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내 나이 벌써 34살! 그랬다! 24살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일을 시작해 어느덧 10년 청춘을 고스란히 ‘일’에만 불살랐다. 그사이 ‘연애 제로’에 도전하듯 나의 연애운은 터지지 않았고, 고작 10년 동안 남자친구라고는 지난 세기가 되어버린 99년도에 잠시 오토바이 타고 등장한 한 남자밖에 없다(그 자식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오토바이를 팔아버려 헤어졌지만). 그리고? 마이너스 표기가 시작된 지 어언 4년째인 통장 하나와, 이제 무엇으로 40대를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불면증의 고민거리들만 껴안은 채 먼 산만 바라보던 일상이었다. 문뜩… 내 나이를 적어보니 34! 완전 노처녀 나이 작렬! 그렇지만 왠지 3 플러스 4 는 ‘7’! 누가 더하라고 시킨 적은 없지만 그래도 행운의 숫자 ‘7’이 나왔으니 좋은 거 아닌가? 억지 수식에 내 행운을 의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가 오기만 하면 퍼붓는다고, 올해 2007년은 이상하게 일이 더 잘 안 풀렸다. 3년 전 찾았던 점집의 점쟁이가 내 나이 34살에 회사를 때려치운다는 둥, 3년 후에도 애인이 없을 거라는 악담은 하지 않았는데, 제기랄! 용하다는 점집 바로 수배 내려야 하는 건가?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이 스트레스는 덤! 오른손과 어깨는 상당 수준 저린 증상을 보이고, 어깨에 올라와 계신 그분은 당췌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으신다. 그분의 하차를 돕고자 전국에서 수소문한 용하다는 ‘마사지사’에게 퍼다 준 돈만 모았어도 아파트를 분양받는 데 유리한 청약저축쯤은 너끈히 납입했을지도 모를 날들로 2007년의 상반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 원수 같은 스트레스와 일더미들! 아, 이 뭉친 어깨 좀 풀어줄 남친이라도 있었으면. 어유, 내 팔자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무렵쯤 나는 몸도 마음도 모두 소진되어 한마디로 ‘배터리 아웃 상태’였다.
이렇게 자신과 세상을 탓하며 괴로워하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세월 나는 무엇보다 일을 사랑했고 열심히 해왔다. 그렇다면 10년 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박수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나를 버려가며 일에 헌신해왔는데 한 번쯤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면, 방전된 내 삶의 에너지를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지나친 워커홀릭의 삶이었다.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얻은 복부 비만과 까칠한 성격, 민자무늬가 되어버린 나의 뇌! 이 뇌에게 미안해서라도 10년 세월에 대한 작은 사례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4살이 인생 종착역도 아니거늘 난 ‘재충전의 시간’이 절실했다. 그래서 바람 따듯했던 어느 날,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난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약 800만원(마지막 회사에서 4년간 근무해서 받아낸 내 피와 땀과 같은 퇴직금)의 퇴직금으로 항공권부터 샀다. 그리고 무작정 떠났다. 일단 영국으로! 지난 5월 13일부터 8월 1일까지, 딱 80일간 초딩 수준 영어로 유럽을 횡단한 이 여행기가 인생에, 직장에, 남자에 회의를 느끼는 나 같은, 혹은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참 좋겠다.
기획 박소연 | 포토그래퍼 박소연 | 코스모폴리탄
패션, 쇼핑, 클럽의 도시 영국
5월이어서 그런가? 런던은 늘 그렇듯 심하게 변덕스런 날씨였다.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가져간 대부분의 옷이 얇다는 핑계로 시작된 쇼핑은 멈출 줄을 몰랐다. 우리나라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서면 H&M, ZARA, TOPSHOP, PRIMARK의 거대 매장들이 일렬로 서 있다. 하루는 이 매장, 하루는 저 매장 이런 식으로 봐도 늘 모자란 기분! 영국은 역시 패션의 도시. 그러나 어마어마한 물가에 기절 직전(다른 도시로 떠날 사람들은 파운드보다 저렴한 유로로 옷을 사는 게 좋다. 런던에서는 그저 아이 쇼핑만 즐기소서)! 고전 미술보다 현대 미술에 관심이 높았던 나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푹 빠졌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가득하며, 요즘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인 최고의 작가들 작품이 즐비하기 때문에 현대 미술 감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멋진 갤러리다. 갤러리 관람을 마친 후 밀레니엄 다리를 걸으며 좌측으로는 빅벤과 런던 아이, 우측으로는 런던의 야경을 즐길 수 있어 근사한 하루가 된다. 만약 영국에 간다면 다음의 세 곳을 꼭 추천하고 싶다.
