적으로 학살을
당한 장소이다.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먼저, 톨슬랭에서 고문
당하고, 족쇄에 채워져 이곳까지 끌려온 후, 산채로 매장을 하든지
질식사나 칼을 이용하거나, 나무에 쳐죽이기도 하고, 총의 대검으로
죽이기도 한다. 구덩이에 집단적으로 유해들이 발굴되었는데 아직도
구덩이 주위에는 부러진 뼈가 발견되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떠오
르게한다. 현장에서 발굴된 두개골과 각 부위의 뼈들은 지난 1988년 건립된 위령탑 내부에
방문자가 이를 바라볼 수 있도록 투명유리 전시관 내에 보관돼 당시 참상을 전해준다.
 
 
프랑스로부터의 독립(1953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기념탑으로서, 노
로돔 거리 끝에 위치했으며, 프놈펜시의 상징물들, 전통양식과 현대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건축되었다. 주변에 고원이 조성되어 있다.
 
앙코르 유적의 주요 미술품이 진열되어 있으며 캄보디아 역사를 볼 수 있다. 왕구의 바로 북쪽인
13거리의 서편에 위치. 월요일은 휴관 개관 시간을 08:00~11:00, 14:00~17:00. 박물관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이며 기념품도 판매한다. 박물관의 건립은 1917~1920년이고 이 건물은 캄보디아
전통 건축양식인 붉은 지붕이다. 이 박물관에서는 크메르의 미술과 고고학에 관련된 유물을 각
전시실 별로 전시하고 있다.
 
 
시아투크빌 (Sihanouk VilleL이라고도 불리는 캄보디아에서 드문 해변 관광지 중에 하나이다.
콤퐁솜은 잘 갖추어진 숙박시설과 스킨 스쿠버, 낚시 등 위락시설이 좋아 현지인, 외국인 모두
에게 인기가 높은 관광지이다. 아직 오염되지 않아 물이 매우 맑으며 수심이 깊지 않아 수영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프놈펜 남서쪽 230km 프놈펜에서 차량으로 약 3시간 30분 소요된다.
 
 
본당 뒤의 사원의 탑에는 Ponhea 왕(1405~1467)의 화장된 유해를 모셨으며, 많은 프놈펜 시민
들의 기원의 장소가 되고 있다. 외부에는 힌두 문화와 복합된 모양의 조각물들이 보이고, 내부
는 많은 향불로 그을려져 다소 어둡다. 내부의 벽화는 1970년에 그려졌으며, 1979년부터 1984년
사이에 복구공사가 있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주변에는 돈을 내고 코끼리를 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씨엠립은 캄보디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9세기에서부터 15세기까지 인도차이나의 광대한 지역과 태국의 일부를 점령했던 앙코르 제국의 수도가 위치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 앙코르 유적이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되면서 부터는 세계인의 방문지가 되고 있다.
 
 
 
앙코르톰은 사원이 아니고 해자로 둘러 쌓인 지역 전체를 의미한다.
바이욘사원, 레퍼왕테라스, 코끼리테라스, 바푸온사원, 피미나카스
등의 유적들이 남았다. 정사각형의 사방에는 각기 1개씩의문이 있
는데 그중 남문의 조형물은 거의 복구되어 사면의 얼굴상과 코끼리
가 인상적이다.
 
 
앙코르 톰은 각 방향에 하나씩 그리고 동쪽에만 "승리의문"이라고
해서 두개의 문이 있다. 총 5개의 출입문 중 가장 보수가 많이 되어
있는 곳이 남쪽 문이다. 도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해자를 건너야
하는데, 이 해자를 가로질러 다리가 놓여있다. 다리의 양쪽에는 원추
형이 모자를 쓴 신과 투구를 쓰고 있는 악마가 머리가 7개난 "나가"
라는 뱀을 잡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도열해 있다.
 
앙코르 톰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앙코르 지역에서 가장 인상
적인 사원중에 하나이다. 이 사원의 특징은 사원이 200여개의 얼굴
로 구성된 54개의 탑들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탑과
얼굴이 손상되어 있지만, 아직도 많은 감명을 주는 사원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3번째 화랑과 2번째 화랑의 외벽에 총
길이 1,200m의 부조물이 있는데, 당시 생활상과 전투 장면을 생생하
게 묘사해 주고 있어,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는 앙코르 주민들의 생활상과 군대 출동 모습
종교 행사 및 의복의 형태등을 엿볼 수 있다.
 
