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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부의 유럽 중고차 여행

봄이나라 2008. 3. 6. 08:49
 

부부는 용감했다! 노동운동을 하던 부부는 4400만원의 전세금을 빼서 어느날 훌쩍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3년을 떠돌다 1000만원을 남겨 서울로 돌아왔다. 책으로 준비 중인 이 대단한 부부의 초절약 세계 일주기 중 중고차를 이용한 유럽 여행 노하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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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빼꼽이 커지는 일
기차를 타고 인도의 라자스탄 지방을 여행할 때였다. “아, 저 마을에서 하룻밤만 묵어갔으면….” 아내의 발칙한 상상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자기야, 우리 유럽에서는 중고차를 사자! 내리고 싶을 때 내릴 수 있잖아! 깃털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여행하는 거지!” 아내는 정말 깃털이 되어 날아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의 상상은 점점 날개를 달아갔다. “중고차를 개조해서 잠도 자고 밥도 해먹는 거야! 그리고 다시 되파는 거지!” 그리고 발도 달았다. “장기여행자에겐 렌트카보다 더 경제적이야. 시간에 매일 필요도 없고. 매일 짐 싸고 푸는 일, 숙소 찾아 헤매는 일과도 이젠 안녕이야.”

언제나 상상하는 건 그녀의 몫이고 추진하는 건 나의 몫이다. 나는 베이스캠프로 독일 괴팅겐을 선택했다.그곳에는 K선배가 살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매매 정보를 확인하고는 차를 보러 다녔다. 네 번 만에 마음에 드는 놈을발견했다. 94년형 오펠 아스트라 콤비, 파이브 도어, 18만 킬로미터 주행, 1950유로, 디자인 나름대로 미끈. 게다가 뒷좌석이 앞으로 접혀지면서 완벽한 침실 공간을 만들어냈다. 개조할 필요도 없었다. 기분 좋게 계약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K선배의 명의로 차량을 등록하고 보험에 들었는데, 보험료를 현금으로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독일 은행계좌를 만들었는데 수수료가 있었다. 그것도 매달 4유로. 통장을 해지할 때에도 24유로. 이런 기가 막힐 일이! 그래도 탈세 방지를 위한 법이라고 하니 국제 민주시민인 우리 부부가 너그러이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자동차 소유주는 자동으로 라디오시청료를 내야 한단다. 자그마치 100유로! “으아~! 이러다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겠네!”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은 없었다. 다만 5개월 동안 본전 뽑느라 매일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고생 좀 했다. 마침내 차 개조에 들어갔다. 뒷좌석을 접어 산악용 매트리스를 깔고, 뒤 창문에 커튼을 붙이고, 종이박스를 오려 수납장을 만들었다. 옷, 취사도구, 책과 일기장, 식량을 한쪽 벽면에 정리하고 나니 캠핑카가 따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식품점에서 쌀 한 가마니와 고추장을 사와 의자 밑에 쑤셔넣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끝냈다. 여기에 몽땅 50유로를 추가 지불했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서고 싶을 때 선다
독일의 할레Halle 라이프치히Leipzig 드레스덴Dresden을 지나 5일 만에 체코 국경을 넘었다. 어느새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길가의 낡은 집들과 털털거리며 달려가는 트럭, 그리고 간혹 몸을 파는 아가씨들이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점심시간, 우리는 허름한 카페 옆에 차를 세웠다. 아내가 라면을 끓이는 사이에 길을 물어보고자 들어선 카페… 나는 깜짝 놀랐다. 속옷만 입고 가슴을 거의 드러낸 아가씨가 나왔던 것이다. 아가씨의 뭘 원하느냐는 손짓에 두 손까지 내저으며 황급히 돌아 나오는데 찬바람이 가슴을 휭하니 훑고 지나간다.