파브릭 영국 최고의 클럽, 공간이 세 개나 되는 클럽에 처음 입장해서는 어리둥절했다. 각 방마다 최고의 DJ들이 다른 색깔의 음악을 틀고 있으며 음악에 맞춰 천장엔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정말 눈과 귀가 ‘뿅’ 가는 곳!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인기가 많은 곳이다. 파브릭은 최고의 일렉트로닉 뮤직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언젠가 이곳에 한복 입고 춤추러 가자며(으하하) 친구들과 영국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브릭레인 런던에 사는 친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브릭레인’ 때문에 런던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브릭레인은 홍대 놀이터의 희망 시장 분위기와 신사동 가로수길 분위기가 합쳐진 듯한 공간이다(지하철역 ‘리버풀 스트리트’에서 하차하면 된다). 빈티지 룩을 고급스럽게 승화시킨 곳으로 다양한 빈티지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빈티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캠든 마켓’을 들르지만, 이곳은 무엇보다 지금 영국에서 가장 뜨는 지역이란 점! 빈티지와 명품들을 묘하게 믹스 매치한 최고의 멋쟁이들 때문에 눈이 완전 즐겁다! 브릭레인 중심에 위치한 유기농 햄버거집의 햄버거와 피자는 최고로 맛있었다.
에든버러 영국에서 에든버러까진 기차 값이 너무 비싸 야간 버스(25파운드=약 5만원)를 이용했다(8시간 소요. 영국 체류 중인 학생 친구가 있다면 학생증을 빌려라. 50% 할인해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미리 예약만 한다면 기차로도 싼값에 에든버러까지 올 수 있다고 한다(평균 기차 값은 12만원 정도). 민박집 주인아저씨는 반드시 기차 탈 것을 권유했다(기차 타고 보는 풍경이 죽인다고 함). 에든버러 근처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하이랜드’를 안 가면 에든버러를 올 이유가 없다고까지 했다. 난 두 가지 다 못했지만, 에든버러의 중세도시 같은 고풍스러움과 1초마다 변하는 날씨만 내 눈에 담아왔다.
기획 박소연 | 포토그래퍼 박소연 | 코스모폴리탄
리스본, 외국인 친구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들!
