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2009년 5월 4일 무주 통영 여행기 넷째날 - 통영 시티투어

봄이나라 2009. 5. 19. 15:56
■ 오전 9시 펜션 출발 -> 9시 30분 통영여행 사무실 출발 -> 한산도 제승당 -> 점심 -> 통영 케이블카 -> 
     착량묘
-> 해저터널 -> 세병관 -> 역사박물관 -> 시티투어 종료 -> 중앙시장 -> 해피텔

☞ 여행 출발전에  임진왜란  과  이순신 장군  정보 한번 살펴보세요..☜

오늘은 통영 시티투어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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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 여행사 사무실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해서, 아침을 후다닥 해먹고, 펜션을 나서니, 주인아저씨가 기념사진 한방을 찍어 주신다.

어제는 하루종일 숙취로 머리가 띵하더니, 오늘 아침은 날씨도 좋고 머리도 상쾌하다....

역시나 여행사 사무실 가는 길에 보이는 바다 풍경은 보고 또 봐도 가슴이 뻥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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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여행 사무실 앞에 차를 주차해 놓고, 관광버스를 타니, 역시나 투어 버스도 인원이 꽉차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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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번째 방문지는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살아있는 한산도로 향한다.

통영에서 한산도까지는 여객터미널에서 카페리를 타고 20분 정도면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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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에 도착....조용하니 주변 경치가 좋다...

이제부터 통영시티투어의 장점인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이 시작된다. 정말 하루종일 역사 공부 많이 하게 된다.

통영이라는 지명도 그 옛날 이순신장군이 이곳에 삼도수군을 이곳에 설치한 역사에서 비롯되어 통영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고, 충무라는 지명도 몇년간 사용되다가 현재는 통영이 공식 명칭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충무김밥이 결국 통영김밥인 셈이다....
 

이곳 한산도 제승당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의 유서깊은 곳이다. 또한 선조26년~30년(1593~1597년)까지 수군의 본영으로 삼아 재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중심지이기도 하다.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은 한산면 두억리 제승당 일원의 104필지(600,461㎡)181,640평에 조성된 지상건물, 각종 비석, 동산문화재, 광장, 조경물 등과 풍치림야를 통칭한다.

정유재란 때 원균의 패전으로 한산진영이 불타버리고 폐허가 된지 142년만인 영조15년(1739년) 조경(趙儆) 제107대 통제사가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운주당(運籌堂) 옛터에 집을 짓고「 制勝堂(제승당) 」 이라는 친필 현판을 걸었다.
그 후 여러번 중수가 있어 오다가 1975년 경역을 확장하고 보수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정화하였다.

이 유적지에는 충무사(忠武祠), 제승당(制勝堂), 수루(戍樓), 한산정(閑山亭) 등 당우(堂宇)를 비롯, 수려한 경관과 더불어 당시 조선 수군 본영의 모습을 되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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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와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입구에 있는 대첩문. 1976년 정화사업계획에 따라 현 위치에 신축 하였고, 저 현판은 박통의 친필이란다.
대첩문을 지나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바로 그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에 나오는 수루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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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루에 올라가 가이드 아저씨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일화를 설명듣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하다.

특히, 장수로서의 이순신장군에 대한 뛰어난 능력 뿐 아니라, 진정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마음편하게 살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고,  그런 자신을 백성들이 따르자 이를 이용하여 모함을 하는 세력때문에 말도 안되는 옥고를 치르시고...

나중에 다시 통제사 지위를 복권받아 일본놈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남은건 배 몇척....

정말 나같으면, 다 필요 없으니 한번 망해봐라 라고 다 팽개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을 텐데.....

죽는 그 순간까지도 초지일관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살다가신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도 여의도에서 패악질을 일삼는 친일파 잔당 놈들과 뉴또라이들 그리고 조중동과 같은 수구 찌라시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가이드 아저씨가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 이순신 장군의 뜻을 손톱만큼이라도 헤아린다면 나라꼴이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란 설명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말, 가족끼리 와서 그냥 둘러봤으면 사실 별로 볼것도 없다고 할 수 있는 제승당...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과 함께 들으니, 몇백년 전의 이순신 장군의 생애가 생생하게 와 닿는다. 