프라하의 봄이 생각났다. 소련의 탱크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유를 얻었던 프라하가 다시 돈 때문에 그 소중한 자유를 팔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펐다. 리토메리스Litoměřice에서 하룻밤 쉬었다가 608번 도로를 타고 프라하로 향했다. 3시간 만에도착한 프라하는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로 여행자를 압도하며 마음을 들뜨게 했다.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틴 성당의 두 첨탑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묵직하면서도 아련하고도 밀도 깊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는 젊은 5인조 악단이 바닥에 둔 맥주를 마셔가며 익살스럽게 노래했다. 청소하던 아주머니도 비질을 잠시 잊고 긴 빗자루에 턱을 괸 채 서 있고, 경찰관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내민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옆에는 광장 배수구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낚아 올리는 것은 나무 물고기였다. 그의 기발한 연기에 웃음을 챙긴 사람은 낚싯밥으로 지폐 한 장을 던져주었다. 프라하는 자유와 낭만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국경에서 본 스산한 겨울 풍경을 잊어버린다고 한들 문제될 일은 없었다.

프라하는 과연 봄이었다. 3일 만에 프라하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향하는 국도를 잡아탔다. 도로는 마을이 원래 생겨먹은 대로 닦였는지 마을 중심을 통과해 광장을 지나쳐 가기가 일쑤였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텔츠TelČ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이 예쁜 마을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성당에서 보낸 체코의 마지막 밤
하룻밤 묵어갈 요량으로 언덕 위에 보이는 작은 성당으로 올라갔다. 성당 잔디밭 한쪽에 펌프질하는 우물이 있고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얼음 같은 우물물로 멱을 감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자, ‘뎅~뎅~’ 종소리가 울리고 스무 명 남짓한 마을 사람들이 저녁 미사를 보러 모여들었다. 이토록 평화로운 풍경이 또 있을까. 아이들은 이방인 의 출현에 기도는 않고 실눈을 뜨고 곁눈질을 했다.

미사를 마치고 손짓발짓으로 성당 앞마당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냐고 허락을 구했다. 어른들은 웃음을 남기고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우린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나와 아내는체코에서의 마지막 밤, 프라하와는 또 다른 봄을 느끼고 있었다. 봄과 겨울을 함께 만나는 일. 화장한 얼굴과 맨얼굴의 유럽을 함께 보는 일. 목적지로서의 관광지와 과정으로서의 길을 함께 느끼는 일.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의 매력이었다. 중고차라면 더욱 그렇다. 시간의 제한 없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머물 만큼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그네를 매혹시킨 것은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보낸 밤이었다.

볼일 보는 데도 요령이 있다
“후아! 머리털 다 벗겨지겠네!” 강렬한 지중해 햇살이 내려쪼였다. 동유럽과 지중해의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사이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힘이 들었다. 지도를 보고 늘 낯선 길을 찾아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새 여름이 짙어가고 있었다.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자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에어컨이 없는 애마는 낮 동안은 불덩어리가 되고, 밤이 되면 온 동네 모기를 불러들였다.

‘땀냄새를 견딜 것이냐, 창문을 열어 모기밥이 될 것이냐.’ 밤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수영을 했다. 지중해 바다에서 달빛에 의지해 수영하는 풍경, 누가 보았으면 얼마나 낭만적이라 했을까. 하지만 우리는 수영을 하면서 샤워를 하는지, 샤워를 하면서 수영을 하는지도통 알 수가 없었다.

또 하나의 고충이 있었다. 도시에서 아침 볼일(!)을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노하우가 있다. 일단 맥도날드 등의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 없으면, 백화점으로 향한다. 보통 높은 층에 있다. 이도 실패하면, 별 다섯 개짜리 호텔로 직행한다.

이때 별 2~3개의 어중간한 호텔은 곤란하다. 들어가면 ‘어서 오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별 다섯 개의 경우 90도로 인사할 뿐, 화장실 좀 쓴다고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화장실에는 새 수건과 비누가 준비돼 있으며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것은 기본이다.

나그네는 길 위에서 힘을 얻는다
물론 잠자리도 불편하다. 그럴 때마다 캠핑장을 찾거나, 아시아 여행 때 만난 유럽 친구들을 방문했다. 그때였다. 누나와 조카 대한이 여름방학 동안 여행에 합류하고 싶다는 메일이 왔다. 새로운 활력소였다. 취리히Zurich 공항에서 만난 대한은 몰라보게 커 있었다. 네 명으로 늘어난 우리 일행은 바쁘게 서유럽을 돌아보았다.