어느덧 6월 초, 말라가(스페인 남부 휴양지)를 시작으로 언제 유럽이 추웠냐는 듯이 뜨거운 태양이 나를 습격했다. 50도가 넘는 날씨로 선크림을 당장 구입해 2시간마다 발랐지만 얼굴은 점점 까맣게 변해갔다. 마드리드로 이동해 무거운 짐을 잠시 민박집에 풀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론 가벼운 차림으로 떠날 수 있었다(짐 때문에 피곤한 경우 가끔 난 도시로 이동시 민박집에 짐을 맡기기도 했다. 동선을 잘 짜서 이동할 경우 짐으로 인한 피곤을 줄일 수 있다). 난 리스본을 소개한 책 몇 페이지만 훑어본 뒤 호스텔도, 민박집도 예약하지 않은 채 무작정 2박 3일의 리스본 여행을 위해 야간 침대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유레일 패스를 개통한 후 처음으로 침대칸을 탔다. 4명이 자는 침대칸엔 문이 있지만 불안한 마음에 자전거에 사용하는 열쇠와 줄을 꺼내 나의 가방과 침대를 연결했다. 혹여 누군가 문을 열고 냉큼 내 가방을 들고 갈까 불안했기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에 깨어나 밑의 칸에서 자고 있던 낯선 여행객과 인사를 나눴다(더블린에 사는 ‘루이즈’와 미국 시애틀에 사는 ‘티파니’. 물론 나중엔 친구가 됐지만). 그 둘도 여행 중에 만났단다. 티파니가 2006년에 더블린으로 여름 휴가를 갔다가 우연히 만난 뒤 1년 후 여름 휴가를 같이 온 거라고 했다.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대충의 인사를 마친 후, 숙소를 해결하지 않은 채 리스본 기차에 몸을 실은지라 그 친구들에게 어디서 자는지 묻고, 그들과 함께 호스텔까지 이동했다. 그리곤 셋이서 함께 리스본에서의 일정을 즐겼다. 그러다 또 1명의 멤버가 추가됐다. 호스텔에서 만난 프랑스 여행자 ‘올리비에’! 그 역시 나처럼 혼자였고, 우리는 여행이 주는 느슨함 때문인지, 낭만 때문인지, 금세 친해졌다(이 남자는 다음 페이지에 다시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둘 사이에 묘한 감정이 생겼으니까! 궁금하다면 끝까지 읽어보시라. 하하). 결국 그까지 가세해 우리는 뜨겁게 즐겼다. 리스본의 PORTO(와인과 비슷)라는 전통술도 마시러 다녔고, 홍대 클럽처럼 다양한 음악이 준비된 리스본 번화가 클럽에서 음악도 듣고 춤도 추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리스본의 클럽에서 난 유일하게 한국 사람. 동양인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중 지난주에 부산에 다녀온 스페인 아저씨는 <올드보이>와 <주먹이 운다>(우와, 내가 마케팅했던 영화다!)를 봤다며 너무 멋진 영화라고 말해줘서 왠지 뿌듯했다. 하지만 왜 한국 여자들은 해변에서 티셔츠를 입고 수영을 하냐며 실망했다고 말해 웃기도 했다.
호스텔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에 참 좋은 장소다. 민박집에서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곳의 로비에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사실 티파니, 루이즈와 내가 나눈 대부분의 대화는 ‘오늘 밤 뭐 할까? 즐겁게 즐겁게, 러브 러브, 남자친구, 섹스, 연애’ 뭐 이런 이야기였기 때문에 심도 깊은 영어 문장을 구사하지 않아도 됐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 울렁증으로 호스텔을 두려워하고 여행을 아예 포기하기도 하지만 그건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래선 안될 일이다.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단어로 이야기를 한들 그들이 뭐라고 할 것인가? 어차피 모두에게 외국어 아닌가! 일단 도전해보라.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법. 그게 삶의 진리. 여행지에서 만난 우리들은 서로 금방 친해졌지만, 또다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야 했기에 헤어져야만 했다. 프랑스 낭트에 사는 올리비에라는 친구는 프랑스에 가면 다시 연락하기로 했고, 루이즈와 티파니는 2008년 여름 휴가를 같이 보내자는 말로 아쉬운 인사를 대신했다.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호스텔까지 같이 왔지만 가끔 이렇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시간을 즐기는 것이 여행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기획 박소연 | 포토그래퍼 박소연 | 코스모폴리탄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나폴리에서 보낸 한 철
<냉정과 열정 사이>란 영화도 보고 책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올라가고 싶을 것이다. 이왕이면 두오모 성당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에 첫발을 디딜 때 주제음악을 담아둔 MP3를 가져와 들으며 414개의 계단을 올라간다면 나만의 두오모 성당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내가 피렌체에 간 또 다른 이유는 ‘친퀘테레(Cinque Terre)’라 불리는 5개의 마을에 가기 위함이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피렌체에서 이른 아침 ‘La Spezia’행 기차를 타고 하루 코스로 방문하기에 좋은 곳이다. 역에서 입장권을 산 후 기차를 타면 5개의 마을 중 첫 마을에 내리게 된다. 마을마다 기차에서 내려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식이다. 거대한 산과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뚫린 기찻길, 그림 같은 컬러의 집, 해변, 여유로운 사람들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곳.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으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나폴리’는 배낭 여행객에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카프리, 소렌토, 아나 카프리, 아말피 등 유명 해변이 많지만 무엇보다 물가가 너무 비쌌다. 게다가 혼자서 해변을 찾으니 가져간 짐 걱정 때문에 바다로 신나게 뛰어들 수도 없었다.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러 가기엔 너무 아쉬운 일 아닌가? ‘카프리의 푸른 동굴’은 이탈리아에 가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꼭 가보라고 권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너무 바가지 요금이 심해 둘러보면서 화가 난 곳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아테네로 넘어갈 때 보통 배낭여행객들은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 공짜로 갈 수 있는 배를 많이 이용하는데, 체력 손실이 심하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꼬박 24시간 넘게 배와 기차를 타야 한다는 것은 다음 일정에도 큰 무리를 주는 게 사실이었다. 오히려 로마에서 아테네까지 ‘에게한 항공’을 미리 예약한다면 10만원대로 이동할 수 있다.