수루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모습은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 옛날 임진왜란때 떼거지로 몰려오는 일본 함대와 얼마안되는 배를 가지고 싸울 생각에 잠못이뤘을 장군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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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루에서 사진한방 찍고, 바로 옆에 있는 제승당으로 향했다.
제승당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왜적을 크게 무찌른 수군의 본영으로 제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한산대첩의 유서깊은 사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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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가이드 아저씨가 제승당 앞에 걸려있는 이순신 장군의 시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신다.
이순신장군은 원래 문과출신으로 30이 넘은 늦은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장군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수많은 시와 문장을 남기셨다고 한다. 여기에 걸려있는 시에도, 왜적을 맞는 두려움과 백성을 향한 연민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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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을 돌아 뒷편으로 가면 활터가 나온다.  활을 쏘는 한산정과 과녁과의 거리는 150m이고, 이는 조선시대 무과 시험이 150m라 거리를 그렇게 했다고 한다. 또한 과녁과 한산정사이에는 바닷물이 들어와서, 해전 시 실전과 거의 흡사하게 활 쏘는 궁수가 마치 바다위에서 활을 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활터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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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하나에도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식견이 반영되어 있어 놀랍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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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를 나와 다시 옆쪽으로 돌아가면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가 나온다.
원래 「 충무영당(忠武影堂) 」이라고 하였으나 규모가 협소하여 1976년 정화사업 때 경역을 확장하여 새 영정을 모시고 「 충무사(忠武祠) 」라 이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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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 안의 이순신 영정. 현재 남아있는 모든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모두 상상화라고 한다.

아이들이 영정앞에서 소원을 빌고 있다. 유준이보고 무슨 소원 빌었냐고 하니, 그거 가르쳐주면 효력이 떨어진다고 안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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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해전중의 하나인 한산대첩. 이 대첩에서 격침된 일본 함선은 66척이었고, 목을 잘라 온 것이 86급, 기타 물에 빠지거나 찔려서 죽은 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며, 한산도로 도망친 400여 명은 군량이 없이 13일간을 무인도에서 떠돌다 굶주리다가 겨우 탈출하였다고 한다.

훗날, 1905년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함대를 전멸시켜 버린 일본의 도고 제독은 주변의 추앙하는 이들에게  “내가 가장 숭배하는 분은 16세기 말엽에 조선 수군을 지휘한 이순신 제독일세.그 분의 인품이나 무공을 따를 해장은 아무도 없어.” 라고 했다고 한다. 여하간 일본 해군은 임진왜란때의 이순신장군의 전법과 전술을 연구하여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고 하니,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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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휴일에다가 투어 참가가자 많아 시간이 지체됐다...빨랑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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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를 타고 통영으로 온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은 각자 알아서 주변 식당에서 먹고 정해진 시간까지 버스로 오면 된다.

버스에서 추천해준 집을 들어갔다가 사람이 많아 그냥 나온 우리는 근처 횟집에서 회덮밥을 먹었다.
역시 바닷가라 그런지 회덮밥에도 회가 엄청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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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부터 유준이는 회를 엄청 잘먹는다. 뭔 맛인지 알고 먹는 건지 궁금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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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주변 바닷가에서 구경을 하다가 다음 목적지로 출발을 하는데, 가는 도중 버스가 고장이 나버린다..
다른 버스가 올때 까지 길에서 군것질도 하면서 1시간 가량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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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통영 케이블카....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하자, 차량들로 넘쳐난다. 그냥 개인이 왔더라면 아마도 주차하는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을거 같다.
 
여행사를 통해서 오니, 오전에 미리 단체로 표를 끊어놔서 우리는 바로 탑승~!! 
옆에 우리팀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2시간 넘게 기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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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케이블카는 운행시작한지 1년이 안됐는데, 벌써 100만 탑승객이 넘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대단하다.