 
왕궁터에 남아 있는 건물이여서인지 "천상의궁전"이라는 이름을 갖
게 되었다. 제일 하단에서부터 상단까지의 양식이 달라 오랜시간을
거쳐 지어졌다고 판단되고 있다. 피미엔니카스의 정확한 용도는 밝
혀지지 않았지만, 왕의 위엄과 관련된 건물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프레아 칸은 "신성한 칼"이라는 의미로 이곳엔 자비를 의미하는 부처
가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56.7ha에 이르는 면적으로 북쪽 저수지 군
의 서쪽 끝에 있는 이사원은 예전엔 "나가라 자야 스 리"(신성한 승
리의 도시권)는 이름이 붙여졌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나야 바르
만 7세가 참족에 승리를 이룬 이곳에 도시 사원을 만들었다 한다.
외관상으론 앙코르 톰의 축소판 형식으로 되어 있고 유사시엔 요새
로 사용할 수 있게 건설되었다고 한다. 동쪽에 입구가 있던 앙코르 시기와는 다르게 현재에는
사원을 들어가는 입구는 서쪽에 있다. 다른 사원들과는 다르게 동근 기둥을 사용하는 서구의
고전 양식에 가깝고, 사원의 부분 부분에 다양한 양식이 나타나고 있어 앙코르 유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관심을 끌게 하는 사원이다.
 
높이 3m, 길이 300m의 이 연단은 5개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간다. 이
코끼리 연단의 용도는 각종 축제나 군사행렬의 사열 장으로 이용되
었다. 이 코끼리 테라스의 뒷면으로는 왕궁이 있었고, 정면으로는
12개의 탑이 도열해 있는 대광장이 펼쳐진다. 왕이 등장하여 위치하
는 곳은 코끼리들의 조각이 아닌 가루다와 사자상들이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고, 승리의 문과 왕의 출입문이 일직선상으로
형성되어 있다. 코끼리 테라스의 뒷면에는 5개의 머리를 가진 말의 보조물이 있고 북쪽으로는
"레퍼 왕"의 테라스가 이어져 있는데, 이것은 위에 못진 야마 신(저승의 신)의 모습이 문둥병
모습으로 남아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 사원이 동쪽을 향해 있다. 그러나 앙코르왓 사원은 서쪽을 향
해 있고, 초기 학자들은 그래서 앙코르왓 사원을 죽음의 사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과학적으로 하나 둘씩 앙코르의 비밀
이 밝혀지면서, 이 사원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한 사원임을 알
게 되었고, 천문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우주의 변화를
표현한 사원임을 알게 되었다. 1860년 프랑스의 동식물학자 앙리무오
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앙코르왓은 세계 7대 불가 사의 중의 하나로서, 또한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적 유산의 하나로서 인류의 값진 문화재이다. 1999년 트레블러지가 선정
한 여행자들이 살아 생전 가봐야 할 50군데 중 유적 부분에도 앙코르는 기재되어 있다. 그만큼 앙
코르 왓이 주는 감명은 세계 그 어떤 유적보다도 뛰어나다고 말 할만하다. 1km의 면적 이에 사암
으로 건설된 앙코르 왓은 그 주변을 길이 1.3km~1.5km의 해자로 둘러쳐져 있다. 또한 중앙 입구에
서 사원내까지 355m의 긴보도가 중앙 탑까지 세겹으로 둘러 쌓인 화랑은 해자와 더불어 앙코르
왓은 사원이라기 보다는 동양의 왕성을 연상케 한다. 긴 보도와 세 개의 화랑을 통과하면 4개의 탑
으로 둘러 싸여있는 높이 65m의 중앙 탑에 도착한다.
세계적인 석조건물인 앙코르왓은 그 웅대함이나 건축물 자체에서 풍기는 신비함 못지 않게 세부적
조각의 아름다움이 전체를 엮어나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특히 세번째 화랑은 이사원의 주신
인 비쉬누 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신화와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교훈적인 사항을 예술적으
로 표현했다는 데 그가치가 있다 할것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말과 역동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 드 넓은 앙코르 제국을 이끄는 코끼이 위의 수리야 바르만 2세, 전체 적 균형을 가지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필사의 노동을 하는 신과 악마들...이러한 부조물과 정교함과 현란함 그리고
조화된 균형이 당시의 화려했던 앙코르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엄청난 위용과 섬세함,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것 같은 많은 신비함이 앙코르를 더 매료시키고 있다.
 