기획 박소연 | 포토그래퍼 박소연 | 코스모폴리탄
아테네 미코노스 섬의 멋스러운 ‘풀문 파티’ 추억
아테네에서 미코노스 섬으로 가기 위해 배를 이용했다(약 8시간 소요). 아테네 시내에 있는 여행사에 가서 반드시 배편을 예약해야 하며 민박집에서 여행사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미코노스 항구에 도착하면 수많은 ‘삐끼’들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다소 저렴한 가격으로 숙소를 찾았고, 다음 날 나는 미코노스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다이스 비치’로 향했다. 해변에 도착하니 그날이 보름달이 뜨는 날로 ‘풀문 파티’를 하고 있었다.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한 술집에선 낮인데도 파티가 대단했고 각국에서 모인 젊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게다가 너무 아름다웠던 파라다이스 비치. 바다 속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깊지도 않아 그저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다시 오기를 바랐던 것일까? 하필이면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것 때문에 바다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제기랄! 게다가 미코노스 섬에는 단 하나의 스타벅스가 있었는데, 그 건물 전체를 하얀색으로 칠한 채 작은 로고만 스타벅스임을 알 수 있게 한 그리스인들의 ‘뚝심’에 놀라며 미친 듯이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경에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이상하게 그리스에 관련된 사진 파일이 모두 행방불명되었다. 오직 해변에 누워 여유를 즐기던 단 한 장의 사진만 남은 채. 결국 다시 한 번 아테네의 미코노스 섬을 찾으라는 계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획 박소연 | 코스모폴리탄
터키 파묵칼레와 이스탄불에서 누린 생애 최초의 호사
아테네에서 터키로 가는 방법은 비행기도 있지만 미코노스 섬과 산토리니 섬을 구경한 후 터키를 가고 싶었기 때문에 배편을 이용했다. 그리스의 아테네와 미코노스, 사모스에서 터키의 쿠사다시 섬까지의 모든 배편은 아테네의 여행사와 터키 국경에서 예약하거나 사면 된다. 터키의 쿠사다시 섬에 도착한 나는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물가에 놀랐다. 스위스에서 스카이 다이빙을 하려면 350유로를 내야 했지만 터키는 250리라에 스카이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에페소스 유적을 보러 가던 차에 왠지 그 유적을 하늘에서 볼 수 있다는 스카이 다이빙에 혹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선 스카이 다이빙이 얼토당토않은 일이었지만 왠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간단한 교육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간 나. 아무렇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에페소스 유적지가 너무 멋있었다. 최고의 기분을 만끽한 후 이제 착륙만 남았다. 그러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3초의 기억이 사라졌다. 그랬다. 기절한 것이다. 으악! 45도에 육박한 더위. 아점으로 먹은 바게트 조금, 2달여의 긴 여행… 내 체력이 드디어 바닥난 것이다!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나는 약물 냄새를 맡고서야 깨어났다.