현재, 국내 케이블카 법상 2Km가 최대 설치 길이인데, 통영케이블카의 길이가 2Km에서 몇미터 빠지는 길이다.
그리고, 추후 법이 개정되면 한산도까지 케이블카가 연장될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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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면서, 가슴이 뻥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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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착하면 또다시 30분 넘게 더 올라갈 수 있는 코스가 나오는데, 우리는 시간상 중간에 있는 지점까지만 갔다가 돌아왔다.
여행사를 통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올라올 수 있어 좋은 반면에, 위에서 둘러 볼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와 간 곳은 이순신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착량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전란이 끝난 이듬해인 선조 32년(1599년) 수군(水軍)들과 이곳 주민들이 공의 충절과 위훈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판도가 바라보이는 착량 언덕에 초옥을 짓고 공의 위패를 모시어 춘추향사와 기신제(忌辰祭)를 모시었으니 이것이 이충무공 사당의 효시이다.
착량이라함은 임진란때 당포전에서 참패한 왜적들이 쫒겨 달아나다가 이 협목을 팠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이 지방에서는 사투리로 폰데(판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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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고장나는 바람에, 가이드 아저씨가 바뀌었다. 이 아저씨 설명도 아주 재미나다...


이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다음해에 일반 백성들이 이순신장군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한다.
하지만, 한참 후에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세운 사당인 충렬사로 인해 정부의 인정도 받지 못한 착량묘는 관리인도 따로 없이 그냥 쓸쓸하게 방치 비슷하게 되고 있다가, 후손에 의해 현재 모습으로 그나마 복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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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입구에는 최첨단 무인 경비 시스템이라면서, 그냥 못으로 대문을 걸어놓은 것을 빼고 문을 열고 들어 간다. 

충렬사도 의미가 깊지만, 먹고 살기도 힘든 전란 후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곳 착량묘가 어찌 보면 이순신 장군의 영이 먼저 쉬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 지나가는 개도 웃을 만한 운하같은거 팔 생각 하지 말고, 방치되어 있는 이런 문화재 보존에 좀더 신경을 쓰면 얼마나 좋으랴...

착량묘에서 씁쓸한 기분을 뒤로하고, 바로 근처에 있는 해저 터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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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저 터널도 통영의 유명한 볼거리 중 하나라고 하는데, 그 역사와 의미를 모른체, 무슨 아쿠아리움의 바닷속 터널 같은 거를 생각하고 간 사람들은 그냥 콘크리트 지하터널로 된 해저터널을 보고 실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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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저 터널은 일제시대때 만들어 진것으로, 원래는 위의 사진에서 처럼 5미터 정도만 되는 짧은 다리가 있는 곳이었다.
회나 해산물이라면 환장을 하는 일본놈들이 우리나라를 침략한후, 통영 근해에서 나는 각종 수산물을 본국으로 대량으로 수탈을 하려다 보니 이 착량교가 너무 좁아 배가 들어 올수 없어, 여기를 더 뚫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나서, 새로 다리를 놓자니, 그 옛날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에 의해 자기네 조상들이 떼거지로 익사한 그 현장이다.
그런 조상들의 영이 떠다니는 바다위로 다리를 놓는 대신에, 바다 밑으로 터널을 뚫어 버린 것이다.
터널을 뚫고 나서는 자기 조상에 대한 경외심을 보이라면서 조선인들은 머리를 숙이고 지나가게 했다고 한다.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다. 또한, 이 터널을 뚫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선 백성이 또 죽어 갔을지 안봐도 비디오다...

역시나 이런 설명을 안듣고 그냥 봤더라면 우리도 그냥 이게 무슨 해저터널이냐 라고 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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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반대쪽 까지는 약 500미터 정도이다. 우리는 중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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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터널 관람을 마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세병관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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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국보305호)은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 고장 두룡포에 옮겨온 이듬해인 선조 38년(1605) 그해 7월 14일에 준공한 통제영의 객사이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각지붕으로 된 웅장한 건물로 모든 칸에는 창호나 벽체를 만들지 않고 통칸으로 개방하였다. 우물마루로 된 평면바닥의 중앙 일부를 한단 올려 놓았는데 여기에 전패를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으로 결구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식이지만, 익공식 수법과 다포식 수법이 많이 보인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 위에 직접 화반을 놓아 주심도리 장여를 받치고 있다. 가구는 십일량가로서 대들보를 양쪽 내고 주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주를 세워 중보를 걸고, 다시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걸었다. 종보 위에는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내고주와 전면 평주 사이에는 퇴보를 걸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팔작기와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용마루, 합각마루,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였다.