타프롬 사원은 다른 사원과는 달리 이사원은기능이 강화되었던 사원
으로서 많은 수도승이 기거하였었다고 한다. 다른 앙코르 유적지와
는 달리 이사원은 개보수를 하지 않고 자연 상태 그 자체로 보존하기
로 결정되어 정글에 묻혀 있던 앙코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다. 곧게 솟은 이엥 나무와,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고 뒤엉킨 뿌리
가 사원을 들어올리는 스펑나무가 울창한 이곳은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문명의 흔적을 탐험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원은 사암으로된 단층의 건물로 되어있고,
부분적으로 황토가 섞인 5개의 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 울창한 수목과 이끼가 덮인 벽, 뿌리가
파헤치며 들어 올려진 사원의 모습은 보는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닉삐안은 북쪽 저수지에 한 가운데 인공으로 만든 섬에 있던 사원 겸 병원이었다. 그 섬안에 인공
으로 연못을 만들고, 그 연못의 한 가운데 중앙 탑을 세웠다. 닉삐안의 의미는 "뒤얽힌 뱀"이라는
의미로 인공섬 주위를 두 마리의 뱀이 감아 나가다 동쪽을 향해서 바라보고 있음으로 붙여진 이
름인 듯하다. 중앙의 큰 연못 주위로 4개의 작은 연못이 있는데, 중앙의 물은 이 작은 연못으로 흘
러갔고 작은 연못의 각 입구에는 사람, 말, 사자, 코끼리 형상의 배출구가 있는데, 이곳에서 약물
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타 케오 사원은 두개의 담으로 둘러 쌓인 5단 형태의 사원이다. 이 미
완성의 건물은 홍토의 기초위에 사암으로 지어졌다. 당시 이곳은 해
자로 둘러 쌓여 있었고, 아직도 일부분은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오히려 앙코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점
을 시사하고 있다. 조각이 없음으로서 정확한 건축비율이 나타나고
건축의 순서를 알 수 있으며, 건축에 소요되는 대략적인 기간을 알수
있게 한다. 이 사원은 건설 도중 벼락을 맞았다고 기록되고 있고, 그에 따른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웅장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사원이다. 오늘날 프놈펜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4개의 팔을 가진 비쉬누의 와상이 발견된 사원이기도 하다.
 
프놈 바켕은 앙코르 유적군 주변의 세개의 산중에서 정 중앙에 있는
해발 67m의 산이다. 씨엠립에서 12km 떨어져 있던 롤루스 지역(하
리하라라야)에서 수도를 앙코르지역으로 옮긴 야소 바르만은 이곳
을 중앙으로 수도를 만들어 갔다고 한다. 동쪽을 향해 있는 진입로
가 가파르긴 하지만 약 10분정도만 오르면 산위로 오를수 있다. 바
켕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프놈 복"이라는 신이, 동남쪽으로는 앙코
왓이, 남쪽으로는 "프놈크롬"이라는 신이, 서쪽으로는 서쪽 바라이와 메본이 보인다.
정 중앙에 탑에 부조된 여신상들을 보면 초기 유적군군 나타나는 의 복 형태와 조각 양식을 알수
있다. 롤루스의 초기 유적을 못보는 경우, 프놈바켕은 가볼만 하다. 초기 유적임에도 후기 사원과
비교해 손색이 없으며, 앙코르의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기이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30분전이면 일몰로 인해 사원이 황금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쪽 메본 사원은 야소다라 타티카라고 불리었던 동쪽 저수지 한가
운데 있던 섬위에 지어진 사원이다. 사원의 기초와 각 층은 홍토로
조각이 필요한 창들과 문들은 사암으로, 그리고 우뚝 솟은 다섯개의
탑은 초기 자재이던 구운 벽돌로 되어 있다. 거칠게 다루어지고, 구
멍이 나있는 벽돌 탑의 벽면을 통해 스투코의 사용도 알수있다. 앙
코르 건축물에 쓰인 각종 재료들을 볼수있는 사원이면서도, 앙코르
초기 건축물의 웅장함도 볼수 있는 사원이다.
 