터키의 파묵칼레(Pamukkale)는 사진을 찍어보면 눈밭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하얗게 석회로 뒤덮인 그곳 중간중간에선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석회붕에 오를 땐 겉옷 안에 수영복을 입는 것이 좋다. 중간쯤 있는 뜨거운 석회수에 몸을 담그니 여행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 하지만 터키는 너무 더운 곳이라 낮에는 아무런 활동을 할 수가 없다. 파묵칼레 석회붕에 올라갈 때도 너무 덥지 않은 오후 6시쯤이 좋다.
이스탄불은 이슬람 문화와 서양의 문화가 적절히 믹스되어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스탄불에 가면 나도 꽤 미인인가 하는 착각을 하게 한다. 약간 느끼하게 생긴 터키 남자들이 지나가며 한국말로 말을 거는 건 기본이요, “이뻐요. 일루 와요, 여기요”라며 한국말로 말을 건넨다. 진짜 코스모 걸들을 위해 이 팁만은 꼭 전해주고 싶다! 평생 ‘예쁘다’는 소리 한번도 못 들어봤고, 죽기 전에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터키행 비행기 표를 끊으라고! 액세서리를 사러 간 가게에선 나를 보자마자 물건 팔 생각은 안하고 오늘 저녁에 시간 있냐고 묻고, 블루 모스크 사원에선 터키 남자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니 오늘 자기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자고 제안한다. 터키 남자들은 한국을 상당히 좋아하지만, 한국 ‘여자’는 ‘정말정말정말X100’ 좋아한다. ‘아,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란생각이 절로 들걸? 진짜라니까! 아, 그리고 터키 남자들 이름의 상당수가 핫산, 무하메드다. 이스탄불 번화가 한복판에서 이 두 이름을 부르면 80% 이상의 터키 남자들이 쳐다볼 것이다.
기획 박소연 | 포토그래퍼 박소연 | 코스모폴리탄
드디어 고대하던 파리에 도착! 왜 고대했냐고? 글쎄…
약 2달간의 유럽 여행을 마친 나는 마지막 행선지로 파리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리스본에서 만난 올리비에와 두 번째 재회를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스본 호스텔에서 만난 그 올리비에. 앞에선 좀 쑥스러워서 그냥 건너뛰었지만, 사실 우리 사이엔 ‘러브 라인’ 비스름한 그 무엇이 있었다. 리스본의 뜨거운 밤이 괜히 뜨거웠던 게 아니었다. 루이즈, 티파니와 함께 리스본 클럽을 전전하던 그때, 올리비에가 가세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었고 우리는 로맨틱한 리스본에서 결국 첫 키스까지 했던 것이다! 그때의 올리비에의 사랑스런 눈빛이란! 그런 ‘섬싱’을 경험한 상황에서 그와의 재회를 꿈꾸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바로 올리비에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그는 정말로 날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 반갑게 맞아주었다. 파리에서 TGV로 2시간 걸리는 낭트. 그가 살고 있는 곳이다. 낭트에 도착하니 올리비에는 그의 친구들이 모인 와인 파티로 날 안내했다. 사실 파티라기보다는 그냥 친구들의 일상적 모임에 가까운 것이었다. 늘 이렇게 와인 한 병씩을 친구들끼리 가져와 일주일에 1, 2번씩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니 말이다. 프랑스인 특유의 여유 있고, 자유로운 모임에 초대됐지만 불어를 전혀 할 수 없는 나로선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올리비에 때문인지, 생소한 여행의 즐거움 때문인지, 난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와인 파티를 끝내고 우리는 곧장 주말 여행을 떠났다! 두둥!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글쎄, 당신도 그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런 말 못할걸? 차로 이동해 ‘몽셀미셀’이라는 바다 한복판에 서 있는 아름다운 수도원에 도착했다. 근처의 중세시대 전쟁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벽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는 ‘생말로’라 불리는 도시에 다녀왔다. 그의 차를 이용해 프랑스의 유명지를 가게 되니 그동안 혼자서 짐 싸들고 여행 다니던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 이렇게 편하게 여행 막판을 보낼 줄이야! 