처음부터 대한이는 여권에 여러 나라의 출입국 스탬프를 받고 싶어했다. 방학이 끝나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국경에는 언제나 ‘WelcomeNetherlands’‘Welcome France’라고 적힌 입간판 하나 서 있을뿐, 도장을 찍어줄 사람도 출입국 관리사무소도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자고 있는 사이에 국경을 지나쳐버렸다. 무척 아쉬워하더니 다음부터는 국경을 지날 때마다 이벤트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날부터 국경을 지나는 순간 아껴둔 초콜릿 우유 마시기, 선루프로 올라서서 소리 지르기 등을 하더니, 마지막 나라 네덜란드로 넘어가는 날에는 국경 입간판 아래에서 개다리 춤을 추는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떠나는 날, 이국 땅에서 고국을 향해 이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아내와 나는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어지러웠다. 캠핑장에 가서 쓰러졌다. 일어난 건 이틀만이었다. 다시 뒷좌석을 접고, 매트리스를 깔고,수납장을 정리하며 출발을 준비했다.

북유럽이 나그네를 부르고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서자! 나그네는 길 위에서 기운을 찾는 법이니까!”

Best Drive Course
•노르웨이
송내 피요르드Sonne Fjord의 55번 국도 북극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해주는 길이다. 해발 1400m 산을 넘어가는 도로가 빙하 사이로 뻗어 있다. 피요르드의 절경을 보고 난 후 스웨덴으로 넘어가는 코스로 택하면 좋다. 겨울에는 도로가 온통 눈으로 덮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Barcelona-팜플로냐Pamplona 국도 밀밭 사이의 길이 평화롭다. 그 길 끝에 작고 예쁜 마을이 봉긋 솟아 있다. 주변 산악 지형은 터키 카파도키아 지형을 많이 닮았다.
•이탈리아
남부 브린디시Brindish-알베로벨로Allberobelo 국도 이탈리아의 발뒤꿈치에 해당하는 지역. 집도 하얗고 길도 하얗고 온 마을이 새하얀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독특한 마을들을 돌아볼 수 있다.
•지중해변
몬테카를로Monte-Carlo -니스Nice 해안도로 좌우로 지중해가 펼쳐지는 도로가 한참 펼쳐진다. 아무 곳에서나 차를 멈추고 밤을 보내고픈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곳이다.
•프랑스
뤼베롱 산Monte Luberon을 넘어가는 길 이란에서 만난 프랑스 요리사가 가르쳐준 비경이다. 예쁜 산골 마을이 이어진다. 제법 유명한 와인 산지라고 한다. 메네르베Menerbes라는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가면 좋다.
•프랑스 남부
아비뇽Avignon-아를Arles 국도 아를은 고흐의 마을이다. 아를이 가까워지면 남도의 뜨거운 태양이 그의 그림처럼 흔들리고, 붉은색보다 더 열정적인 샛노란 해바라기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이 길은 빈센트 반 고흐의 따뜻하면서도 열정적이고 미친 듯한 색채의 그림을 닮아 있다.

Information
[여행 기간] 157일(준비기간 포함) 주행거리 138일 18267km 여행한 국가 동유럽에서 북유럽까지 시계방향으로 총 18개국 참고 서적 <론니 플래닛> 사용 지도책 Atlas in Europe (독일어판) 참고 홈피 www.map24.com

[budget]
여행 당시 1유로는 1450원 총비용 7746.54유로 = 1123만2480원 1일 평균 7만1090원

[data]
자동차 구입·등록비 22.5% 1750.07유로 숙박비 15.4% 1190.72유로 차량유지비 27.6% 2134.71유로 식비 13.2% 1024.71유로 입장료 및 관광 8.6% 669.85유로 간식 3.3% 251.49유로 기타 잡비 9.4% 724.99유로 자동차 구입·등록비

[세부항목] 1일 1만6060원
중고차비 900유로 (구입 1950유로 - 판매 1050유로) 보험료 585.07유로 (후크HUK종합, 아데아체ADAC 긴급구호 6개월) 기타 265유로 (등록세, 라디오 사용료, 은행계좌 사용료)
양학용과 김향미 부부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과 독일 문학을 전공한 양학용과 김향미 부부는 3년 전 훌쩍 떠나 전세계 47여 개국을 여행했다. 그전에는 오랫동안 민주노총과 사회당에서 일했고, 지금은 글을 쓰면서 인권 평화 세계복지와 관련한 일을 준비하고 있다. 사이트 www.travelin.co.kr