 
앙코르 시대에 만들어졌던 저수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저수지
이다. 2km*8km의 이 대형 저수지는 당시 강력했던 왕군의 상징으
로도 표현되며, 오늘날까지 이 저수지는 관계 수로용으로 이용되
고 있다. 매주 휴일이 되면 많은 캄보디아인들이 수영을 즐기며
휴식을 갖는 장소로도 이용되어, 물을 좋아하는 현지인들의 유원지
역할도 하고 있다.
 
이 건축물은 앙코르 시기의 건축물 중 가장 초기의 것이고, 씨엠립의 남동쪽으로 11km 떨어져
있는 롤루스(하리하라라야)라는 초기 수도에 남아 있는 3개의 건축물중의 하나이다. 총 6기의
탑이 있는데, 그 중 앞줄의 정 중앙의 탑이 앙코르의 설립자로 알려진 자야 바르만2세의 무덥
탑이었다. 사암으로 만든 린텔과 기둥, 전면 탑의 데바라 팔라와 후면 탑의 데비의 조각, 그리고
벽돌로 구성된 6개의 신전 탑은 초기 앙코르 건축물 중에서 뛰어난 작품성을 갖고 있다.
 
 
바콩은 오늘날의 롤루스, 당시의 하리하라라야라고 불리던 초기 수도의 정 중앙에 있던 사원이
다. 인드라 바르만은 조상들을 위한 프레아 코 사원을 건립한 후 자기 자신을 위해 이사원을 세
웠다. 롤루스의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바콩은 사암을 세워졌다. 사원은 5단으로 된 피라맛 형태
인데, 주변에 8개의 벽돌로 된 탑들이 늘어서 있고, 이는 시바의 8개의 몸을 표현한것이라고 한
다. 모든 사원 내에 있었던 물 베출구의 현태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것을 볼 수 있는것도 이 사원
이다. 풍화 작용으로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부조물의 형태나, 화려하게 조각된 신화적 내용의 부조
물들을 보면 초기 유적임에도 웅장하고 세련된 멋을 찾아볼수 있다.
 
 
"야소다리푸라"라고 불리었던 앙코르로부터 25km떨어진 "이스바푸라(쉬바의 도시)"에 세워진
이 사원은 붉은 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조각이 아름다운 사원이다. 사원의 규모는 작지만 어느 한
군데 빠지지 않고 복잡하고 화려하게 조각된 이사원은 보는 이마다 감탄을 하게 한다. 쉬바신을
위해 건립된 이사원은 동, 서 축을 중심으로 남북 대칭형 구조로 되어있고, 사원 내부의 기둥과
벽면은 화려한 나뭇잎 장식이, 각 건물의 린텔과 다도 부분엔 힌두 여러신화들을 예술적으로 표
현하고 있다. 특히 중앙 탑부분에 조각된 여신상의 모습이 동양의 비너스라 불릴 정도로 완벽한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복잡하면서도 섬세하고, 현란하면서도 하나의 주제로 한 부분을 꽉 채운
당시의 조각술의 백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쿨렌 신은 앙코르의 건립자 자야 바르만 2세가 최초로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캄부자데자"
라고 선언했던 곳이며, 당시엔 마헨드라 푸리라고 불리었던 곳이기도 하다. 너무나 많은 앙코르
유적에 질린 관광객이라면 꼭 한번 나녀와 볼만한 코스이다. 초기 앙코르 성립기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고, 또다른 형태의 유적이 다시한번 앙코르 방문자들을 놀라게 한다. 아무런 공해가 없는
천연의 산속을 30분정도 달려가면 앙코르 유적에 쓰였던 사암출토지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일단
베이스캠프를 설정하고, 다시 걸어서 약 15분정도 산위로 올라가면 돌을 깍아서 사찰에 안치한 것
이 아닌, 천연의 산 정상을 와불 상으로 깍고 그 위에 지붕을 만든 사원을 볼 수 있다. 약 10m크기
의 이 와불은 그자체가 산인 것이다. 그 와불이 있는 곳의 난간에서 주위를 바라보면 쿨 렌산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출 처 : 베트남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