아름다운 프랑스 서부 낭트에 위치한 다양한 곳들을 여행한 후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로 돌아온 나는 7월 26일이면 일본에 들러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왠지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죽도록 ‘후회’라는 단어가 나를 짓누를 것 같았다. 그래서 당장 항공권을 구입한 곳에 전화를 걸어 변경 수수료 ‘12만원’을 지불하며 여행 일정을 교체했다! 약 15일의 일정을 늘려 8월 12일에 한국으로 떠나기로 급변경! 왜냐고? 뻔하잖아. 다시 낭트로 가기 위해서지. 하악하악! 결국 8월 초 다시 한 번 낭트를 찾았다. 올리비에와 난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지역을 여행했다. 프랑스 사람인 올리비에는 회사로부터 받은 5주의 휴가 중 3주를 여름 휴가로 쓰기로 했고, 우린 열흘간 캠핑 여행을 떠난 것이다. 낭트를 시작으로 보르도에 도착. ‘생테밀리옹’이라는 지역은 보르도에서도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지로 수십 개의 와인 공장과 끝도 없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하루 종일 걸어도 포도(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우리가 자주 먹는 포도의 1/2사이즈로 작더라니까)밖에 안 보였지만 와인 ‘카브’(와인을 직접 생산하는 곳)라 불리는 곳을 방문하여 와인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보고 설명을 들었다. 누구나 이곳을 방문하고 관람할 수 있으며 3~6유로의 가격을 내면 그들이 생산하는 와인 또한 시음할 수 있단 사실.
보르도의 생테밀리옹 지역을 둘러본 후 ‘카카손’이란 성벽 도시를 향해 차를 돌렸다. 가는 길에 들른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차 한 대와 텐트 한 대가 잠시 머무는 그곳의 경비는 둘이 합쳐 15유로였다. 정말 저렴했으며 뜨거운 물도 펑펑 나왔고, 음식도 해 먹을 수 있는 시설에 깜짝 놀랐다.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캠핑장을 이용하고 있어 부러웠다. 카카손은 ‘카슐레’라는 전통음식이 유명한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청국장에 돼지고기를 넣고 뚝배기에 삶아낸 요리로 자양강장 식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상당히 맛있었지만 조금 느끼하기도 했다.
올리비에와 낭트에서 보르도를 거쳐 카카손까지 프랑스 서?남부 지역을 여행한 나는 현지 친구를 만나 이런 멋진 여행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홀로 떠난 여행 막바지에 너무나 편하게 여행한 것뿐만 아니라 외국인 친구(혹은 애인?)까지 생겨 남다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혼자 떠나는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기획 박소연 | 포토그래퍼 박소연 | 코스모폴리탄
유럽여행 그리고 P.S., 후기, 혹은 …
여행 중에 PC방에 들러 올리비에에게 미니 홈피를 보여준 일이 있다. 여행 전 회사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사진을 본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사진 속의 네 모습이 너무 차가워 보여. 지금의 너와 저 사진 속의 너는 너무 다르다.” 난 그때까지 몰랐다. 여행을 하면서 내 얼굴색이 점점 까맣게 탄 것은 물론이지만, 여행을 통해 그간에 내 얼굴에 남아 있던 다크서클과 어둠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미소’만 가득해졌다는 사실을. 지금도 여전히 여행에서 만난 나의 친구들은 내 미소를 기억한다고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나도 모르게 밝아진 내 모습을 얻은 것 같다. 그게 이 여행기의 결론이다. 뭐라고요? 아직 프랑스의 로맨티스트 올리비에와 연락하며 지내냐고요? 어떨 거 같아요? 물론이랍니다. 그리고 더 좋은 소식 하나! 어쩌면 올리비에와 다시 만나게 될 거 같기도 해요. 그것도 한국에서! 남은 2주간의 휴가를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간절한’ 올리비에의 바람을 꼭 이뤄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건 내 바람이기도 하니까요.