조선시대 통제영은 군영으로서 세병관을 비롯하여 수십 채의 관아와 공방, 창고를 갖춘 통영성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병관의 경내 또한 일주문인 지과문(止戈門)을 통과하여 분명루(分明樓)가 있었고, 세병관 앞뜰의 좌우에 대변좌청(待變左廳)과 대변우청(待變右廳), 의생청(醫生廳), 뒤뜰에 산성청(山城廳)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세병관만 남아 있다.
세병관은 충무시의 언덕 위에서 남해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으며, 군사용 건물로써 여수의 진남관과 쌍벽을 이룬다. 규모는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대규모에 속하며 경회루와 진남관과 더불어 3대 건물로 꼽힌다. 

4면이 모두 개방되고 내부도 막힌 벽이 없이 기둥만 정연하게 배열되었다. 전후면에서 안쪽으로 제2주열에 각각 고주를 한 줄로 세워 그 위에 대량(大樑)을 걸쳤으며 이 고주와 변주는 태량으로 서로 연결하였다.

건물 측면의 가운데 있는 기둥에서부터 대량에 걸쳐 충량이 배치되었다. 내부 천장은 연등천창이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중앙 후면은 한 단 높은 단을 만들었다. 이 단 앞에도 기둥을 한 줄로 세워 그 위의 대량을 중간에서 바쳤다.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였으며 그 구성은 외목(外目) 도리를 받힌 2익공집의 형식과 비슷하나 쇠서의 형태는 다포집의 형식과 같다.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화반을 받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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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에 들어서면 어마어마한 건물의 크기(그당시를 생각하면)에 놀라게 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짜 먹고살기도 힘든 시기에 선조의 지시로 6년만에 이런 거대한 건물을 지은걸 보면, 얼마나 이순신 장군의 공을 크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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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안쪽에서 보면 정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세병관 외에도 이 근처에는 수십개가 넘는 각종 건물들과 시설들이 있는 정말로 커다란 통제영이었으나, 세병관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역시나 일제시대때 다 불타고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럼 그많은 건물중에서 왜 세병관만 남겼을까??

그건 이 세병관 건물이 일제시대 일본놈들 소학교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란다....아 또 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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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 건물의 바깥쪽 기둥을 보면, 햇빛에 주름이 진 거대한 기둥을 볼 수 있다. 빛이 안들어오는 안쪽 기둥은 맨질맨질 하다. 나무기둥의 주름을 어루만지면, 400년 전의 옛 조상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세병관을 나온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향토역사박물관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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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에 있는 용의 형상을 한 통영 지도...여기에서 보면 통영의 지도가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세병관도 보이고, 거제도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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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이순신장군의 모습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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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수군 훈련 모습. 세병관에서 전국에서 온 배들을 이끌고 훈련을 하는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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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안에서 본 옛날 세계지도. 세계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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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5시에 끝나는 투어지만, 중간에 차고장으로 1시간을 허비해서, 투어를 마치니 6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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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고 여행사 사무실에 가서 주차되어 있는 우리차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출발!!!

계속 밥을 밖에서 사먹었던 터라, 오늘 저녁은 회를 떠서 숙소에서 먹기로 하고 회를 사러 통영 중앙시장으로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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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라 그런지, 통영시내가 차가 엄청나게 막히는데, 더군다나 중앙시장 근처는 완전 주차장이다....
겨우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중앙시장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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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족들 드릴 멸치와 새우등을 사는 동안 유준이라아 나는 옆에서 멸치랑 새우를 마구 집어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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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떠서 바로 옆 식당에서 먹어도 되지만, 편안하게 먹을려고 싸달라고 했다.
2만원어치 샀는데, 광어랑 방어랑 또 뭐였더라...하여간 나중에 가서 먹는데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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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사서 마지막으로 예약한 숙소로 했다.
전망좋은 해피텔이었는데, 6인용인가 하는 방인데 사이즈가 거의 2인용....바닷가 앞이라 전망은 좋았다.
밤새 차다니는 소리가 아주 죽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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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안먹을려다가 그래도 아쉬워 바로 밑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으로....회랑 같이...냠냠

매운탕에 밥까지 먹는데, 결국은 회는 남아서 매운탕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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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역시나 노는 시간은 빨리도 지나간다.

통영시티투어는 개인적으로 가면 알지못할 다양한 얘기거리와 역사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 더군다나 엄청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비교적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았다.

하루종일 이순신장군의 생애와 더불어 다시한번 일본놈들의 패악질을 되새기는 기회였다.

시간나면,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도 다시한번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올라가는 길에 고성 공룡엑스포장에 가기로 했는데, 어떨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