기획 박소연 | 포토그래퍼 박소연 | 코스모폴리탄
80일간의 유럽 일주 준비물- 1 1백만원짜리 왕복 항공권과 80일 동안 이동하게 될 도시가 만만치 않으므로 유레일 패스 10일 사용권, 약 550유로짜리 티켓을 3개월 할부로 긁었다!
2 씨티은행 현금카드. 입금될 예정인 거금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근데 왜 씨티은행이냐고? ATM 기계만 잘 찾으면 외국에서 현금 찾을 때 수수료가 없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
3 러프한 계획이지만 몇몇 도시는 기차보다 저렴한 저가 항공으로 움직일 것에 대비한 예약 용지.
4 유럽을 소개한 한 권의 책.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니 직접 서점에서 꼼꼼하게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를 것.
5 한국 민박집 주소. 나 같은 경우는 도시당 2, 3개의 민박집 주소를 소지했다. 그리고 호스텔 연락처도.
6 사돈의 팔촌까지, 일단 끈이 될 만한 모든 전화번호. 이게 왜 필요하냐고? 바로 짐 때문이다. 중간에 짐이 조금씩 늘어날 경우 잠시나마 그분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권하고 싶은 건 거의 빈 트렁크에 가깝게 짐을 싸라는 것. 현지에서 저렴한 옷을 구입해 입고 버리는 것이 장기 유럽 여행에서 제일 편하다.
7 당장 쓸 현금 50만원. 당시 나의 전 재산이었다! 나처럼 고작 50만원 들고 떠나기 싫다면 여행 직전 퇴직과 여행 축하차 예약된 즐비한 소모임을 중지할 것. 그나마 있는 현금이 자꾸 사라지게 될 테니까.
나 홀로 유럽 여행, 알아두면 좋을 8가지 정보- 1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외국에서 영어로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유럽의 웬만한 도시엔 한국 민박집이 다 있다. 혼자 떠난 여행이 두렵다면 모든 숙소를 민박집으로 정하면 된다.
2 2~3개월 정도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저렴하다. 유럽은 캠핑장 문화가 잘되어 있어서 만약 자동차로 유럽을 일주할 경우, 교통비에 해당하는 유레일 패스, 기차, 항공 비용뿐 아니라 숙박비까지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 게다가 4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면 모든 경비는 1/4이므로 더욱 저렴하다.
3 유럽 여행시 하루 경비는 대략 7만원으로 잡으면 된다. 좀 더 럭셔리하게 한다면 10만원 정도로 예상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숙박비 25유로(3만2천5백원)+교통비(1만원)+입장료(1만5천원)+식사 2끼(1만5천원)=대략 7만원!
4 현지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호스텔을 예약하라. 나 같은 경우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고 있다.
5 유레일 패스보다는 저가 항공을 활용하라. 유레일 패스는 한국에서 미리 돈을 지불하고 사가는 패스인데 현지에서 기차를 탈 때마다 예약비를 추가로 계속 내야 한다. 마드리드-리스본의 경우 유레일 패스 소지자여도 침대칸 예약에 30유로를 내야 했고 그 외에도 특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예약비가 너무 비싸다. 가령 스페인 ‘말라가’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동하려면 기차로 거의 24시간 가면서 15만원 이상의 돈을 써야 하는데, 저가 항공을 이용하면 1시간 소요에 비행기 가격도 6만원 정도밖에 안 든다. 이지젯 라이언 에어 등을 적극 활용하라!
6 민박집이나 호스텔의 침대가 찝찝하다면 개인용 휴대용 살균기를 갖고 다녀라.
7 디지털뿐 아니라 폴라로이드도 가져갈 것.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소지한다면 현지에서 사귄 친구와 즉석에서 사진을 주고받을 수 있어 더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준다!
8 공짜 다이어트법이 궁금한가?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면 3개월 유럽 여행을 떠나라. 이번 여행으로 6kg이 빠졌다. 정말이다! 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